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אִישׁ (이쉬) - 남자, 사람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3)
개인적으로는 '~답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특히 '남자답게'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과연 나에게 있어 '남자답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지금까지 우리는 남자답다는 표현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해왔을까? 큰 덩치, 목소리가 크거나 공격적인 성향, 술을 잘 마실 때, 부끄럼이 없을 때, 남을 의식하지 않을 때 등 뭔가 태양인에 E(외향적) 성향을 가진 듯한 모습에 '남자답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반면에 덩치가 작거나 목소리가 작고, 수동적이거나 부끄럼이 많을 때 등 뭔가 소음인에 I(내향적) 성향을 가진 듯한 모습에는 '여자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기지배 같다'고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나 역시 위와 같은 기준에 많이 기대어 '남자답다'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며,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남자답다'는 표현을 위와 같은 기준을 두고 사용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남자답다는 것은 관용적 표현일 뿐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단군의 자손으로서, 내 부모의 자식으로서, 그리고 내 자식들의 부모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남자다운 삶'이다. 왜냐하면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기독교인으로서, 단군의 자손으로서, 내 부모의 자식으로서, 그리고 내 자식들의 부모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삶'은 '여자다운 삶'이 되었을 것이다.
덩치가 크지 않아도 누구보다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봤다. 목소리가 작아도 모두가 귀 기울이는 사람을 보았고, 공격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술을 잘 마시지 않아도 술자리를 흥겹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은 많다.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나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남자답다'는 말은 나에게 있어서는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왜냐면, 내가 남자로 태어났고, 지금도 남자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남자다움이란 '나'다운 것을 의미한다. 나답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고, 단군의 자손이며, 내 부모의 자식인 동시에 내 자식들의 부모다운' 것이다.
'남자답다'는 말을 '남성우월주의의 산물'이니 '성인지 감수성의 문제'이니 하는 말 같지도 않은 프레임을 씌워 왜곡하고 훼손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