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필 칼럼]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착각

가까울수록 표현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생일을 기억해 주길 바랐는데 그냥 지나갔을 때. 힘든 날 먼저 안부를 물어주길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을 때. 표정만 봐도 알아줬으면 했는데 상대는 멀쩡히 웃고 있을 때. 그리고 우리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 정도면 말 안 해도 알아줘야 하는 거 아냐?"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십 년 넘게 본 사이니까.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 마음을 당연히 알아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심리학에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이라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이나 생각이 상대에게 훤히 들여다보일 거라 여기는 착각이다. 코넬대학교의 토머스 길로비치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 속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정도를 실제보다 훨씬 크게 부풀려 생각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흥미로운 건 이 착각이 사이가 가까울수록 더 심해진다는 점이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이 사람은 나를 잘 아니까 굳이 설명 안 해도 알겠지" 하고 더 크게 기대한다. 그래서 더 자주 더 깊이 서운해진다.

 

수의사로 일하며 매일 마주하는 진실이 하나 있다. 내 환자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읽어야 한다. 웅크린 자세, 미세하게 피하는 뒷다리, 평소와 다른 눈빛, 절반이 남은 밥그릇. 말 없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더듬어 통증의 자리를 짚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정작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오히려 말하지 않고도 알아주길 바란다. 동물조차 신호를 보내야 읽히는데 사람은 신호 없이 읽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기 머리 위에는 한가득 짐이 얹혀 있다. 그런데 그 짐은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목과 어깨를 짓누르는 그 무게를 느끼는 건 오직 나뿐이다. 마음도 똑같다. 내가 지금 얼마나 서운한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그 무게는 나만 안다. 표현하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사람도 알 길이 없다.

 

수천 쌍의 부부를 수십 년간 관찰한 워싱턴대학교의 존 가트먼은, 오래가는 관계와 무너지는 관계를 가르는 것이 결국 감정을 주고받는 방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왜 힘든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쪽이 갈등도 잘 풀고 관계도 오래 지킨다.

 

친구도, 동료도 마찬가지다. "알아주겠지" 하고 삼킨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에서 원망으로 자랄 뿐이다. 그리고 이 착각은 양방향이다. 상대가 내 마음을 못 알아준다고 서운해하는 그 순간, 나 역시 상대의 마음을 넘겨짚고 있는지도 모른다. 넘겨짚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요즘 마음이 어때?"라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묻기를 게을리한다. 다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가족도 친구도 결국 나와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다. 아무리 가까워도 내 머릿속까지 들어와 살 수는 없다. 알아주길 기다리는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그 편함의 끝에는 대개 서운함이 남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그 한마디를 미루고 있는가.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

 

작성 2026.06.30 10:48 수정 2026.06.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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