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가 일본일까?
倭(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오해되고 있는 첫 번째 존재일 것이다.
혐오하게 되는 원인이야 임진왜란이라는 침략,
또 35년 동안 나라를 빼앗겼었다는 치욕에 몸이 떨리기 때문이다.
나아가 간신히 광복하였더니 세계적 냉전구도 형성으로
침략국이며 패전국인 일본은 멀쩡하고,
오히려 식민지배의 피해 당사자인 우리나라는 남북 분할 점령된다.
그럼에도 비극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식민지 피해로 허덕이던 남한을 소련의 공산당 괴뢰정권이 침략하므로
반쪽밖에 남지 않은 남한은 완전히 초토화되고,
일본에는 경제부흥의 계기를 안겨준다.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다.
다만 감정을 내려놓고 사료가 이야기하는 사실을 찾아보자.
신라를 둘러싼 왜·당의 지리적 인접성
앞서 올린 몇 번의 글에서도
왜인은 우리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임을 넌지시 피력하였다.
잊은 독자를 위하여 다시 서술하자면,
‘삼국사’ 거의 첫머리인 박혁거세 38년, 마한에 호공을 외교사절로 보낸다.
그런 호공이 “本倭人(본래 왜인)”이라고 하였다.
즉 문자 그대로 본래 왜인인 관리를 외교사절로 보냈다는 이야기다.
예나 이제나 외교사절은 국가와 국가원수를 대신하는 자리라
어지간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맡길 수 없음이 상식이다.
벌휴이사금 10년(193년) 6월에는 왜인이 기근이 심하여
신라로 먹을 것을 구하러 왔다고 하였다.
그 인원이 몇 명, 몇십 명이 아니라
무려 천여 명이었다고 하였다.
신라와 왜가 경상도와 일본열도로 떨어져 있던 국가들이라면,
배고프다고 천여 명이 걸식하러 올 수 있는 상황이 될까?
헌덕왕 8년(816년)에는 신라가 흉년으로 기근이 드니
唐(당)의 浙東(절동)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자가 170명이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 또한 경상도에 있는 신라와
당나라의 양자강이 두 번 꺾인다는 절동이라면
식량을 구하러 갈 수 있겠는가?
이 세 기록만으로도 왜는 결코 ‘남’일 수 없는 존재이고,
왜와 신라는 경계를 맞대고 있는 존재,
당은 신라의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국경을 맞대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지나 사서에서 왜는 동이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중요한 사건을
시대별로 기록하는 편년체와 달리,
특정한 주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전체라는
역사서술 방식은 동양사서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사마천이 시작하였다.
사마천의 사기를 예로 들어 기전체를 알아보자면,
사기는 130권인데 여기에서
권은 일종의 목차이며 분류체계를 내포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권1~권12는 군주의 통치 행위를 ‘본기’라 하였고,
권13~권22는 간략하게 시대흐름을 볼 수 있는 년표,
권23~권30은 제도나 경제와 같은 주제별 내용인 ‘書(서)’,
권31~권60은 제후국 통치자의 행적을 기록한 ‘세가’,
권61~130은 업적이 큰 신하들이나 경계하여야 할 인물의 전기와 함께
갈등이나 교섭의 대상이 되는 종족 관련 내용은 ‘렬전’으로 묶었다.
후대에는 편찬자에 따라 지리, 문화, 경제 등의 문항은
각각 내용별로 구분하여 ‘志(지)’라는 대분류로 묶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사학계는 지나사서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왜를 동이의 범주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제라기보다 철저하게 배척하는 듯하다.
비슷하게 지나인들은 우리를 타자라고 생각하여 ‘동이’라며 분별, 배척하는데,
그들이 존경하는 ‘사기 오제본기’에 기록된 자신들의 조상은 모조리 동이다.
나아가 ‘왜’를 기록한 모든 편찬자들은
그 ‘왜’를 늘 동이 항목에 분류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사학자들은 ‘왜’ 항목이 동이에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줄곧 외면하고 동이가 아니라고 배척했다.
[필자는 中國(중국)을 역사적 맥락상 '지나'로 표기한다.]
사기와 다른 후대의 지나 사서
같은 기전체라도 사서마다 나름대로 조금씩 다른 원칙이 존재하여,
분류 자체가 독자에게 알려주는 정보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 정보 가운데 하나가 ‘지나 사서 상의 我(아; 나)와 非我(비아; 남)의 구분’이다.
