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는 너무 빨리 시험대에 올랐다. 6월 17일 미국과 이란이 양해각서에 서명한 지 겨우 일주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화물선 한 척이 이란의 드론에 맞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어리석은 위반"이라 부르며 공습으로 답했고, 이란은 보복을 선언했다. 멈춘 줄 알았던 전쟁은 정말 끝난 것인가, 아니면 잠시 숨을 고른 것뿐인가. 호르무즈에서 벌어진 위태로운 48시간을 따라가 본다.
평화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이었다. 전쟁은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테헤란 타격으로 시작되었다. 분노한 이란은 세계 원유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를 닫아걸었고, 4월부터 미국이 이란 항구를 봉쇄하며 맞섰다. 6월 17일, 두 나라는 14개 조항의 양해각서에 서명하며 모든 전선에서 군사 작전을 멈추기로 했다. 핵심에는 호르무즈 해협이 있었다. 이란은 60일간 상업 선박의 무료 통항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바로 그 문장이 화근이었다.
문제는 '누가 해협을 관리하느냐'다. 미국은 자유 항행을 원했다. 어떤 배도 허락받지 않고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란은 통항을 허용하되, 자국의 관리와 허가 아래 두려 했다. 모든 배가 혁명수비대와 사전 조율을 거치는 그림이다. 한 전직 미국 외교관은 이 합의를 "모호함이 결함이 아니라 의도된 특징인 한 장 반짜리 문서"라 평했다. 빈칸이 너무 많은 약속은, 언제든 충돌의 빌미가 된다. 합의 직후 해협은 빠르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24일 하루 통항 선박은 78척으로 전쟁 이후 가장 많았다. 그러나 전쟁 전 하루 130척이 넘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회복의 기초는 여전히 얇았다.
방아쇠는 6월 25일에 당겨졌다. 오만 연안을 따라 호르무즈를 빠져나가던 싱가포르 선적 화물선 '이버 러블리'호가 이란의 자폭 드론에 맞았다. 배는 윗갑판에 작은 손상을 입었으나 항해를 이어 갔다. 다음 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에 격앙된 글을 올렸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지나는 선박에 드론 네 대를 쐈고, 미군이 세 대를 격추했으며, 한 대가 명중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를 휴전의 "어리석은 위반"이라 못 박았다.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합의 자체는 "매우 성공적"이라 자평했다. 기름값이 내렸고, 해협이 열렸으며,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않기로 했다는 이유다. 다만 이란이 "아직 쏠 수는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말은 곧 행동이 되었다.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는 26일 "강력한 대응"을 공식 발표했다. 미군 항공기가 이란의 미사일·드론 저장고와 해안 레이더 시설을 타격했다는 것이다. 공습은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 시리크 일대에 집중되었다. CENTCOM은 이란의 위험한 행동이 핵심 교역로의 항행 자유를 훼손했다고 적었다. 부통령 밴스는 "폭력은 폭력으로 갚는다"며, 합의에 이견이 있으면 전화를 들라고 일갈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곧장 맞받았다. 자신들이 미국의 공격을 막아 내 영토와 영해의 주권을 지켰으며, "우리가 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신속하고 단호하게 보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새로운 어리석음도 가혹한 응징을 부를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일주일 전의 악수가, 다시 사격 통제선 위로 미끄러진 순간이다.
26일 밤, 시리크의 밤하늘에서 굉음이 터졌다. 이란 국영방송과 누르뉴스는 최소 세 차례의 폭발음을 전했다. 현지 매체는 시리크의 타헤루이 부두가 공격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 내부의 목소리는 엇갈렸다. 일부 통신이 혁명수비대의 보복 성명을 전하자, 파르스 통신은 그 성명이 혁명수비대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몇몇 매체는 기사를 내렸다. 전장의 안개는 늘 가장 먼저 정보를 삼킨다.
해석도 정반대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장 이브라힘 아지지는 "이것은 휴전 위반이 아니라 휴전 관리"라고 받아쳤다. 호르무즈는 이란이 다스리니 규칙을 존중하라는 주장이다. 국제사회는 불안하다. 유엔 대변인 뒤자릭은 지금이 "큰 불확실성의 시기"라며 합의 준수를 호소했다. 그의 시선은 배에 발이 묶인 수천 명의 선원에게 머문다. 실제로 사건 직후 통항 속도는 눈에 띄게 둔해졌고, 일부 유조선은 유엔이 권고한 오만 인근 항로에서 뱃머리를 돌렸다. 해운 분석업체는 "한 주간 쌓인 신뢰가 첫 시험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앞서 미국과 걸프협력회의(GCC) 외무장관들은 호르무즈 통항에 어떤 요금도 물려선 안 된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서명한 지 겨우 일주일이다. 그 짧은 평화가 벌써 첫 시험대에 올랐다. 불씨는 거창한 배신이 아니라, 합의문에 남겨 둔 모호한 빈칸이었다. 한쪽은 그것을 '관리'라 부르고, 다른 한쪽은 '위반'이라 부른다. 같은 바다를 두고 두 나라가 전혀 다른 지도를 들고 선 셈이다. 그사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이는 따로 있다. 화물선 갑판에서 가족을 그리는 선원과, 기름값에 일상을 저당 잡힌 보통 사람들이다. 총성은 다시 울렸지만, 전면전으로 번질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평화란 서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빈칸을 메우려는 인내가 멈출 때, 포성은 언제든 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