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 22] 조사받기 전에, 통역부터 요구한다

구속부터 출국 정지까지 외국인이 꼭 챙겨야 할 절차

경찰 조사실에서 서명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권리

언어 장벽 앞에서 침묵 대신 한 문장의 요청이 필요

[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 22] 조사받기 전에, 통역부터 요구한다

 

◇ 국선변호인은 자동으로 붙지 않는다, 권리는 요청해야 작동한다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국선변호인이 붙지는 않는다. 통역과 영사관 통보는 스스로 요청해야 움직인다. 그리고 조사실에서 한 서명은 나중에 뒤집기가 매우 어렵다.

 

◇ 새벽 두 시, 뜻을 모른 채 서명한다

경찰서 조사실의 시계는 새벽 두 시를 지난다. 질문은 길고 빠르다. 알아들은 단어는 절반쯤이다. 그래도 "네"라고 답하게 된다. 빨리 끝내고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한 시간 뒤 종이 한 장이 앞에 놓인다. 여기에 서명하라는 말이 들린다. 무슨 내용인지 다 읽지 못한 채 이름을 적는다. 그 종이가 조서다.

 

조서는 나중에 법정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때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늦다. 이미 적힌 말과 다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2024년 한 해 외국인 피의자는 3만5000명을 넘었다. 그만큼 이 장면은 흔하다.

 

한 병 철 변호사

◇ 외국인이면 국선변호인이 붙나

자동으로 붙지는 않는다. 한국어를 못한다는 사정은 그 목록에 없다.

법이 정한 필수 선정 사유는 정해져 있다. 구속된 때, 미성년자인 때, 70세 이상인 때가 들어간다.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때도 들어간다. 심신장애가 의심될 때와 무거운 사건으로 기소된 때도 있다. 언어 장벽은 여기에 없다.

 

길이 아주 막힌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으면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보아 선정하기도 한다. 구속영장 심사 자리에서는 변호인이 없으면 법원이 붙여준다. 체포나 구속을 다투는 절차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앞 단계다. 구속되지 않은 상태로 받는 경찰 조사에는 국선이 없다. 그런데 사건의 방향은 대개 그 자리에서 정해진다.

흔한 착각도 하나 짚어야 한다. 나중에 법정에서 바로잡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법정은 이미 적힌 조서를 놓고 다투는 자리다. 핵심은 죄의 유무가 아니라 첫 조서에 적힌 문장이다.

 

◇ 요청해야 움직이는 권리가 셋이다

한국 형사절차에는 외국인을 위한 장치가 있다. 다만 대부분 요청이 있어야 작동한다. 가만히 있으면 그냥 지나간다.

 

첫째는 통역이다. 재판에서는 원칙이 분명하다. 국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의 진술은 통역인을 거쳐야 한다. 수사 단계는 구조가 조금 다르다. 수사기관이 통역인을 위촉할 수 있다는 형태다.

 

그래서 말로 꺼내는 일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20년 경찰청에 권고한 적이 있다. 한국어를 조금 한다고 통역을 건너뛰지 말라는 취지였다. 조사받는 언어를 고르는 것은 권리에 가깝다.

 

둘째는 변호인과 진술거부권이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네 가지를 알려주게 되어 있다.

진술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첫째다. 진술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는 것이 둘째다. 포기하고 한 진술은 증거가 된다는 것이 셋째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넷째다.

 

이 고지는 형식이 아니다. 변호인을 조사에 참여시켜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신청하면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참여하게 된다. 옆자리에 사람이 한 명 앉는 것만으로 조서의 결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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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영사 통보다. 체포되거나 구속되면 본국 영사관에 알릴 수 있다. 이는 한국이 1977년부터 적용받는 국제협약에 근거한다.

경찰 규칙도 이 사실을 알려주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알아서 통보되지는 않는다. 요청해야 통보된다.

 

대법원은 2022년 이 권리를 정면으로 다뤘다. 알려주지 않고 한 체포와 구속은 위법하다고 봤다. 그런데 그 사건에서 증거는 그대로 쓸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다투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요청하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 구속되면 얼마 동안 갇혀 있나

수사 단계에서는 최장 30일이다. 그 안에 여러 차례 다툴 기회가 있다.