주로 ‘아(지나)’에 대한 기록이라 ‘비아’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지만,
그 ‘비아’를 기록한 ‘렬전’에서 지나인들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기’라면 흉노, 남월, 동월, 조선, 서남이, 대완 등의
여섯 렬전이 각각 존재하여 ‘漢(한)’의 침략 대상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사기’는 앞과 같이 6권의 ‘비아렬전’이 있으나,
그 후예 국가는 존속기간과 관심지역에 따라
‘비아렬전’의 대상이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한서’는 110권으로 줄고 ‘비아’가 흉노와 서남이양월조선으로 한정된다.
다음 ‘후한서’는 120권인데 ‘동이’, ‘남만서남이’, ‘서강’, ‘서역’, ‘남흉노’, ‘오환선비’다.
삼국지의 삼국시대는 불과 60년이며,
삼국이라지만 魏(위)나라(220~266, 촉; 221~263, 오; 229~280)가 중심이라
위서가 30권, 촉서가 15권, 오서가 20권이어서 총 65권인데
‘오환선비동이전’ 1권만 ‘비아’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이 ‘오환선비동이전’은 남제서의 ‘蠻 東南夷(만 동남이)’전과 함께
우리 영역에 관련된 매우 결정적 정보를 전하고 있다.
이렇듯 ‘권’ 자체가 하나의 분류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나아가 ‘비아’의 기록인 ‘동이전’에 늘 ‘왜’를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지나인들이 ‘왜’를 ‘동이의 구성원’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왜’를 배척한다는 사실은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비판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지나 사서를 면밀하게 검토하고자
‘동이전’과 ‘왜’를 기록한 사서를 찾아본다.
지나 사서 검토: 왜를 기록한 사서 탐색
‘사기’와 ‘한서’: 사기의 권115 ‘조선열전’ 제55와
한서 권95 ‘서남이양월조선전’ 제65는 거의 동일하여
하나로 다룰 수 있다.
내용은 전한의 무제가 이미 이백 년 전에 망한
조선의 잔존세력을 침략 대상으로 삼아, 벌였던 전쟁기록이다.
즉 기준의 (번)조선을 빼앗은 위만의 나라를 ‘조선’으로 오해하며,
그의 손자 ‘우거’와 전쟁한 기록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 땅이 하북성 허리에 해당하는 창해지역이라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후한서’: 권85가 ‘동이렬전’ 제75이고,
{부여, 읍루, 고구리, 구리, 동옥저, 예, 한, 왜}로 분류하여 기록하였다.
다만 ‘한’은 3종이 있다며 마한, 진한, 변한으로 다시 나누었다.
권86은 남만서남이렬전, 권87이 서강전, 권88은 서역전,
권89는 남흉노렬전, 권90이 오환선비렬전이다.
분리하였지만 대부분 우리와 관련 있는 종족들의 기록이다.
그 가운데 특히 ‘오환선비렬전’은 우리가 관심을 많이 기울여야 하는 기록이다.
삼국지: 권30이 위서 30이고 ‘오환선비동이전’ 제30인데,
{요서오환, 선비}와 함께 {부여, 고구리, 동옥저, 읍루, 예, 한, 진한, 변한, 왜인}를 기록하였다.
‘비아 렬전’은 이것 하나뿐이지만, ‘왜’에 대한 정보는 후한서와 함께 엄청 중요하다.
晉書(진서): 권97, 렬전 제67 ‘四夷(사이)’라는 제하에
{부여, 마한, 진한, 숙신씨, 왜인, 비리 등 십국}으로 묶고,
서융을 다시 {토욕혼, 언기국, 구자국, 대완국, 강거국, 대진국}으로,
남만을 {임읍국, 부남}으로, 북적이라며 {흉노}를 기록하여
‘사이’의 범주로 구분하였다.
총 130권인데 서진과 동진을 아울러 기록하였고,
載記(재기)라는 독특한 대분류 속에
晉(진)시대 화북지역에 난립했던 ‘5호 16국’의 역사와 군주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송서: 권97 ‘이만전’ 가운데 {고구리, 백제, 왜국}을 묶어 기록하였다.
총 100권이고, 권96이 선비토욕혼, 권98 저호전으로 되어 있다.
남북조시대의 이 남조 송은 군주의 성이 劉(류)씨였기 때문에 劉宋(류송)으로 불리며,
존속기간은 420~479으로 동진 정권을 탈취하고, 다시 남제에게 탈취당한다.
남제서: 권58, 렬전 제39 ‘만 동남이’라는 제하에
주로 호남과 호북성에 살던 종족을 ‘蠻(만)’이라 하여 묶어 기록하였고,
‘동남이’라 하여 동이와 남이를 뜻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동이는 {고리국, 백제}, 남이는 {가라국, 왜국}으로 묶어 분류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백제 관련 자료는 동양역사를 송두리째 바꾸게 만드는
충격적 내용이 기록되었다.
