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아니,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를 우리 모두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 아닌가. 우물 안 개구리 식의 근시안적인 기존의 생활방식, 자업자득으로 기후변화를 초래한 자연 생태계 파괴와 오염으로 자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인본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어서 탈피 졸업하여, 우리 본연의 자본 우본주의(宇本主意) 우주자연관에 바탕을 둔 새로운 코스미안시대를 열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말이다.
우리 조상님 단군 할아버지와 곰할머니께서 하늘 문을 열고 홍익인간, 홍익만물하러 지상으로 내려오신 개천절을 기려 새삼 다짐해 보자. 바꿀 수 없는 숙명이든 바꿀 수 있는 운명이든, 어떻든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 우리 자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꿀 수 있는 것이 ‘운명(運命)이라면 숙명(宿命)은 바꿀 수 없는 것이리라.
운명이 작은 그림이라면 숙명은 큰 틀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종(種)으로 어느 때 어느 곳에 어떤 환경에 어떤 DNA를 갖고 태어나느냐가 숙명이라면 이 프레임 안에다 어떠한 그림을 그리는가가 운명이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프레임이라 할까 박스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혀 다른 두 가지가 있지 않은가. 하나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비자연적이고 가공적인 것으로, 문학적으로 말해서 하나는 논픽션이고 또 하나는 픽션이라면 컴퓨터 용어로는 현실, 가상현실, 그리고 증강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전자라면 모든 인위적으로 조작 조정하는 자의적(恣意的) 이데올로기 이념이다, 사상이다, 종교다, 예술이다, 문화다, 정치다, 경제다 등 독선과 위선에 찬 도그마들은 후자가 되지 않을까. 좋든 싫든 전자를 우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프레임이나 박스 속에 갇혀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노예의 사슬을 풀고 새장에서 벗어난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로 비상할 것인가는 우리 각자가 결정할 일 아닌가. 바꿀 수 없는 숙명이든 바꿀 수 있는 운명이든, 어떻든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 각자 자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의 말을 우리 함께 경청해 보리라.
“선행할 때 내 기분 좋고 악행할 때 내 기분 나쁘다. 이것이 내 종교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각자 칼릴 지브란(1883-1931)은 그의 ‘예언자의 뜰(1933)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물에 깃든 숨이
성당의 종소리 들리는
일요일 한 제자 묻기를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요?
알무스타파 대답하기를
사랑하는 나의 벗들이여
모든 마음을 합한 마음
모든 사랑을 합한 사랑
모든 영혼을 합한 영혼
모든 음성을 합한 음성
모든 침묵을 합한 침묵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이 모두를 생각해보게.
이렇게 우리 알 수 없는
하느님보다 차라리 우리
자신에 관해 얘기해보세.
구름까지 올라가 그것을
우리는 높이라 생각하고
바다를 건너가서 그것을
우리는 거리라 말하지만
땅속에 씨앗을 심을 때
우리는 더 높이 오르고
이웃과 다정히 지낼 때
우리는 더 멀리 간다네.
어미 새가 하늘로만 날면
누가 둥지 속 새끼 새의
먹이 물어다가 줄 것이며
벌의 도움 없이 그 어떤
꽃이 열매 맺을 수 있나.
하느님의 숨결과 향기가
우주만물에 깃들여 있음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네.
바람에 노래 실어
하루는 제자 한 사람이
새 옷이 필요하다 하자
알무스타파 말해 가로되
자네 헌 옷 벗어보게나
그가 벌거벗은 몸 되자
알무스타파가 말하기를
벌거벗어야 햇볕 쬐고
걸침 없어야 바람 쐬며
천 번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집을 찾게 되지.
천사가 내게 일러주길
겉이 두꺼운 자를 위해
지옥이 만들어졌다고
껍데기 녹여 버리려고
나의 다정한 벗들이여
땅속으로 뿌리 내리고
하늘로 가지 뻗어 올려
바람에 노래 실어 보세.