 

시계는 체포된 순간부터 돌아간다. 48시간 안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청구하지 않으면 풀어주어야 한다. 영장이 청구되면 판사 앞에서 심문을 받는다. 이 자리에는 변호인이 반드시 있게 된다.

 

구속되면 기간이 나뉜다. 경찰이 열흘, 검찰이 열흘을 쓴다. 검찰 단계에서만 열흘을 한 차례 더 연장한다. 합해서 30일이 상한이다.

그사이에도 다툴 수 있다. 체포나 구속이 부당하면 법원에 심사를 청구한다. 본인과 변호인, 가족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용주도 청구할 수 있다. 청구서가 접수되면 48시간 안에 심문이 열린다.

 

기소된 뒤에는 보석을 청구한다. 다만 외국인에게는 문턱이 조금 높다. 주거가 분명하지 않거나 도망 염려가 있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주지와 재직 증명을 미리 갖춰두는 편이 낫다.

 

출국도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형사재판을 받는 중이면 출국이 정지될 수 있다. 수사 단계에서도 기간을 정해 정지가 가능하다. 사건 유형과 체류자격에 따라 대응 순서가 달라진다.

 

◇ 조사 전에 할 일, 조사실에서 하지 말 일

1. 오늘 안에 할 일은 신분과 언어를 확인하는 것이다. 참고인인지 피의자인지부터 묻는다. 참고인은 사건을 아는 사람이고, 피의자는 혐의를 받는 사람이다. 통역이 필요하다는 뜻도 미리 밝힌다. 조사 날짜와 담당 수사관, 사건번호를 문자로 남겨 확인받는다.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모은다.

 

2. 며칠 안에 할 일은 사실을 나누는 것이다. 직접 본 것과 들은 것, 모르는 것을 구분해 적는다.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질문의 순서가 보인다. 변호인을 선임할지, 가족과 영사관에 알릴지도 이때 정한다.

 

3. 절대 하지 말 일은 뜻을 모른 채 서명하는 것이다. 조서는 서명 전에 읽어보거나 들려달라고 할 수 있다. 사실과 다르면 고쳐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 추측으로 답하는 것도 위험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편이 안전하다.

 

피해를 당해 신고하는 경우는 또 다르다. 신고하면 체류 문제가 생길까 봐 참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통보의무에는 면제가 있다. 2025년 11월 6일부터 대상이 넓어졌다. 임금체불 피해 근로자가 면제 대상에 들어갔다.

 

상담 창구도 열려 있다. 법무부 1345는 20개 언어로 연결된다. 2026년 5월 27일부터 1번이 인권침해 신고 전용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132도 무료 상담을 받는다.

 

◇ 변호사가 들어오면 조서가 달라진다

상담에서 가장 자주 듣는 후회가 있다. "그때 무슨 말인지 모르고 서명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변호사가 먼저 하는 일은 변명이 아니다. 조사 전에 기록을 정리하는 일이다.

 

증거 정리가 첫 순서다. 문자와 계약서, 급여명세서, 출입 기록을 시간순으로 묶는다. 통역이 어긋나기 쉬운 대목도 미리 표시해 둔다. 다음은 절차 선택이다. 출석 시점과 변호인 참여, 구속영장 대응의 순서를 정한다.

 

타이밍은 첫 조사가 정한다. 두 번째 조사에서 말을 바꾸면 그 자체가 불리해진다. 마지막은 실수 방지다. 조서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두고 나오지 않도록 짚는다. 통역 없이 조사가 시작되지 않게 막는 일도 여기 든다.

 

부산에서 형사전문변호사를 찾는다면 세 가지를 본다. 대한변협 인증 여부가 첫째다. 외국인 사건에서 통역을 함께 준비하는지가 둘째다. 첫 조사 전에 만날 수 있는지가 셋째다. 창원에서 외국인 형사사건을 맡아본 법무법인도 순서는 같다.

 

2024년 말 기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265만 명을 넘었다. 그만큼 조사실 문 앞에 서는 사람도 늘었다. 한국 형사절차는 권리를 숨겨두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꺼내야 작동하게 만들어 두었다. 지금 필요한 건 침묵이 아니라 한 문장의 요청이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

(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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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0.01 16:55 수정 2026.10.0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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