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칼럼] 15화 2104호와 2401호

비난의 날카로움보다 친절의 너그러움을

인간의 품격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에서 시작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1. 1. 우체부의 실수
    우체국 택배의 “배달 완료” 카카오톡 알림만큼 반가운 신호도 없습니다. 일찍 퇴근해 설레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마주한 텅 빈 복도는 이내 당혹감으로 바뀝니다. 첨부된 사진을 자세히 확인하니 우리 집이 아니었습니다. 우체부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설상가상으로 “하필 오늘 사진 기록이 리셋되는 날이라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만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직 분명 근처에 있을거란 생각에 분노 대신 슬리퍼를 신고 빠르게 나갔습니다. 사진 속 미세한 단서를 통해 아파트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며 찾아보고, 다시 위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묘한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2104호에 있어야 할 택배가 엉뚱하게도 2401호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쁜 업무에 치인 우체부가 2104호를 2401호로 읽은 것입니다.

 

2. 비난의 날카로움 vs 친절의 너그러움
우체부에게 전화를 걸어 “2401호에서 있더라구요~”고 전했을 때, 우체부는 “내가 미쳤지”라고 여러차례 반복하며 자신의 실수를 뼈저리게 괴로워했습니다. 그런 후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 특히 이 집은 더 신경써서 배달하겠다”는 감사와 사과의 표현을 다시 여러차례 하였습니다.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분실됐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식의 날 선 비난을 예상하고 온몸을 굳히고 있었을 상태에서 의외로 덤덤하고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라는 뉘앙스의 표현은 거친 항의보다 몇 배는 더 강력했습니다. 비난의 날카로움보다 친절의 너그러움은 자신의 과오를 더 깊이 자각하고 부끄러워하게 만듭니다.

 

3. 자극과 반응 사이, 인간의 품격이 서는 공간
우리는 매일 수많은 부정적 자극에 노출되어 살아갑니다. 오배송, 층간소음, 무례한 운전자 등 일상의 작은 삐걱거림들은 우리의 방어기제를 자극하여 '분노'라는 자동반사를 습관적(무의식적)으로 하게 합니다. 그러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의 선택이 우리의 성장과 자유를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2104호의 주인공은 오배송이라는 부정적 자극을 받았을 때, 즉각적인 짜증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공간’을 이해로 채워 넣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진심 어린 다짐을 받아낸 힘은 비난과 짜증이라는 자동반응이 아닌 바로 그 품격 있는 선택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의 품격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에서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4. 친절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2104호의 주인공이 분노를 선택했다면 아마 우체부는 방어적인 태도로 변명을 하거나, 진심 어린 사과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절은 또 다른 친절과 깊은 유대감을 낳았습니다. 팍팍한 이 세상에서 아직은 숨을 쉬고 살만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자극에 자동반사 하지 않고 친절을 '선택'하는 여러분과 같은 이들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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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6.25 18:33 수정 2026.06.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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