우리 살아 있음이란
또 한 제자가 말하기를
우리도 선생님 말씀처럼
노래가 되고 향기롭도록
그 비결 가르쳐주십시오.
알무스타파 대답하기를
말보다 삶이 앞서야지만
그 말도 노래와 향이 되지.
하늘 높이 오르기도 하고
땅속 깊이 뿌리 내리는.
또 다른 제자가 묻기를
있다는 존재란 무엇이죠.
알무스타파 말해 가로되
우리 지금 살아있음이란
바보처럼 슬기로워짐이오.
약자를 위해 강해짐이며
어버이나 스승이 아니고
어린아이들 소꿉동무로
재밌게 같이 노는 것이지.
아름다움 찾아 그 어느 곳
세상 끝까지라도 좇음이지.
아름다움 없는 곳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지.
참으로 살아있다는 것은
울타리 없는 집안의 뜰이
밭지기가 없는 포도밭이
문 없는 주막집 되는 것.
가진 것 모두 빼앗기고
세상의 웃음거리 되어도
빙그레 한번 웃는 거지.
다정한 나의 벗들이여
겁먹지 말고 대담하게
하늘같은 정신 키우고
바다같은 마음 품게나.
이렇게 그가 말을 하자
그 말 이해하지 못하는
아홉 제자 모두 흩어져
그의 곁을 떠나가 버리고
알무스타파 혼자 남았다.
길가의 갈대 되리
밤 되어 알무스타파 그의
어머니 묻혀 있는 무덤가
삼나무 밑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빛이
땅속에 빛나는 보석처럼
온 뜰을 밝게 비춰 주었다.
온 누리 고요한 가운데
알무스타파 외쳐 말하되
잘 익은 열매와도 같이
잘 익은 포도주와 같이
그 어떤 주리고 목마른
사람의 넋을 달래줄까.
길거리에라도 앉아서
두 손 가득 보석들을
나누어 주려고 해도
받아 줄 사람 없으니
나 이를 어쩔 것인가.
차라리 이렇게 될 바엔
빈손 벌리고 구걸하는
걸인이라도 되었을걸.
푸짐하게 상 차려놓고
손님 기다려도 아무도
오는 사람 그림자도
없다면 이를 어쩌나.
차리리 이렇게 될 바엔
떠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거렁뱅이가 되었을걸.
내가 어느 나라 공주로
한밤중 잠에서 깨어나
은빛 찬란한 옷 걸치고
보석 반지 목걸이하고
값진 향수 몸에 뿌린 채
밤이슬에 빛나는 황금빛
신발 신고 대궐 안 뜰을
거닐며 두루 찾아봐도
사랑을 속삭여 줄 왕자
없다면 이를 또 어쩌나.
차라리 이렇게 될 바엔
들판에서 양떼를 몰다
저녁이면 풀향기 밴 몸
맨발로 집으로 돌아와
밤 깊어질 때를 기다려
날 사랑하는 젊은이가
기다리고 있는 골짜기
시냇물 가로 달려가는
농부 딸이 되었을걸.
아니면 차라리 수도원
수녀라도 되었을 것을.
내 마음 향불처럼 피워
내 혼 촛불처럼 태우는.
그도 아니라면 차라리
옛날의 추억을 더듬는
할머니라도 되었을걸.
밤이 깊어 알무스타파도
밤처럼 깊어가는 생각에
다시 혼잣소리로 말하되
아름답게 피어도 봐 줄
맛있게 익어도 먹어 줄
그런 사람 하나 없다면
차라리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는 나무
그런 나무 되었을 것을.
샘이 넘치는데 마실 이
없는 샘물 되는 것보다
차라리 마른 우물되어
지나가는 길손 돌 던짐
견디기 더 쉬웠을 것을.
아무리 훌륭한 악기라도
그 악기를 타 줄 사람도
그 악기소리 들어 줄 이
아무도 없는 집에 놓여
버림받은 악기 되느니
차라리 발길에 짓밟히는
나 저 길가 갈대가 되리.
