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미국과의 협상 과정은 정치 파벌 간 분열을 심화시켰다

"전쟁을 멈추지 말라" — 가장 작은 무리가 가장 크게 외치는 이유

휴전보다 위험한 내전: 이란의 진짜 전선은 협상 탁자가 아니다

파이다리 전선부터 모즈타바 침묵까지 — 이란 정파 분열 총정리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누구도 그를 본 적이 없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이야기다. 그는 취임 넉 달이 지나도록 공개 석상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말은 국영방송 앵커의 입을 통해, 때로는 인공지능이 만든 영상을 통해 전해진다. 그 보이지 않는 지도자의 그림자 아래, 테헤란의 광장에서는 군중이 "최후의 승리까지 전쟁을"이라 외친다.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국민은 굶주리며, 가장 큰 목소리는 가장 작은 무리에게서 나온다. 이것이 2026년 여름 이란의 풍경이다. 한 나라의 운명이 걸린 시간에, 권력의 중심은 비어 있고 변두리는 시끄럽다.

 

비극은 2026년 2월 28일에 시작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반세기 가까이 한 사람의 얼굴이던 권력이 하룻밤에 사라졌다. 전문가 회의는 사흘간의 논의 끝에 3월 9일,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88명 가운데 59명이 그의 손을 들었다. 개혁파와 온건파는 하타미, 로하니 같은 인물을 밀었으나 패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향한 분노가 복수의 결의로 타올랐고, 강경파가 그 불길을 탔다. 혁명수비대와 사이드 잘릴리를 비롯한 강경 세력이 모즈타바를 떠받쳤다. 지도자가 비자, 알리레자 아라피와 사법부 수장, 대통령으로 짜인 임시 지도위원회가 잠시 빈자리를 메웠다. 그러나 일부 성직자는 모즈타바의 건강과 통치 역량을 문제 삼으며 임시 체제로 돌아가자고 요구했다. 승계의 정당성을 둘러싼 잡음은 처음부터 가시지 않았다.

 

새 지도자는 아버지와 달랐다. 

 

알리 하메네이는 매주 연설로 국정의 방향을 직접 그었다. 그러나 모즈타바는 같은 공습에서 부상한 것으로 알려진 뒤, 글과 영상으로만 존재한다. 국제 위기 그룹의 한 분석가는 그를 "행방불명 상태"라 표현한다. 체제는 오히려 그 부재를 방패로 쓴다. 보이지 않는 지도자에게 말을 갖다 붙이면, 협상가들은 내부 비판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즈타바의 글은 주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와, 핵·미사일을 "국가의 자산"으로 지킨다는 데 집중한다. 정작 가장 뜨거운 핵 문제 자체에는 좀처럼 직접 답하지 않는다.

 

이런 권력의 공백 위로 한 작은 무리가 목소리를 키운다. 초강경 분파 '파이다리 전선'이다. 이들은 미국과의 협상을 아예 '하람', 곧 종교적으로 금지된 일이라 규정한다. 2015년 핵 합의를 실수라 보는 점에서는 트럼프와 닮았으나, 이유는 정반대다.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거점은 거리만이 아니다. 라자 뉴스와 케이한 같은 매체, 혁명수비대와 가까운 타스님·파르스가 강경 논조를 떠받친다. 분파의 얼굴인 잘릴리는 2024년 대선에서 1,300만 표를 얻은 거물이다. 사베티, 라사에이, 나바비안 같은 강경 의원들이 그 곁을 지킨다. 보수 주류조차 이들을 변방으로 여기지만, 영향력 있는 권력의 심장부 곳곳에 박혀 있다.

