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느닷없이 딸아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몸을 던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던 참이다. 그때 아내가 턱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딸아이에게 말했다. "아빠한테 돈 받아서 사 와."
순간 직감했다. 아, 이건 돈 내놓으라는 신호구나. 딸아이는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귀찮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속으로 얄팍한 계산을 했다. '이 시간에 설마 진짜 나가겠어? 카드만 주면 그냥 말겠지.' 별생각 없이 아내에게 카드를 건넸다.
그런데 웬걸. 아내는 카드를 받아들더니 추호(秋毫)의 망설임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잠시 후,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각종 먹거리까지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카드와 영수증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영수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물경 5만 몇 천 원. 순간 아연실색했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러 나갔다가 무슨 장이라도 보고 온 건가. 딸아이 앞이라 큰소리는 못 지르고, 겨우 툭 튀어나오는 짜증을 섞어 볼멘소리만 뱉었다. "자기 돈 아니라고 이렇게 팍팍 써도 되는 거야?"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누군가에겐 커피 몇 잔 값일 수도 있는 돈인데, 내게 5만 원은 꽤 큰돈이다. 그 돈이면 우리 집 에어컨을 몇 시간 더 시원하게 틀 수 있고, 온 가족이 온수도 마음 편히 쓰며 샤워할 수 있다. 매달 관리비 고지서를 보며 “지난달보다 왜 더 나왔지?” 하고 짜증 낼 일도 조금은 줄어든다. 무엇보다 그 금액은 내 일주일 차 기름값(차 기름 값은 회사에서 부담한다.)에 달하는 무게였다. 다행히 그 속 쓰린 어제의 일이 꿈에까지 나타나지 않고 잘 잤으니 그나마 위안이라 해야 할까.
가끔 생각한다. 도대체 돈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쪼잔하게 만드는 걸까. 남들에게는 넉넉히 있어 보이는데 유독 내게만 없는 것, 잡힐 듯하면서도 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그게 돈이다.
한자 錢(돈 전)을 보면 재미있다. 錢(전)은 금(金) 변에 戔(깎을 찬)이 붙은 형성자다. 戔(찬)에는 얇게 포개고 깎는다는 뜻이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錢(전)을 ‘銚也 古田器(조야 고전기)’, 즉 흙을 파는 가래이며 옛날 밭을 가는 농기구라고 풀이한다. 돈의 뿌리가 의외로 농기구인 셈이다. 관자(管子) 해왕 편에도 밭을 경작하려면 쟁기, 보습, 가래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결국 돈의 시작은 땅을 깎고 고르는 고단한 노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핸들을 잡고 도로를 달리거나, 현장에서 발로 뛰고 땀을 흘리며 돈을 번다. 시대에 따라 일하는 도구와 겉모습은 달라졌을지언정 그 고단함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우리는 각자의 밭을 갈고 있다. 누군가는 사무실에서, 누군가는 공장에서, 누군가는 거리에서. 나 역시 흙을 직접 파지는 않지만, 매일 그런 심정으로 집을 나선다. 삶이란 결국 자기 몫의 밭을 묵묵히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돈은 흐른다. 머무르지 않는다. 문제는 그 흐름이 이상하리만큼 내 주머니에서는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들어오는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늘 조금 더 빠르다. 그래서 월급날이 되면 잠깐 부자가 된 듯하다가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허전한 현실로 돌아온다.
참 신기하다. 돈은 분명 숫자인데 사람의 감정을 지배한다. 안도하게 만들고, 초조하게 만들고, 때로는 초라하게도 만든다. 서진(西晉) 시대의 문인이자 은자였던 노포(魯褒)는 자신의 저서 전신론(錢神論)에서 "돈은 귀가 없지만 귀신도 부릴 수 있고(錢無耳,可使鬼),"라며 돈의 기이한 신통력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그 풍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때로는 더 괴기한 형태로 우리 곁에 나타난다. 돈의 신통력 앞에 세상의 공의와 양심이 무너지는 것은 예사다. 심지어 가장 신성해야 할 종교마저 돈 때문에 타락하고 있다. 트럼프를 옹호하는 미국의 극우 기독교가 그렇고, 맹목적인 진영 논리에 갇힌 한국의 극우 기독교가 그렇다. 신을 기려야 할 자리에 돈을 들여놓고 숭배하는 모습은, 돈이 곧 신이라는 옛 은자의 외침을 서글프게 증명한다.
돈을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랑만 할 수도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의 많고 적음보다, 그 신령한 위력에 완전히 끌려다니지 않는 단단한 마음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멋지게 말해 놓고도 다음번 아이스크림 심부름 영수증이 또다시 5만 원을 넘는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흔들릴 것이다. 인간의 수양이란 이토록 멀고 험하다. 그래도 오늘도 나는 주머니 속 귀한 '쟁기' 한 자루의 무게를 느끼며 내 몫의 밭을 간다. 언젠가 내 주머니에도 돈이라는 신이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