못다 한 말 있다면
일곱 낮과 밤 지나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카리마가 찾아와
마실 것과 먹을 것들을
아무 말 없이 놓고 갔다.
얼마 후 카리마를 따라
아홉 제자들이 나타났다.
알무스타파 반갑게 맞아
카리마가 차려 논 음식
다 같이 즐겁게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난 다음
아무스타파 말해 가로되
나의 다정한 벗님들이여
이제 우리 헤어져야겠네.
우리 사나운 바다 건너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여러 가지 어려움 같이
여러 가지 즐거움 함께
우리 나누지 않았는가.
나의 다정한 벗님들이여
이제 헤어질 때 되었고
나는 나의 길 가야 하네.
부디 벗님들 안녕하시게.
그러나 헤어지기에 앞서
벗님들에게 내가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 있다네.
벗님들 모두 각자대로
제 길 찾아갈 것이로되
제 노래 부를 것이로되
노래마다 짧게 하시게.
입술에서 일찍 숨지는
노래라야 듣는 사람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지.
아름다운 진실은 말하되
아름다운 노래는 부르되
그렇지 않다면 입 다물고
험담에는 귀머거리 되게.
다정한 나의 벗님들이여
그대들이 가는 길에 혹
발굽 가진 이 만나거든
그대들의 날개 달아주게.
다정한 나의 벗님들이여
그대들이 가는 길에 혹
뿔 달린 사람 만나거든
그에게 월계관 씌워주게.
다정한 나의 벗님들이여
그대들이 가는 길에 혹
발톱 사나운 이 있거든
그대들의 꽃잎 달아주게.
다정한 나의 벗님들이여
그대들이 가는 길에 혹
거짓말 하는 이 있거든
그에게 꿀을 먹여 주게.
다정한 나의 벗님들이여
이밖에도 여러 사람들을
그대들 만나보게 되겠지.
목발을 파는 절름발이와
거울을 파는 눈먼 장님
또 사원 앞에서 구걸하는
부자를 만나보게 되겠지.
그 가운데서 부자 거지를
가장 불쌍하게 여기게나.
다정한 나의 벗님들이여
사자들과 토끼들이 함께
이리떼와 양떼가 더불어
같이 노는 놀이터 되게.
그대들의 스승으로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면
난 주기보다 받을 것을
버리지 말고 채울 것을
노예가 아닌 벗으로서
그 어떤 욕망 욕구라도
억제 말고 충족시키라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면서
그대들의 깨우침을 받은
선생 제자로 기억해주게.
잠잠히 고요히 있기보다
너무 크지 않은 목소리로
모두 함께 같이 출렁이는
저 바다의 물방울들처럼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서
우리도 춤추듯 노래하세.
이렇게 말을 마친 다음
알무스타파 뜰로 나가자
제자들 그 뒤를 따랐다
알무스타파에게 다가와서
카리마가 애틋하게 말하길
내일 길을 떠나가시는데
드실 것 좀 준비할게요.
이렇게 말하는 카리마를
애타는 눈길로 바라보며
알무스타파 대답하기를
나의 누이 나의 임이시여
준비 아니 해도 좋아요.
내일 먹고 마실 것들이
어제와 오늘처럼 언제나
다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나 이제 떠나간다 해도
못다 한 말 남아 있다면
내 몸과 마음 흩어진대도
그 말이 날 반드시 다시
걷어 모아 줄 때가 되면
새롭게 태어난 숨소리로
그대들 앞에 나타나 그
못다 한 말 말하게 되리오.
나 이제 사라진다 해도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아름다운 진실 있다면
그 진실이 나를 또다시
찾아줄 것이고 그때 나
새로이 빚어진 모습으로
그대들 앞에 다시 나타나
그 진실 밝히게 되리오.
아름답고 참된 진실이란
언제고 드러나 보이리요.
