" 저 언덕 너머 어딘가 그대가 살고 있을까 계절이 수놓은 시간이란 덤위에 너와 난 나약한 사람..." 여러분은 이렇게 시작되는 바리톤 고성현의 가곡을 좋아하십니까? 이 노래는 후렴부에서 이렇게 진행됩니다."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소원해져 버린 우리의 관계도..."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아 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러가지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신기하게도, 커피에도 그러한 특별한 기억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가 [커피인문학] 세미나를 진행할 때마다 청중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마신 커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커피는 어떤 커피입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들과 함께 커피를 마신 '사람'들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중년 여성은 자기 친구와 등산했을 때 산 정상에서 마신 커피가 지금까지 마신 커피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운을 떼었습니다. 산 정상에서 친구가 보온병을 꺼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줘서 마셨는데 그때 그 커피가 가장 기억에 남는 커피라고 했습니다. 친구와 특별한 장소에서 함께 마신 커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다시는 그 친구를 보지 못한다는 슬픔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꺼내놓았습니다.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 길, 잠시 들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어머니도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놀란 딸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줄 알았다면 자주 모시고 나올걸...“. 딸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가끔 저랑 카페에 와요”, “그래 그러면 좋겠네”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울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커피는 기억을 소환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들을 들으며 예수의 열두제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제자들도 그랬겠구나...”. 그들은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예수님과의 식탁, 특히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장면을 회상했을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제자들에게 포도주는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기억을 소환하는, 그리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커피는 그리움입니다. 친구들의 웃음, 부모님의 손길,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미소까지, 커피는 그 모든 기억을 소환합니다.
추석은 그리움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고향집 마당의 감나무, 달빛이 내려앉은 골목길, 그리고 오래된 커피 향 같은 추억들이 이맘때면 조용히 마음을 두드립니다. 커피의 향이 우리의 추억을 소환하며, 찾아온 그리움에 인생이 익어갑니다.
오늘 이 순간 여러분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그 순간도 오랜 세월이 지나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니까요.
그리움의 향이 짙어지는 이 계절, 여러분의 커피잔에도 따뜻한 기억이 잔잔하게 여울지기를 소망합니다.
글 | 최우성 목사
태은교회 담임 / 강원대학교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 알고 보면 재미있는 커피 인문학 저자 / 농학박사(Ph.D) / 목회학 박사(D.m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