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가 황금빛 돔을 등지고 계단을 내려왔다. 그의 표정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방금 그는 스무 명 남짓한 유대인과 그 단지 안에서 기도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스라엘 우익 정치인 모셰 페이글린이다. 그는 마치 다투거나 반박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읊듯, 담담하게 말했다. 이 땅 전부가 약속된 땅이며, 바로 이곳에 온 인류가 기도할 새 성전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서늘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35에이커의 땅에서, 그는 평화를 떠받쳐 온 약속 하나를 아무렇지 않게 밟고 있었다.
한 언덕, 두 이름
그곳은 이름이 둘이다. 무슬림에게는 알 하람 알 샤리프, 곧 고귀한 성역이다. 유대인에게는 성전산이다. 황금 바위 돔은 수 마일 밖에서도 보일 만큼 단지를 압도한다. 알아크사 사원은 꾸란에 등장하며, 무슬림은 이곳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믿는다. 1,300년 넘게 이슬람의 세 번째 성지였다. 동시에 이곳은 유대교 최고의 성지다. 그 아래 서쪽 벽 앞에서 유대인들은 기도하며, 서기 70년 로마군에 무너진 성전을 애도한다. 같은 흙을 두 신앙이 가장 거룩하게 여긴다. 한 뼘의 땅에 이토록 무거운 그리움이 포개진 곳은 지구상에 또 없다. 그래서 이곳은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중동을, 때로는 온 세계를 흔드는 화약고가 된다.
이 위태로운 공존을 떠받친 것이 '현상 유지'다. 1967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당시 국방장관 모셰 다얀은 충돌을 피하려 묘안을 냈다. 종교적 일상은 요르단계 이슬람 재단 와크프에 맡기고, 보안만 이스라엘이 쥔 것이다. 무슬림은 자유로이 예배하고, 비무슬림은 방문하되 기도하지 못한다. 다만 이스라엘이 1967년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병합한 일은 대부분의 나라가 인정하지 않는다.
점령 직후 이스라엘이 서쪽 벽 앞 광장을 넓히려 인접한 모로코 지구를 헐어 버린 것은, 현상 유지에 가한 첫 균열로 기록된다. 와크프의 관리는 1924년 이래 하셰미트 왕가가 후견해 왔고,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평화조약에서도 그 역할이 확인되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스라엘 최고 랍비청과 다수의 초정통파 랍비조차 율법을 근거로 그 단지 안 유대인 기도를 금한다. 페이글린이 공공연히 어기는 건, 적의 규칙이 아니라 자기 전통의 규칙이기도 하다.
금이 가는 약속
모든 균열은 한 사람의 산책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 9월, 우익 정치인 아리엘 샤론이 수백 명의 무장 경찰을 거느리고 그 단지에 올랐다. 도발로 읽힌 그 걸음은 제2차 인티파다의 불씨가 되었고, 이후 5년간 4천 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한 번의 방문이 한 세대의 피로 돌아온 것이다.
그날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요르단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경찰의 보호를 받은 유대인 정착민의 방문은 2003년 289명에서 2024년 5만 3천 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변두리의 운동이 어느새 정부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지난 5월 14일 예루살렘의 날, 극우 국가안보부 장관 이타마르 벤 그비르는 깃발을 든 군중을 이끌고 구시가지 무슬림 지구를 가로질러 단지에 올랐다. 그는 1967년 점령 당시의 구호를 빌려 "성전산은 우리 손에 있다"고 외쳤다. 그는 이미 장관직을 이용해 일부 구역의 유대인 기도와 노래를 허용했다. 네타냐후 총리실은 "현상 유지에 변화가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총리 자신은 올해 1월, 벤 그비르의 조치가 자신과 조율된 것이며 정책은 자기가 정한다고 말했다. 부인과 묵인이 한 입에서 나온 셈이다. 긴장은 말에 그치지 않았다. 올해 4월, 무슬림 예배자의 출입이 한 달 넘게 막힌 가운데, 경찰은 한 번에 150명까지 들이는 입장 계획을 준비했다. 5월의 깃발 행진 때는 구시가지가 사실상 봉쇄되었고, 팔레스타인 상점은 문을 닫아야 했다. 한편, 의회에서는 통곡의 벽 예배 권한을 예루살렘 수석 랍비들에게 넘기는 법안까지 논의되었다.
