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8] - 사라진 열 지파, 흔적 찾기

종교적 편의주의가 불러온 비극, 북이스라엘 10지파의 종족 소멸

역사 속으로 퇴장한 단·시므온 지파, 정체성을 잃어버린 결말

아까워서 남겨둔 타협은 개혁이 아니다… 오늘날 무너지는 영성을 향한 경고

박상돈 교수 | 합동총회신학교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구성된 혈연 공동체입니다. 그 시작은 야곱이 낳은 열두 아들입니다. 아들들이 곧바로 각 지파의 모체가 된 셈입니다.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 초청으로 야곱 가족이 이주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집트로 귀빈 대우를 받으며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왕권이 바뀌자 이스라엘은 홀대를 넘어 학대를 받습니다. 그렇게 노예로 살며 본향을 그리워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구원해 냅니다. 그때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모두 몇 지파입니까? 열두 지파가 아니라 사실은 열세 지파 아닙니까?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로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열두 지파라 부름은 통상 레위 지파 때문입니다. 잘 아는 대로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여 빼놓았습니다. 그렇게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특이 계층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다윗은 성전시대를 대비해 레위 지파 역할을 새롭게 구성합니다. 성막과 성전에서 레위 지파 역할은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막에서는 이동과 관련된 직임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시대가 되면 이동과 관련된 직임은 무의미합니다. 더구나 레위 지파는 특이하게도 뭉쳐 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성읍 일부를 떼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복과 분배 과정을 살펴보십시오. 이스라엘 각 지파가 제비뽑기로 가나안 땅을 분배받습니다. 그렇게 정복이 끝나자 여섯 곳에 도피성이 세워집니다(수 20:7-9). 그리고 도피성을 포함하여 48개 성읍을 제비뽑기로 추려냅니다. 레위 지파는 그 48개 성읍을 각 지파로부터 재분배받습니다. 제사장에게 주어진 성읍만 유다와 베냐민 지파 땅에 있습니다. 도피성 헤브론을 비롯해 13개 성읍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성읍은 모두 북이스라엘 지파에 속한 땅들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더구나 북이스라엘은 아무에게나 제사장직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 상황을 잘 기억하십시오. 레위 지파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모두가 유다로 넘어갑니다(대하 11:13-14).

 

오백 년 넘게 살아온 고향을 쉽게 버리고 떠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레위 지파는 과감하게 모두를 다 버리고 빈손으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익숙한 자리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정황상 레위 지파가 빠져나간 그 빈자리에 시므온 지파가 들어갔다고 보입니다. 왜냐면 시므온 지파는 유다 최남단에 있습니다. 지리적 위치는 남 유다가 맞는데 북이스라엘 편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원래가 유다 지파 땅인 그곳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열 지파 가운데 시므온 지파가 가장 먼저 해체 과정을 겪었다고 보입니다.

 

또한 요단 동편을 차지한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도 그렇습니다. 아울러 단 지파 역시 이스라엘과 멀어집니다. 원래 단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유다 지파 서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사는 블레셋 족속을 제대로 정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뒤섞여 살았습니다. 문제는 블레셋이 강성해질 때입니다. 단 지파가 오히려 견디지 못하고 이주를 결행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북쪽 경계를 넘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합니다. 안타깝게도 단 지파 소수만이 잔류하고 다수는 최북단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그들이 이주하면서 제사장을 따로 세웠다는 사실입니다(삿 18:27-31). 그렇게 단 지파와 이스라엘 간 정체성은 축소되고 희미해집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보십시오. 요셉 지파는 사실상 에브라임 지파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왜냐면 므낫세 지파가 따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늘 등장하던 단 지파가 없습니다(계 7:5-8). 이는 단 지파가 열두 지파 중 연결고리가 가장 약했음을 뜻합니다. 르우벤 지파가 사라질 무렵 단 지파도 없어졌다고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설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가에 옮긴지라. 그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으니라."(대상 5:6)

 

역대기는 바빌론 포로기 이후 기록된 역사서입니다. 그러니 북이스라엘 멸망 이후 2백 년 정도 흐른 시점입니다. 그때까지도 북이스라엘은 되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페르시아는 예전에 붙잡혀온 포로를 되돌려보내는 정책을 펼칩니다. 그런데 아시리아가 잡아간 북이스라엘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미 북이스라엘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마리아인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정통 이스라엘 지파와는 사뭇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인들 역시 되돌려보내지 않음은 정체성 상실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사마리아인이라는 새로운 종족과 사마리아 종교라는 혼합종교가 등장합니다. 정리하자면 북이스라엘 지파는 그 누구도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요단강 동편 지파만 아니라 가나안에 있었던 지파도 그랬습니다.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왕하 17:6)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왕하 17:23 하)

 

그러니 북이스라엘은 왜 돌아오지 못하고 종족 소멸과정을 겪게 됩니까? 그 이유는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로보암1세는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또한 그 죄가 얼마나 달콤했으면 그 후예들도 그 길을 따랐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이스라엘 정체성마저 잃어버렸습니까? 선지자가 없어서 그렇습니까? 엘리야나 엘리사만큼 유명한 선지자가 또 누구입니까? 요나와 호세아는 또 어떻습니까? 그러니 올바른 하나님 은성이 없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영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면 경계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영성은 아주 조금씩 무너집니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와장창 무너져내립니다. 신앙처럼 포장된 불신앙에 마비되면 대안이 별로 없습니다. 아까워서 남겨둔 개혁이 어떻게 온전한 개혁일 수 있습니까(삼상 15:9)? 개혁은 전부를 잘라내고 끊어낼 수 있는 용기에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예루살렘 성전을 두려워하여 개혁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개혁안은 진짜 개혁이 맞습니까?

 

여로보암이 내놓은 개혁안은 온통 편의주의로 채워져 있습니다. 제사장 하고 싶은 사람이 제사장 하면 됩니다. 아무 때나 드리고 싶으면 그때 드리면 됩니다. 심지어 아무 데서나 예배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무나 제사장이랍시고 세웠습니다. 절기마저 편한 대로 바꿔버렸습니다. 여기에다 금송아지까지 만들어 제단에 세워 경배하게 합니다(왕상 12:25-33). 그러니 이게 도대체 무슨 개혁입니까? 멍청하게도 북이스라엘 왕들은 그 여로보암이 세운 길을 여전히 따라갑니다. 북이스라엘 종족 해체가 그 결말이라니 얼마나 씁쓸합니까?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구성된 혈연공동체가 가장 중요한 정체성입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과 연관된 열 지파는 종족 해체라는 불명예와 함께 역사에서 퇴장되었습니다. 그러니 과연 열두 지파 중 어떤 지파가 현재 남아있는지 살피고 그 의미를 성찰해 보십시오.

 

 

 

 

작성 2026.06.30 18:30 수정 2026.06.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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