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정찬] (시) 칠월의 꽃 ‘치자꽃 외 4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한정찬 시인의 시, 칠월의 꽃 치자꽃 외 4


  

치자꽃 

 


치자꽃 향기를 가슴에 품고
먹구름이 걸어오는 달이다.


싱그러운 산하에
신록은 늘 한 줄기 바람 따라
몸을 마구 흔든다.


더위에 지친 길을 걸으며
삶을 생각하고, 적응한다


삶은
맑은 날에 성장하지만
더위와 장마 견디고
시간 바람이 통과해야만
제빛을 더 곱게 낸다


칠월에는
진심으로 사는 사람이

곱게 핀 치자꽃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멋지다.

* 시작 노트
칠월은 장맛비와 뜨거운 햇살, 신록과 꽃향기가 함께 쉬는 계절이다. 지루한 장마, 뜨거운 햇살마저 생명의 일부로 여기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사는 사람들의 진솔함을 담아내고자 했다.

 

 

 

범부채꽃

 

칠월.

 

호랑이 한 마리
꽃으로 환생하여
부채를 펼친다.

 

비바람과
천둥에

더위까지 먹어
호랑이를 닮은

무늬.

 

폭우에도
바람에도
갈증에도

범부채는
꽃을 접지 않는다.

 

* 시작 노트

농장 가장자리에 꽃의 무늬가 호랑이의 줄무늬를 닮은 핀 범부채 꽃씨를 심었다. 비바람과 폭염을 견디면서도 끝내 꽃을 접지 않는 모습은 꽃을 넘어 삶의 자세처럼 보였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삶의 빛과 품위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를 지었다.

 

 

 

나리꽃

 

해마다 칠월이면
농장 가장자리에 나리꽃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피어난다.


나리꽃 앞에 서면 괜스레 
추억도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간
사람이 생각난다.


문득
꽃잎 사이로 바람 불어와 스치면

그 사람은 금방이라도
와르르 웃으며 달려와
이름을 불러줄 것만 같다


나는 오래도록
나리꽃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 시작 노트
해마다 피고 지는 칠월의 나리꽃을 보면서 시간 너머에 머물러 있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담아보려고 했다.

 

 

 

달맞이꽃

 


바람 없는 새벽
농장 주변에 핀 달맞이꽃

침묵으로
내게 안부를 묻는다.


꽃잎에
송골송골 맺힌 이슬.


밤의 깊은 진통 끝에
하늘과 땅이 함께 빚은
맑은 생명의 보석이다


해가 뜨면
사라질 것이지만


나는
영혼처럼 빛나는
이슬방울에
삶의 무게를 찍어
화룡점정하고 있다

* 시작 노트
새벽 농장 주변 달맞이꽃은 말없이 제 삶을 비춘다. 바람도 멈춘 고요 속에서 이슬은 밤의 시간을 견디며 태어나고, 해가 뜨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달맞이꽃에서 영혼의 맑은 숨결을 길어 올리고 싶었다.

 

 

 

개망초꽃

 

지천으로 번져
흔한 이름 하나 얻었을 뿐,

가느다란 흰 목 세워
땅속 깊이 잠든 숨결 깨우는
칠월의 바람.

 

한낮 열기를 쓸어낸 바람,
꽃잎 끝에 머물다 떠나면
햇빛 물결을 입은
윤슬 한 조각 흔들리는
칠월의 물.

 

아무도 없는 빈 들녘에서
계절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개망초꽃을 피우고,

이름보다 먼저 피어나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

 

보라,
세상 가장 흔한 얼굴로
가장 오래
세상을 온통 밝히는

저 수다한 개망초꽃.

 

* 시작 노트
칠월 들길을 걷다 보면 이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다. 너무 흔해서 쉽게 지나치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 바람과 햇빛을 맞이하는 개망초꽃이다. 흔하다는 이유로 가치가 가려지는 존재들을 개망초꽃에 담아보고 싶었다.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농업인(小農), 전업 시인, 안전교육전문강사·소방안전컨설턴트 외

()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시집한 줄기 바람(1988) 29, 한정찬시전집 2, 한정찬시선집 1

 농촌문학상옥로문학상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6.06.30 18:27 수정 2026.06.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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