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 자유와 질서의 복음 묵상


장재형 목사 설교를 바탕으로 성령 안의 자유와 교회의 질서,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 환난 속에서 단단해지는 믿음과 소망을 따라 오늘의 복음 공동체가 말씀 안에서 붙들어야 할 길과 회개의 자리를 함께 차분히 묵상합니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밖으로 나온 눈은 처음에 빛을 자유로 여기지만, 그 빛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다시 어둠을 그리워한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바로 그 지점에서 교회의 자유를 묻는다. 장재형목사(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 성령 안에서 풀려난 사람이 어떻게 말씀의 질서 안에서 더 깊이 자유로워지는가 하는 물음에 초점을 맞춘다. 복음은 죄의 굴레를 끊지만, 그 자유는 제멋대로 흩어지는 힘이 아니라 사랑과 순종으로 공동체를 세우는 은혜의 호흡이다.

이 설교가 중요한 까닭은 자유와 질서를 단순한 균형 감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는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해방이고, 질서는 그 해방이 공동체 안에서 사랑으로 머물도록 돕는 형태다. 그래서 복음은 개인의 내면을 새롭게 할 뿐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배우고 맡기며 견디고 다시 일어설지를 묻는다.

은혜의 바람 속에서 자유는 질서를 배운다

설교는 교회 안의 자유를 방임이나 자기주장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일이지만, 그 해방은 말씀을 떠난 자율성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새롭게 빚어지는 삶이다. 자유가 진리의 뿌리를 잃으면 방종으로 기울고, 질서가 성령의 생동감을 막으면 제도만 남는다. 이 설교의 신학적 통찰은 바로 그 두 위험 사이에서 복음의 길을 찾는 데 있다.

장재형 목사는 성령의 사람들을 외부에서 보면 시끄러워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참된 질서가 있다고 말한다. 사도행전의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이 거리로 나아가 복음을 전했을 때 어떤 이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여긴 장면은, 성령의 역동이 무질서와 같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은혜는 사람을 움직이고 입을 열게 하며 공동체를 흔들어 깨운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붕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새롭게 배열되는 거룩한 진동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유를 두려워해 모든 것을 규격 안에 가두어서도 안 되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교리와 신앙 고백의 중심을 흐려서도 안 된다. 설교가 강조하는 정통 신앙 고백과 성경적 신학은 자유를 억압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자유를 지켜 주는 뼈대다. 참된 자유는 아무 제한도 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질서는 자유의 적이 아니라, 자유가 은혜의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강둑이다.

이 때문에 말씀의 교육은 교회의 부속 장치가 아니라 공동체의 호흡이다. 성도가 복음의 의미를 깊이 배우지 못하면 자유는 쉽게 감정의 언어로 낮아지고, 질서는 사람을 통제하는 기술로 굳어진다. 그러나 성경과 교리의 토대가 분명할 때, 은사는 서로 부딪히지 않고 섬김의 길을 찾는다. 교회는 뜨거움과 절도를 함께 품을 때 비로소 성령의 생동감과 경건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복음은 사람을 붙들지 않고 사람을 세운다

말씀의 흐름은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 모델로 이어진다. 사도행전 13장과 14장에서 처음에는 바나바가 앞에 서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바울이 이방인 선교의 전면에 선다. 이 전환은 경쟁의 승패가 아니라 복음이 사람을 세우는 방식의 아름다움이다. 바나바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보다 바울이 더 크게 쓰임받도록 길을 열었고, 그 길 위에서 선교는 한 사람의 역량을 넘어 공동체의 사명으로 확장되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을 통해 교회가 다음 사람을 세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교는 누군가를 오래 붙잡아 자기 영향권 안에 머물게 하는 일이 아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이 말씀을 배우고, 자기 언어와 문화 안에서 예배와 교육을 감당하며, 다시 다른 이를 세우도록 돕는 과정이다. 지도자가 앞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안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때로 복음의 건강한 확산은 책임을 위임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이 지점에서 첫사랑의 감격과 신학 교육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막 복음을 받은 사람의 뜨거움은 증언의 귀한 동력이지만, 그 불길이 오래 타오르려면 말씀의 심지와 교리의 중심이 필요하다. 설교는 전도된 사람이 곧바로 나누고 가르치도록 격려하되, 동시에 체계적인 양육과 검증된 신앙의 토대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은 빠르게 퍼져야 하지만, 얕게 흩어져서는 안 된다.

