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초의 지옥, 베네수엘라를 삼키다 — 7.5·7.2 강진이 무너뜨린 '한 세기의 침묵'

권한대행 비상사태 선포·국제 구조대 총출동… 사망자, 시간마다 늘어난다

39초에 두 번 흔들렸다 — 베네수엘라 7.5·7.2 강진, 사망 188명·실종 157명

"사망 1만 명 넘을 수도" — 베네수엘라 지진 비상사태 총정리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단 39초였다. 베네수엘라 북부를 규모 7.2의 지진이 흔들고, 채 한 호흡이 지나기도 전에 규모 7.5의 더 큰 충격이 들이닥쳤다. 2026년 6월 24일, 한 세기 만에 가장 강력한 흔들림 앞에서 철근 없는 벽들이 종이처럼 주저앉았다. 사망자는 집계 때마다 불어나고, 미국 지질조사국은 최악의 경우 1만 명을 넘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권력의 공백 위에 떨어진 재난, 그 잔해 아래 아직 부르지 못한 이름들이 남아 있다. 베네수엘라 강진의 자초지종과 국제사회의 대응을 짚는다.

 

왜, 어떻게 흔들렸는가

 

베네수엘라는 흔히 떠올리는 '불의 고리' 바깥에 있다. 그러나 안전지대는 아니다. 카리브판과 남아메리카판이 맞물리는 보코노-모론-엘필라르 단층대가 북부 해안을 1천300킬로미터 길이로 가로지른다. 이 단층은 두 판이 옆으로 미끄러지는 주향이동 형태다. 큰 지진이 자주 오지는 않지만, 한 번 터지면 깊고 사납다. 이번 지진이 쓰나미를 부르지 않은 이유도 이 미끄러짐 운동에 있다.

 

문제는 땅보다 건물이었다. 베네수엘라의 많은 주택은 철근 없는 벽돌과 흙벽돌로 지어졌다. 1967년 카라카스 지진(규모 6.6)으로 200명 안팎이 숨진 뒤 내진 기준이 손질되었지만, 그 집행은 들쭉날쭉했다. 길어진 경제난과 정치 혼란이 안전의 우선순위를 자꾸 뒤로 밀어냈다. 이번 참사는 한 세기 만에 가장 강한 흔들림이 가장 약한 구조물을 때린 사건이다. USGS는 경제 손실이 100억 달러를 넘어 최악의 경우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지진은 재산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미래까지 흔든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첫 충격은 현지 시각 6월 24일 오후 6시 4분 야라쿠이주 산펠리페 인근에서 규모 7.2로 왔다. 그리고 단 39초 뒤, 인근 유마레 남동쪽에서 규모 7.5의 더 큰 지진이 잇따랐다. 두 진앙 모두 야라쿠이주 베로에스 자치구에 속한다. 진원 깊이는 각각 약 21.9킬로미터와 10킬로미터로 지표에 가까웠다. 얕고 강한 지진은 더 큰 파괴를 부른다. 본진 뒤로 최소 20차례의 여진이 도시를 거듭 흔들었다. 내무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는 여러 주가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미란다, 라과이라, 아라과, 카라보보, 팔콘 등 북부 일대가 동시에 흔들렸고, 카라카스와 발렌시아, 푸에르토카베요에서도 건물이 무너졌다.

 

피해 규모는 시간마다 커졌다. 권한대행 대통령 델시 로드리게스는 목요일 이른 아침 사망 164명, 부상 971명을 밝혔다. 곧이어 국회의장 호르헤 로드리게스는 사망 최소 188명, 부상 1천520명, 실종 157명으로 집계를 갱신했다. 약 250채의 건물이 무너지거나 손상되었고, 200명 넘는 사람이 잔해에 갇혔으며, 3천 가구가량이 피해를 입었다. USGS는 예측 모델을 근거로 최종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르거나 1만 명을 넘을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정치적 배경도 무겁다. 로드리게스는 마두로 대통령이 체포된 뒤 권한대행을 맡은 인물이다. 재난과 권력 공백이 겹친 셈이다. 

 

당국은 헌법적 권한에 따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보안을 이유로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을 닫았다. 학교 수업과 비필수 활동도 멈췄다. 보건당국은 카라카스 광역권의 공공병원 8곳을 가동하고, 민간 병원·의원 12곳을 분류·치료 체계에 합류시켰다. 공공과 민간의 자원을 잇는 조율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흔들림이 닥친 그날은 공휴일이었다. 많은 이가 집이나 행사장에 있었다. 진동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웃 나라 콜롬비아에서도 감지되었다. 39초라는 짧은 간격은 사람들에게 두 번 도망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첫 흔들림에 놀라 집 밖으로 뛰어나온 이들이 두 번째 더 큰 충격을 길 위에서 맞았다. 

 

가장 깊은 상처는 해안 주(州) 라과이라에 남았다. 항만과 공항을 낀 이곳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카라카스의 한 주민은 건물에서 빠져나오며 그 광경을 "공포 영화 같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여진이 두려워 밤새 거리와 차량 속에서 잠을 청했다. 무너진 아파트 곁에서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장면이 카라카스 외곽 카티아라마르에서 카메라에 담겼다. 한 주민은 발코니에 매달려 갇혔다고 비명을 질렀다. 베네수엘라 국영방송이 내보낸 라과이라 상공의 영상은 파괴의 규모를 한눈에 보여 주었다.

 

손길은 국경을 넘었다. 미국은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구조대 80명과 수색견 6마리, 의사와 구조 전문가를 보내기로 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구조대도 움직였다. 스페인은 자국민 68명이 실종되자 수색팀을 급파했고, 산체스 총리는 연대를 약속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지진을 "참혹하다"고 표현하며 지원을 다짐했다. 시간은 생존자의 편이 아니다. 구조대는 매장된 이들을 향해 벽을 뚫는 장비를 들고 잔해 속으로 들어간다.

 

이번 참사는 자연의 힘과 사회의 취약함이 만나는 지점을 잔인하게 드러냈다. 단층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부실한 벽은 가장 가난한 이를 먼저 덮친다. 권력의 공백 속에서 구조의 골든타임은 더 촘촘히 새어 나간다. 그러나 잔해 위로 모여드는 외국 구조대와 수색견, 거리에서 서로의 어깨를 내준 이웃들의 모습은 다른 진실도 보여 준다. 재난은 국적을 가리지 않지만, 그 앞에서 손을 내미는 마음 또한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의 무너진 벽 아래, 아직 부르지 못한 이름들이 남아 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끝까지 기억할 때, 비극은 비로소 교훈이 된다.

작성 2026.06.26 03:47 수정 2026.06.26 03:47

RSS피드 기사제공처 : 중동 디스커버리 / 등록기자: 지한길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