얼마나 충격적인지 고리 뒷부분, 백제 앞부분을 기록한
한쪽(앞뒷면 몽땅)이 깨끗하게 뜯겨 없어져 322자를 볼 수 없다.
총 59권이고, 권57은 북위를 낮잡아 일컫는 魏虜(위로)라고 하였다.
존속기간은 479~502에 불과한 23년이다.
梁書(량서): 권54. 렬전 제48 諸夷(해남, 동이, 서북 제융)라는 제하에
梁(량)을 중심으로 하고 諸夷(제이)를 변방으로 분별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해남’은 {임읍국, 부남국, 반반국, 단단국, 간타리국, 낭수국,
파리국, 중천축국, 사자국}으로 동남아에서 인도까지 포함되고,
‘서북 제융’은 감숙성에서 중앙아시아에 점점이 존재하였던
16개 국가나 종족을 포함하였다.
‘동이’는 {고구리, 백제, 신라, 왜}와 함께
거의 이름만 나열한 {주유국, 흑치국, 라국}과
{문신국, 대한국, 부상국, 녀국}이 포함되어 있으나 실체 파악은 어렵다.
고구리, 백제, 신라가 각각 1,389, 492, 328자임에 비하여
왜가 558자로 매우 많은 기록을 남겼다.
총 56권으로 다소 적은 분량이다. 존속기간은 502~557로 55년이었다.
陳書(진서): 동이전 등이 전혀 없이 본기와 렬전만 총 36권인데,
존속기간 불과 12년(557~589)으로 사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魏書(위서): 권100. 렬전 제88,
{고구리, 백제, 물길, 실위, 두막루, 지두우, 고막해, 거란, 오락후}를 나열하여 제목으로 삼았다.
권101은 {저, 토욕혼, 탕창상, 고창, 등지, 만, 요전}으로 서역의 나라를,
권102는 ‘서역’이라 제목을 삼고 수십 국을 기록하였고,
권103은 {연연, 흉노우문막괴, 도하단취륙권, 고차전}이다.
魏라는 국호가 여러 번 사용되어 접두어로 북을 덧붙여,
北魏(북위)라고 하였던 나라(탁발위나 원위라고 함)의 사서로,
‘왜’의 기록이 없다. 존속기간 386~534로 148년이지만
고구리와 깊은 관계가 있는 국가다.
北齊書(북제서): 동이전 등이 없이 총 50권으로 본기와 렬전으로만 구성되었다. 27년 존속.
周書(주서): 주서 권49. 렬전 제41, ‘異域 上(이역 상)’이며,
{고리, 백제, 만, 료, 탕창, 등지, 백란, 계호, 고막해}로 구성되었고,
권50은 ‘異域 下(이역 하)’이며 {돌궐, 토욕혼, 고창, 선선, 언기,
구자, 우전, 찰달, 속특, 안식, 파사}가 포함되었다.
북위를 계승한 북조의 나라이고 존속기간(24년)이 짧아 ‘왜’가 없다.
북사: 권94. 렬전 제82, {고구리, 백제, 신라, 물길, 해, 거란, 실위,
두막루, 지두우, 오락후, 류구, 왜}를 제목으로 삼았다.
권95가 만, 임읍 등의 동남아쪽,
권 96이 저, 토욕혼과 같은 서쪽의 나라들로
권97은 ‘서역’, 권98은 {연연, 흉노우문막괴, 도하단취륙권, 고차}로,
권99는 {돌권, 철륵}으로 구성되었다.
남사: 권79. 렬전 제69, ‘夷貊 下(이맥 하)’라는 제하에
{동이, 서융, 만, 서역 제국, 연연}이 포함되어 있는데,
동이에는 다시 {고구리, 백제, 신라, 왜국, 부상국}으로 나누어 기록,
권78. ‘夷貊 上(이맥 상)’라는 제하에 임읍국, 부남국 등의 동남아쪽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隋書(수서): 권81. 렬전 제46, ‘동이’를 제목으로 하여
{고리, 백제, 신라, 말갈, 류구국, 왜국}으로 구성되었다.
그 외에 권82가 남만, 권83이 서역,
권84가 북적을 제목으로 하여
{돌궐, 철륵, 해, 거란, 실위}가 나열되어 있다.
구당서: 권199 상. 렬전 제149 상, 제목을 ‘동이’라 하고,
줄을 바꾸어 {고리, 백제, 신라, 왜국, 일본}을 나열하였다.
그 외에 권199 하, ‘북적’이라 하고 줄 바꾸어
{철륵, 거란, 해, 실위, 말갈, 발해말갈, 습, 오라혼}을 나열하고 있다.
