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차장 한켠에서 흥미로우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을 보았다. 한여름의 숨 막히는 열기를 피해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내 탑차 밑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폭염 속 아스팔트는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뜨겁게 달궈졌고, 그늘 한 조각조차 귀한 시간이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입가에 피식 웃음이 배어 나왔다. ‘이 녀석, 나보다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햇빛을 피해 가장 시원한 명당을 찾아 들어간 걸 보면 확실히 영리하다. 본능은 때로 인간의 이성보다 정확하여, 어디가 시원하고 어디가 살 만한 곳인지 직관적으로 짚어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아슬아슬해졌다. 차 밑은 분명 시원하지만, 내가 고양이의 존재를 모른 채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녀석은 당장의 시원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생명을 위협하는 거대한 위험 속에 제 몸을 둔 셈이다.
문득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쳤다. '불립호암장지하(不立乎巖墻之下)'. 군자는 무너질 듯 위태로운 담벼락 아래에 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군자가 담벼락을 피하는 것은 결코 나약하거나 비겁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자신을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무모함은 용기가 아니며, 신중함은 비겁함이 아니라 삶을 지키는 혜안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탑차 밑의 길냥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묘군자(猫君子), 더위도 좋지만 부디 몸조심하시게.”
그런데 눈을 돌려 인간 세상을 보면 참으로 기묘하고 처참한 풍경이 펼쳐진다. 어떤 이들은 위험한 담벼락 아래를 피하기는커녕, 아예 '암장지상(巖墻之上)', 즉 무너져 내리는 담벼락 꼭대기에 올라가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며 깝죽댄다. 자신이 얼마나 위태로운 칼날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부류일수록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한다는 점이다. “나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아느냐”라는 오만과 착각이 결국 사람을 망치는 법이다.
요즘 시국을 보면, 일개 개인 유튜버가 감히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소통한다며 사방에 떠벌리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하는 짓거리는 단순하면서도 저열하다. 오로지 누군가를 공격하고, 음해하고, 비난하고, 욕설을 퍼붓는 것뿐이다. 이런 불한당(不汗黨) 같은 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주변의 진심 어린 경고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자제하라거나 조심하라고 충고하면 멈추기는커녕 더 악을 쓰며 날뛴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에 고립되면 자신의 비밀이든 남의 비밀이든 닥치는 대로 까발리며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상대를 물고 늘어진다.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파멸조차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그 악다구니를 제 '힘'이라 착각하는 유치함을 보인다.
웬만한 정치 고관여층이라면 그 유튜버가 누구를 말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자와 엮인 이가 있다면 참으로 더럽고 흉하게 엮인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가까이 지내느냐보다, 누구를 단호하게 멀리하느냐에 있다. 위태로운 담벼락 아래 서지 않는 것, 그리고 더 어리석게는 그 담벼락 위에 올라가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것. 그것이 시대를 불문한 군자의 처신이다.
오늘도 트럭 밑의 길냥이를 보며 깊은 성찰에 잠긴다. 적어도 저 미물은 더위를 피하겠다는 순수한 생존의 본능으로 그늘을 찾았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어떠한가. 눈앞의 알량한 권력과 욕망을 쫓다, 더위를 피하려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