판도라의 상자
불안에 기름을 부은 건 한 보도였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 이스트 아이’는 여러 소식통을 들어, 이스라엘이 새 기구를 세워 이 단지를 '다종교 센터'로 선언하고 통치권을 점진적으로 장악하려 한다고 전했다. 의회 청문회에서 이를 질문받은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들어 본 적 없다"고 답했다.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 마이크 허커비는 평소 성지와 유대인의 연관성을 자주 언급해 온 인물이다. 한쪽에서는 같은 당 의원이 "이제 모스크를 없애고 성전을 지을 때"라고 외쳤다.
더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이 성전 운동에는 일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인까지 가세하고 있다. 예언과 정치가 뒤섞인 위험한 혼합물이다. 이스라엘 인권 단체의 한 연구자는, 한때 '미친 생각'으로 치부되던 제3성전 구상이 점점 주류로 들어오고 있다고 우려한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어느새 입에 오르고, 입에 오른 일이 어느새 계획이 된다.
현장의 목소리는 경고로 가득하다. 와크프 위원회 부위원장 무스타파 아부 스웨이 박사는 단호하다. 그는 알아크사를 그대로 두지 않고 평화를 구하는 일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 결과는 지역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모두를 서로의 적으로 돌려세울 뿐이라는 것이다.
와크프(이슬람의 재단)는 6월 초 성명에서, 보수·관리 작업을 가로막는 일이 재단의 권한을 마비시키려는 의도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요르단과 걸프 국가들, 이집트가 우려를 표했고, 영국 정부도 예루살렘 성지의 역사적 현상 유지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경보음이 울리는 동안, 정작 그 단지에서 예배하려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출입을 막혔다. 거룩한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투는 사이, 그 땅에서 무릎 꿇을 권리를 가진 보통 신자들이 먼저 쫓겨난 것이다. 성역을 둘러싼 거대한 정치가, 한 사람의 작은 기도를 짓밟는 풍경이다.
우는 예언자
나는 이 모든 장면 앞에서 한 사람을 떠올린다. 이천 년 전, 같은 도시를 바라보며 운 예언자다. 성경은 그가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적는다. "너도 오늘 평화에 이르는 길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누가복음 19:42) 그는 돌 하나가 돌 위에 남지 않을 날을 내다보며 울었다. 그 도시의 비극은 늘 같은 자리에서 반복된다. 가장 거룩한 것을 차지하려는 손이, 가장 거룩한 평화를 부순다.

거룩함은 소유가 아니라 경외다. 한 뼘의 흙을 누가 쥐느냐를 다투는 사이, 그 흙이 품은 기도의 무게는 잊힌다. 페이글린의 차분한 확신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확신은 종종 타인의 성소를 보지 못하게 한다. 내 기도가 옳다는 믿음이, 남의 기도를 짓밟을 권리가 되는 순간 신앙은 흉기가 된다. 황금 돔 아래에는 두 신앙의 천 년 묵은 그리움이 나란히 잠들어 있다. 그 그리움을 깨우는 것이 폭탄이어서는 안 된다. 평화는 한쪽이 다른 쪽을 지울 때가 아니라, 서로의 거룩함을 견뎌 줄 때 비로소 온다. 내가 두려운 것은 폭탄이 아니라 무감각이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익숙해지는 그 속도가 두렵다. 한 사람의 산책이 사천 명의 무덤이 되었던 그 길을, 우리는 정말 다시 걸으려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