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에서 새로운 대량 학살이 일어날 위험: 알 파시르 시대의 시나리오가 되풀이되는 것일까

침묵 속의 도살: 왜 국제사회는 엘 파시르의 피눈물을 외면하는가

두 장군의 더러운 권력욕, 20년 전 다르푸르 집단학살의 잔혹한 재현

2023년의 포성과 2026년의 비극: 수단 엘 파시르 봉쇄가 낳은 인재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사막의 통곡, 엘 파시르가 던지는 피 묻은 질문

 

메마른 흙먼지가 사방을 집어삼키는 수단 북다르푸르의 주도 엘 파시르의 한 난민 캠프 텐트 안에는 차마 흐르지 못한 눈물이 진흙처럼 굳어 버린 아이가 앉아 있다. 열 살 남짓한 소년의 이름은 아흐메드다. 소년은 불과 사흘 전 밤하늘을 무차별적으로 찢어발기던 포탄 소리와 함께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흙벽돌 집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목도했다. 무너진 잔해 더미 틈새로 삐져나온 어머니의 피 묻은 옷자락을 붙잡고 소리쳐 울었지만, 돌아온 것은 또 다른 포탄의 날카로운 파편 음과 이웃들의 다급한 비명뿐이었다. 이것은 아프리카 대륙 변방에서 일어난 먼 나라의 비극적 우화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국제사회의 싸늘한 침묵과 철저한 외면 속에서 매일 같이 갱신되는 엘 파시르의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생존 기록이다.

 

과거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공포와 분노로 몰아넣었던 다르푸르 집단학살의 잔혹한 유령이 다시금 이 사막의 도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2023년 4월, 수도 하르툼에서 촉발된 수단 정부군(SAF)과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 사이의 무력 충돌은 권력의 정점에 서려는 두 장군의 비뚤어진 영토적 야욕이 빚어낸 참극이다. 정부군을 이끄는 압델 파타 알 부르한 장군과 신속 지원군의 수장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은 국가의 미래나 국민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의 끝없는 탐욕의 칼날은 결국 다르푸르 지역에서 정부군이 통제하는 마지막 교두보이자 안보의 최후 보루인 엘 파시르를 향해 잔인하게 조준되었다.

 

상황의 전개 과정은 잔인할 정도로 치밀하고 파괴적이었다. 신속 지원군은 도시의 사방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식량과 식수, 의료 물자의 공급망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고사 작전을 감행했다. 시장의 매대는 바닥을 드러냈고, 병원들은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치료할 기본적인 소독약과 붕대조차 없어 맨손으로 환자의 상처를 움켜쥐어야 하는 지옥으로 변모했다. 정교한 군사 전술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무차별적 포격은 오직 민간인들이 밀집한 주거 지역과 구호 기지에 집중되었다. 힘의 공백을 틈탄 군벌들의 잔혹한 칼춤 앞에 도시의 행정 시스템과 치안은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말았다.

 

안전지대가 사라진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인간 존엄성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고발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현지 병원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다 간신히 탈출한 한 의료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현장의 온도를 전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도살 행위다. 마취제도 없는 상태에서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어린아이들의 비명이 매시간 복도를 가득 채우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그의 고백은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에 수십 명씩 쏟아지는 시신들을 묻을 땅조차 마땅치 않아 난민 캠프 주변의 거친 모래밭에 대강 흙을 덮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엘 파시르의 일상이다.

 

이러한 참혹한 현실 앞에서 공동체의 도덕적 책임과 정의를 고심하는 이들은 성경의 오랜 경고를 무겁게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잠언 24장 11절에서 12절은 안일함에 빠진 우리를 향해 준엄한 어조로 질책한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시지 못하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이 말씀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우리가 흔히 늘어놓는 무지와 무관심이라는 비겁한 핑계를 단칼에 부숴버린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혹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는 구실로 엘 파시르의 학살을 방관하는 것은 죽어가는 형제의 피 흘림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죄악과 다름없다.

 

엘 파시르의 비극이 더욱 뼈아픈 이유는 이 거대한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외교적 기회들을 국제사회가 번번이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안보 현안과 경제적 이익에 몰두하느라 아프리카 대륙의 굶주린 절규를 철저히 뒷전으로 미루어 두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수많은 규탄 성명과 결의안을 쏟아냈지만, 그것은 현장의 포성을 단 1초도 멈추게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제재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벌들은 국제사회의 경고를 비웃으며 자신들의 피 묻은 진격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외교적 무능과 직무 유기가 만들어낸 거대한 틈바구니 속에서 무고한 생명들만 매일 낙엽처럼 바스러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촌은 이제 사막의 통곡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와 고통에 공감하는 따뜻한 체온을 회복해야만 한다. 안보는 특정 국가의 영토를 지키는 행위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신음하는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인류 전체의 공동 안보를 완성하는 핵심 고리다. 엘 파시르의 학살 리스크를 방치하는 것은 우리가 구축해 온 문명사회의 도덕적 토대가 완전히 붕괴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연약한 자의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는 풍요와 평화는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거울 뒤에 숨겨진 인류의 비겁한 자화상을 똑바로 직시하고, 방관의 죄책감으로부터 과감히 깨어나야 한다. 저 먼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 묻힌 아이들의 절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양심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비수다. 진정한 연대와 회복의 역사는 고통받는 이들의 얼굴을 가외의 존재로 취급하지 않고, 우리와 똑같은 존엄을 지닌 형제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출발한다. 엘 파시르가 학살의 잿더미로 변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 공동체의 정의로운 개입으로 구원의 손길을 극적으로 맞이할 것인가의 갈림길은 지금 우리의 시선에 달려 있다.

작성 2026.06.27 19:18 수정 2026.06.2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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