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헌병분견대 전시관 영상실
현재는 창원으로 통합된 마산시는 오래된 역사가 있다. 일제강점기 마산은 수탈의 중심에서 중요한 도시였다. 그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현장이 구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일 것이다.
해방 후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면서 다행히 근래까지 온전히 남아 있었다. 2005년 마산 헌병 분견대 건물을 등록문화재 제198호로 지정했다. 그리고 창원시는 2018년 마산 헌병 분견대 건물을 마산의 근현대를 기억하는 전시관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마산 헌병 분견대’, 말 그대로 헌병이 주둔하던 공간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헌병은 무단통치의 상징이다. 그래서인지 ‘영상실’ 벽에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이라는 글이 벽에 있다. 일제강점기 헌병대를 끌려온다면 어떤 일을 당했을지 보여주는 전시도 있다.
해방 후에도 군 정보기관인 옛 보안 사령부의 마산 파견대가 '해양 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이 건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정체를 숨기고 ‘해양 공사’라는 간판을 달았던것처럼, 이 건물은 민간인 사찰을 위해 사용되었다.

윤용근 의원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file:///C:/Users/82105/Downloads/3.%20%EC%9C%A4%EC%9A%A9%EA%B7%BC%20%EC%9D%98%EC%9B%90%205%EB%B6%84%20%EC%9E%90%EC%9C%A0%EB%B0%9C%EC%96%B8.pdf)
그리고 민간인 학살에도 관여한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전시 내용 중 마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님과 허당 명도석 선생님에 대한 설명이 있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독립운동가이지만, 하신 일을 살펴 보니 몰랐던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이교재 선생님은 1887년 7월 9일 마산 진전면 오서리에서 출생한 선생은 백산 안희재 선생과 성재 권오봉 선생 밑에서 신학문을 수학했다. 참고로 마산에는 4.3 삼진의거라는 대단한 만세 운동이 있었다. 여기서 삼진은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이라는 마산의 세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산이나 창원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항쟁이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상주 대표를 맡으며 ‘칼톱회’라는 비밀 조직을 이끌었다. 상해와 국내를 오가며 비밀 조직과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활동했다. 1932년 마산경찰서에 붙잡힌 후 손톱·발톱이 뽑히는 혹독한 고문까지 당한 선생은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어 강제 출옥한 뒤 열흘 후 순국하신다.

허당 명도석 선생님도 만만치 않게 많은 일을 하셨다. 1916년 비밀결사 일합사 활동, 1927년 신간회 마산지회 활동, 의열단 경남 총책, 1945년 건국동맹 활동, 건국준비위원회 마산지부까지 1954년 돌아가실 때까지 민족을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하셨다.
의열단은 밀양의 일합사, 풍기의 광복단. 대구의 대한광복단의 인적 구성원을 계승하였다고 한다. 이 중 명도석 선생님은 일합사의 일원으로 의열단을 위해 활동했다고 한다.
'허당(虛堂)‘이라는 호는 말 그대로 빈 집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담은 호이다. ’주권을 잃은 국가는 빈집과 같다.‘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명도석 선생님은 창씨 개명을 일제의 강압에도 마지막까지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일부 한국인은 ‘시라카와‘처럼 전범 일본인을 따라 창씨 개명한 인물들도 찬양하는데, 이런 독립운동을 한 분을 왜 필자는 몰랐는지 미안할 뿐이었다.
죽헌 이교재 선생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칼톱’
http://www.korea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945
죽헌 이교재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7132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
https://v.daum.net/v/QaAdBWZwOa
이승만 정부 민간인 학살 - 마산 지역
https://v.daum.net/v/90DKsuRutx?f=p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286
최근까지도 계속되는 불법 민간인 사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