바나바의 태도는 오늘의 교회에도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사람을 세우는 일보다 자리를 지키는 일에 더 익숙하지 않은가. 복음의 열매를 내 이름 아래 묶어 두려는 마음은 없는가. 선교적 공동체는 자기 영향력의 확대보다 다음 세대의 성숙을 기뻐한다. 그렇게 세워진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을 세우고, 한 지역의 은혜는 또 다른 지역의 소망으로 번져 간다.

환난의 문 앞에서 믿음은 소망의 뿌리를 내린다

사도행전 14장은 기적과 핍박을 한 장면 안에 둔다.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표적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신처럼 높이려 했지만, 곧 무리가 선동되어 바울에게 돌을 던지고 그를 성 밖에 내쳤다. 환호와 폭력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복음의 길이 단순한 성공담이 아님을 보여 준다. 복음이 전진하는 곳에는 언제나 오해와 반발, 그리고 믿음을 시험하는 환난이 뒤따른다.

그러나 설교는 환난을 실패의 표지로 읽지 않는다. 사도행전 14 22절의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고난을 미화하는 문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길이 세상의 인정만으로 열리지 않는다는 엄숙한 선언이다. 바울은 죽은 줄로 버려졌으나 다시 일어났고, 자신을 해치려 했던 지역을 다시 찾아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했다. 믿음은 고통이 없을 때만 타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돌이 날아온 자리에서도 다시 복음을 바라보는 뿌리다.

그렇다고 이 설교가 무모함을 믿음으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핍박을 받거든 다른 고을로 가라는 주님의 교훈처럼,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는 지혜도 순종의 일부다. 중요한 것은 피하는 중에도 복음의 불씨를 놓지 않는 일이다. 때로는 떠나는 것이 지혜이고, 때로는 다시 돌아가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 사랑이다. 환난 앞에서 교회가 배워야 할 것은 공포가 아니라 분별이며, 그 분별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는 데서 자란다.

환난은 또한 교회의 내면을 드러낸다. 평안할 때는 감추어져 있던 의존과 허약함, 세상의 인정에 기대려는 마음이 어려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공동체는 원망에 머물 수도 있고, 더 깊은 성경 묵상과 회개로 나아갈 수도 있다. 설교가 환난을 신학적으로 다시 읽으라고 말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고난은 복음을 빼앗아 가는 손이 아니라, 복음 외에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게 하는 거친 은혜일 수 있다.

교회의 주인을 묻는 성경 묵상

이 설교의 결론은 교회의 주권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놓는다. 바울과 바나바가 신처럼 추앙받을 때 옷을 찢고 항의한 장면은, 아무리 큰 표적과 열매가 있어도 영광은 사람에게 머물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교회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만, 지도자를 중심에 세우는 순간 복음의 질서를 잃는다. 은혜는 사람을 장식하는 빛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방향이다.

자유와 질서, 선교와 양육, 환난과 소망은 서로 떨어진 주제가 아니다. 자유는 말씀 안에서 질서가 되고, 선교는 사람을 세움으로 지속되며, 환난은 믿음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더 선명히 바라보게 한다. 여기에는 조용한 회개의 자리도 있다. 교회가 세상의 인정에 기대거나, 자기 힘으로 복음을 소유하려 할 때마다 다시 물어야 한다. 이 공동체는 누구의 것인가.

복음의 자유는 홀로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함께 질서 있게 세워지는 길이다. 이 문장이 남기는 울림은 교회 운영의 원칙을 넘어 한 사람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자유를 말하면서 사랑의 책임을 잊고, 질서를 말하면서 성령의 바람을 두려워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은혜가 우리를 다시 말씀 앞으로 부르면, 흩어졌던 마음은 순종의 자리에서 새롭게 정돈된다.

오늘의 교회가 붙들어야 할 소망은 화려한 성공의 언어보다 낮고 꾸준한 순종의 언어에 가깝다. 자유를 얻은 사람이 질서를 배우고, 세워진 사람이 또 다른 이를 세우며, 환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자리에서 교회는 조용히 하나님 나라의 윤곽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자유는 누구를 살리고 있으며, 우리의 질서는 과연 복음의 숨결을 살리고 있는가.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David Jang Official Website: www.davidjang.org
David Jang Sermon Video: 




작성 2026.06.26 14:19 수정 2026.06.26 14:19

RSS피드 기사제공처 : 굿모닝매거진 / 등록기자: 최우석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