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은 더 이상 식량을 생산하는 1차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기후위기와 초고령사회, 정신건강 문제, 지역소멸이 복합적으로 심화되면서 농업은 건강과 환경, 복지, 교육을 연결하는 사회적 기반 산업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본의 한 의과대학이 농학 분야를 신설하며 의료와 농업을 융합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대학의 역할이 전문지식 전달을 넘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 플랫폼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일본의 사례는 농업을 단순한 생산기술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지키는 예방의학의 한 축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학생들은 강의실을 벗어나 지역 농촌에서 유기농업과 식품 생산, 생태환경을 직접 경험하며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이러한 교육은 의료인이 질병 치료뿐 아니라 생활환경과 식생활, 지역공동체까지 이해하는 통합적 시각을 갖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원헬스(One Health)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사람의 건강은 동물과 환경의 건강과 분리될 수 없으며, 건강한 토양과 안전한 먹거리, 지속가능한 농업이 결국 국민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건국대학교는 바이오힐링 분야를 중심으로 식물과 자연을 활용한 치유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신한대학교는 치유산업 분야에서 치유농업과 산림치유, 해양치유 등을 융합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전주기전대학은 치유농업 전문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춘 학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운대학교는 사회복지와 치유농업을 결합한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경상국립대학교 역시 치유농업사 양성과정을 운영하며 현장 전문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 국내 사례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 대학들이 치유농업과 원예치료 등 개별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면, 일본은 의과대학이 직접 농업을 교육과 연구의 핵심 축으로 편입해 의료·농업·환경을 하나의 교육체계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특정 학과를 신설하는 수준을 넘어 대학 전체의 교육철학을 바꾸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치유농업 발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치유농업은 단순한 체험활동이 아니라 농업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하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전문 분야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는 의료기관, 복지시설, 지방자치단체, 대학, 치유농장이 협력하는 지역 기반 생태계 구축이 치유농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대학은 학생들에게 농업기술만을 가르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형 교육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 지역 농촌을 실험실로 삼고, 주민과 함께 연구하며, 농업을 통해 건강과 복지,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교육모델은 앞으로 지방대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사례는 대학 교육이 사회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모델이다. 의료와 농업, 환경을 연결한 융합교육은 건강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인재상을 제시하며, 학생들에게도 현장 중심의 문제 해결 역량을 키워줄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치유농업을 국가 정책으로 육성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농업을 단순한 생산기술 교육이 아닌 의료·복지·환경·지역개발과 연계한 융합교육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대학이 지역 농업인과 의료기관, 복지시설, 지방자치단체를 연결하는 거점으로 자리 잡는다면 지역소멸 대응과 청년 정착, 고령사회 건강관리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은 더 이상 산업의 한 분야가 아니라 사람을 치유하고 지역을 살리며 미래를 준비하는 공공자산이다. 앞으로 대학이 학문의 경계를 넘어 의료와 농업, 환경을 연결하는 혁신의 중심이 될 때, 치유농업 역시 국민 건강과 지역사회 발전을 이끄는 핵심 분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일본 교토부 메이지국제의료대학 ‘식농에콜로지학과’ 누리집 캡처, 농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