나 죽음 너머 영생하리.
몸 떠난 내 넋이 있어
안개로 돌아가 떠돌며
파도소리 바람소리로
그대들 가슴속에 살아
그대들 밥상에도 앉고
그대들과 같이 거닐며
우리 다 함께 노래하리.
죽음이란 우리가 쓰는
우리 얼굴 탈바꿈이리.
땅에서 노래하던 사람
살아도 죽어도 가수로
바닷속과 하늘에서도
어디에서나 노래하리.
제자들 모두 하나같이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알무스타파 떠나는걸
아무도 막을 수 없었고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치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 하나 날아가듯
알무스타파 멀리 떠났다.
엷은 한 줄기 빛살같이
그는 하늘로 사라졌다.
그러자 아홉 제자 모두
뿔뿔이 제 갈 길 가고
카리마만 남아 있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저 멀리 한 줄기 빛을
꼼짝 않고 지켜보면서
카리마 가슴 속 깊이
스며드는 외로운 슬픔
그리고 참을 수 없게
사무치는 그리움에서
알무스타파가 남기고
간 말들을 되새겼다.
나 이제 떠나간다 해도
그대에게 못다 한 말
남아 있다면 그 말이
날 걷어 모아 줄 테고
나 그대에게 돌아오리.
우리 새로 태어나리
저녁노을 언덕에 올라서
짙은 안개 속에 휩싸이자
저 아래 세상으로부터는
가려 보이지 아니하는
구름 바위 구름 숲에서
알무스타파 외쳐 가로되
오 내 누이 하얀 안개여
아직 모두어지지 않은 숨
입 밖에 나오지 않은 말
당신에게 나 돌아옵니다.
오 내 누이 하얀 안개여
날개 돋친 하늘 숨결이여
우리 이제 같이 있어요.
다음 세상에 우리 새로
태어날 그 날까지 함께.
아 정녕 그날이 오면
당신은 그 어느 풀잎에
맺혀 반짝이는 이슬방울
나는 미지의 어떤 여인
따뜻한 품속 갓난애로
우리 다시 태어나겠지요.
오 내 누이 하얀 안개여
당신의 가슴처럼 스스로
깊은 속 찾는 마음으로
당신의 욕망처럼 스스로
뛰놀듯 하는 바람으로
당신의 생각처럼 스스로
떠도는 방랑의 꿈 꾸면서
당신에게 나 돌아옵니다.
영원과 무한과 절대이신
우리 어버이의 첫 아이
오 나의 누이 하얀 안개
당신에게 나 아무것도
갖고 오지 못했어요.
오 내 누이 하얀 안개여
당신이 나보고 뿌리라던
씨앗들 아직까지 그대로
내 두 손에 남아 있고요.
당신이 나보고 부르라던
노래들 아직까지 그대로
내 입술에 붙어 있으니
어떤 씨앗의 열매 하나
어떤 노래의 메아리조차
난 갖고 오지 못했어요.
내 손이 밤처럼 무겁고
내 입술 떼어지지 않아.
오 다정한 누이 안개여
나의 말 좀 들어보세요.
난 삶을 무척 사랑했고
사람들 날 사랑해줬죠.
세상 기쁨에 한껏 웃고
세상 슬픔에 울었었죠.
그렇지만 넘을 수 없는
커다란 간격이 있었어요.
세상과 나 사이에서요.
죽음 모르는 영원한 안개
오 사랑하는 나의 누이여
나 이제 당신과 하나 되어
더 이상 내가 나 아니죠.
우리 사이 벽 다 무너져
모든 사슬이 다 풀렸어요.
그래서 이렇게 피어올라
나 또한 안개가 되었지요.
그러니 우리 함께 더불어
생명의 바다 위로 떠돌다
삶의 또 하루 맞게 되면
아 그날 그 새벽 아침에
당신은 그 어느 풀잎에
나는 어느 여인 품속에
우리 새로 태어나겠지요.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