 

파이다리는 줄곧 패배해 왔다. 새 지도자 선출에서 그들이 준비한 후보 미르 바케리는 모즈타바에게 밀렸다. 의회에서도 의미 있는 지분은 쥐었으나 다수가 되지 못했다. 대선에서는 잘릴리를 내세워 현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을 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전직 라프산자니 대통령의 자문을 지낸 학자 굴람 알리 레자이는 이렇게 진단한다. 이들이 나라를 급진의 길로 끌고 가려 하며, 전쟁의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전쟁이 이어져야 정치적 변화의 틈에서 자기 후보를 권좌에 올릴 수 있다고 셈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리로 나온 젊고 이념적인 세대를 재빨리 끌어안았다. 알리 하메네이가 키우려 한 '젊고 경건한 혁명 세대'의 화신을 자처하며, 자신들이 이란 전체를 대표한다고 내세운다.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다. 레자이에 따르면 미국과의 관계를 두고 개혁파와 전통 보수파 사이에는 큰 견해차가 없다. 양쪽 모두 전쟁은 결국 협상으로 끝난다고 믿는다. 라자이는 이번 전쟁이 트럼프가 바라는 두세 달짜리 휴식이 아니라 영원히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파키스탄과 튀르키예, 중국 같은 나라의 중재가 그 길을 여는 데 힘이 되었다는 평가다. 6월 17일 서명된 양해각서도 최고국가안보회의가 군과 혁명수비대 최고 지휘관들의 지지를 업고 승인한 것이다. 결국 협상을 '하람'이라 외치는 쪽은 보수 진영 안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선 소수다.

 

문제는 이 소수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울린다는 점이다. 

 

라자이는 국영방송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방송의 연단과 전문가 자리가 나라의 문제를 보지 못하는 미숙한 이들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출연자들은 전쟁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몇 시간씩 방송하며 여론을 만든다. 그래서 국영방송이 신뢰를 잃었고, 사람들이 외국 채널로 눈을 돌린다고 그는 말한다.

 

지도자의 침묵은 더 깊은 균열을 낳는다. 모즈타바는 양해각서 서명 뒤 처음 내놓은 글에서 한발 물러섰다. 원칙적으로는 다른 생각이었으나,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국익 수호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기에 승인했다는 것이다. 책임의 무게를 대통령에게 넘긴 셈이다. 그러자 강경파는 페제시키안과 의회 의장 갈리바프가 지도자를 상대로 '쿠데타'를 벌였다고 몰아붙였다. 

 

같은 합의문을 두고, 한쪽은 정당한 결단이라 부르고 다른 쪽은 배신이라 부른다. 진짜 싸움은 보이지 않는 지도자의 뜻을 누가 대신 규정하느냐에 있다. 양해각서가 휘청이면 그 책임을 정부에 돌리고, 버티면 공을 지도부가 챙길 수 있는 구도다. 침묵은 때로 가장 교묘한 정치다.

 

그사이 보통 사람들의 식탁은 비어 간다. 1년 전과 견주어 빵값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페제시키안은 "돈 없이는 나라를 운영할 수 없다"는 직설로 현실을 들췄다. 광장의 구호와 부엌의 빈 접시가 같은 시간 위에 포개진다. 빵 한 덩이를 사려 줄을 선 사람에게, '최후의 승리'라는 구호는 너무 멀고 공허하다. 

 

그럼에도 라자이는 정부가 전쟁을 비교적 잘 관리했다고 본다. 식량 창고를 미리 채웠고, 튀르키예와 이라크 같은 이웃을 통한 운송로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웃 나라들이 이란의 등 뒤를 비우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이스라엘이 휴전과 무관하게 표적 암살을 이어 갈 것이라 보아,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성경은 말한다. "한 가정이 서로 갈라서면 그 가정은 무너지고 만다."(마가복음 3:25) 지금 이란의 가장 위태로운 전선은 어쩌면 협상 탁자가 아니라 그 집의 안쪽일지 모른다. 밖에서는 휴전이 위태롭게 이어지고, 안에서는 전쟁을 원하는 소수와 평화에 지친 다수가 같은 깃발 아래 서로 다른 미래를 잡아당긴다. 

 

보이지 않는 지도자, 굶주린 국민, 그리고 가장 크게 외치는 가장 작은 무리. 나는 이 풍경 앞에서 오래 멈춰 선다. 한 나라의 운명이, 정작 그 나라 국민의 빈 접시와는 무관한 자리에서 결정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보지 못한 지도자와, 끝내 배불리 먹지 못한 국민 사이에서, 그 나라의 내일은 과연 누구의 손에 쥐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빈 접시의 무게를 얼마나 헤아리고 있는가.

작성 2026.06.27 13:35 수정 2026.06.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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