신당서: 권220. 렬전 제 145, ‘동이’라는 제하에
줄 바꾸어 {고리, 백제, 신라, 일본, 류귀, 담라} 등을 나열하였다.
그 외 권215~222까지 상하, 또는 상중하로 나누어져
13권의 ‘비아렬전’으로 주변의 다양한 종족을 기록하고 있다.
구오대사: 권138. 외국렬전 제2, 별도 제목 없이 내용에
{토번, 사주, 회골, 고리, 발해말갈, 흑수말갈, 신라,
당항, 우정, 점성, <우양>가만}이 포함되었다.
그 외 권137, 외국렬전 제1, 거란만 기록되어 있다. ‘왜’ 항목이 없다.
신오대사: 권74. 사이부록 제3, 제목 없고
{해, 거란, 토혼, 달단, 당항, 돌궐, 토번, 회골, 우전, 고리, 발해, 신라,
흑수말갈, 남조만, 양가만, 곤명, 점성}이 포함되어 있다. ‘왜’ 항목이 없다.
송사: 권491. 렬전 제250, 외국7, 제목을
{류구국, 안정국, 발해국, 일본국, 당항}으로 기재.
그 외에 권486 외국3은 ‘고리’만 기록.
권485~492에 ‘외국1~8’이라는 제호를 지나사서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그 외 권493~496은 ‘蠻夷(만이)1~3’이라는 제호 아래
溪峒(계동)이라고 명명한 교통이 불편하여 침략조차 어려운 지역의 종족을 기록하였다.
즉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였음을 인증하는 표현으로 판단된다.
요사: 권115. 렬전 제45, 二國外記(이국외기)에 {고리, 서하}가 실려있다.
금사: 권135. 렬전 제73 외국 하, ‘고리’만 존재.
그 외 권134는 외국 상인데 ‘서하’를 기록.
원사: 권208. 렬전 제95, ‘外夷一(외이 1)’이라는 제하에
{고리, 탐라, 일본}이 실려있다.
그 외 권209에 ‘외이 2’라는 제하에 안남,
권210에 ‘외이3’이라는 제하에
{면, 점성, 섬, 조왜, 류구, 삼서, 마팔아등국}을 기록하는데 그쳐,
‘원’이라는 나라가 주는 거대함을 생각하면 매우 초라해 보이는 사서이다.
명사: 권322. 렬전 제210 ‘외국3’ ‘일본’으로만 구성되었다.
그 외에 권320은 ‘외국1’ 제하에 조선, 권321은 외국2으로 안남,
권323은 외국4로 동지나해 섬나라들인데,
권328까지 외국이라 하였고, 권329~권332는 서역의 나라 기록이다.
청사고: 권526. 렬전313, ‘屬國一(속국1)’ 제하에
{조선, 류구}가 포함되었다. 일본은 없다.
이와 같이 지나 사서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왜를 동이의 범주에 넣었으나, 우리 사학계만 이를 외면해왔다.

왜와 일본
이렇게 ‘왜’를 기록한 사서가 단 9종이고, ‘일본’은 5종이다.
구당서는 유일하게 왜와 일본을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 권6 문무왕 10년(670)
倭國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 以爲名
왜국이 일본이라 국명을 바꾸었다. 스스로 해 뜨는 곳에 가까우므로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라는 기사가 있어 일본이라는 국명이 시작됨을 알린다.
이 사실은 구당서에서 뒷받침된다.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구당서 권199 상 동이전에 왜국과 일본이 모두 등장하는데,
倭國者古倭奴國也
왜국은 옛 왜노국이다
라고 하였고, 이어서
日本國者, 倭國之別種也. 以其國在日邊, 故以日本爲名. 或曰: 倭國自惡其名不雅, 改爲日本. 或云: 日本舊小國, 倂倭國之地
일본국은 왜국의 별종이다. 그 나라가 해가 뜨는 곳에 있기 때문에 일본을 나라 이름으로 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왜국이 스스로 그 이름이 우아하지 못한 것을 싫어하여 일본으로 고쳤다고 한다. 혹은 말하기를, 일본은 과거에는 작은 나라였는데, 왜국의 땅을 병합하였다고 한다.
다만 구당서는 국명을 바꾼 시기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뒤따르는 다른 기사와 함께 신당서의 기사로 보아
백제가 멸망한 지 10년 이내였음을 추정할 수 있어 흥미를 끈다.
지나 사서가 일관되게 왜를 동이로 분류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왜를 무조건 '남'으로 밀어내온
우리 사학계의 태도는 재고할 이유가 충분하다.
계속되는 글에서
이번 글에 비약적으로 보이는 사실이
당연한 귀결일 수 있음을 깊이 연구하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