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강대국이 쓰러지면, 그 옆 나라의 키가 커 보인다. 2026년 미·이란 전쟁이 남긴 가장 조용한 변화가 여기에 있다. 이란이 이라크와 시리아, 레반트에서 영향력을 잃자, 튀르키예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중동에서 가장 유력한 비(非)아랍 무슬림 강국으로 떠올랐다. 영국 일간지 더 텔레그래프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이란전의 진짜 승자"라 불렀다. 그러나 이 부상은 영광인 동시에 시험이다. 튀르키예 역내 포지셔닝의 향방, 곧 앙카라가 그리는 '신(新) 중동'의 청사진은 어디까지 현실이 될 것인가.
왜 지금 앙카라인가
변화의 씨앗은 전쟁보다 먼저 뿌려졌다. 2024년 12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졌다. 튀르키예가 오래 지원해 온 세력이 다마스쿠스를 접수했고, 앙카라 친화적인 알-샤라 정부가 들어섰다. 이란과 러시아가 떠받치던 한 축이 빠지자, 튀르키예의 운신 폭은 넓어졌다. 2026년 미·이란 전쟁은 이 흐름에 가속을 붙였다. 이란의 군사력과 역내 대리 세력 망이 동시에 타격받으면서, 시아파 초승달은 헐거워졌다. 그 빈 공간으로 가장 먼저 손을 뻗을 수 있는 나라는 지리와 군사력, NATO 회원 자격을 모두 쥔 튀르키예였다. 에르도안은 스스로 억압받는 경건한 수니 무슬림의 선봉이라 칭하며, 이슬람 세계의 구심점을 자처해 왔다.
무엇이 튀르키예를 끌어올렸나
튀르키예의 부상은 행동의 결과라기보다 위치의 결과다. 시리아에서 앙카라는 새 정부의 안정을 도우며 쿠르드 무장 세력의 무장해제를 압박한다. 2026년 1월, 다마스쿠스와 쿠르드 주도의 시리아민주군(SDF)이 휴전에 서명하면서, 유전과 국경 통제권이 새 정부로 넘어갔다. 튀르키예가 수십 년간 두려워한 쿠르드 자치 구역의 그림자가 옅어진 것이다.
동시에 앙카라는 이라크로 손을 뻗는다. 바스라에서 튀르키예 메르신 항으로 이어지는 '개발의 길(Development Road)' 회랑은 이라크를 앙카라의 궤도로 끌어들이려는 야심이다. 무기 외교도 한몫한다. 튀르키예는 세계 11위 무기 수출국이자 NATO 2위 군사력을 보유하며, 바이카르 드론을 우크라이나에서 아프리카까지 실어 나른다. 한편, 더 텔레그래프는 세계의 시선이 전쟁에 쏠린 사이 에르도안이 국내 야권을 누르며 권력을 다졌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이란'이라는 경계와 그 이면
부상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른다. 2026년 2월, 나프탈리 베넷 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 유대인 단체 회의에서 "튀르키예가 새로운 이란"이라 경고했다. 에르도안이 정교하고 위험하며, 이스라엘을 포위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리아와 동지중해는 두 나라가 부딪칠 화약고로 꼽힌다. 그러나 앙카라의 자신감에는 분명한 균열도 드러났다.
전쟁 중 이란의 탄도미사일 여러 발이 튀르키예 영공으로 날아들었고, 이를 떨어뜨린 것은 다름 아닌 NATO의 방공망이었다. 전략적 자율성을 외쳐 온 나라가, 결정적 순간에 동맹의 우산에 기댄 셈이다. 여론도 신중했다. 메트로폴 조사에서 응답자의 68.1퍼센트가 전쟁 중립을 지지했고, 미국·이스라엘 편에 서자는 의견은 2.1퍼센트에 그쳤다. 튀르키예는 7월 앙카라 NATO 정상회의를 앞두고 동맹과의 관계 복원에 공을 들인다.

부상과 한계 사이, 앙카라의 외줄타기
튀르키예의 진짜 과제는 욕망과 현실의 거리다. 한 손으로는 BRICS의 문을 두드리며 다극 세계의 일원을 자처하지만, 다른 손은 여전히 NATO의 방패를 놓지 못한다. 미국과는 F-35 도입과 쿠르드 문제로 삐걱대면서도, 트럼프의 변덕이 언제 칼날이 될지 몰라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이란이라는 오랜 균형추가 흔들린 자리에서, 튀르키예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라이벌과 마주 선다. 미국이 떠난 빈자리를 노리는 나라는 앙카라만이 아니다. 리야드도, 텔아비브도 저마다 우산을 펼친다. 한 강대국의 황혼이 여러 중견국의 도약을 불렀다. 무너진 질서의 잔해 위에서, 앙카라는 어디까지 자신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