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말은 오해됐다" — 시리아 대통령, 레바논 개입설을 진화하다

샤라, "과거의 군사 개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해법의 일부이지, 레바논을 아프게 할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오해다" 진화 나선 시리아 대통령… 트럼프의 '레바논 카드'가 부른 파장

29년 주둔의 그림자: 샤라 대통령이 군사 개입을 부인한 진짜 이유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시리아의 지도자가 레바논을 입에 올리는 순간, 두 나라 사이에 가라앉아 있던 29년의 기억이 함께 깨어난다. 1976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진 시리아군의 레바논 주둔, 그 후견의 그림자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헤즈볼라 문제를 시리아에 넘기는 쪽에 가깝다"고 말하자, 레바논 전역에 긴장이 번졌다. 그리고 시리아 대통령 아흐메트 샤라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해라는 것이다.

 

이 한마디가 폭발한 까닭은 역사에 있다

 

샤라 대통령은 2005년 이전 시리아군이 레바논에 주둔하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두 나라의 관계는 한때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와 이란과의 동맹 위에 세워졌으나, 2024년 아사드 정권의 붕괴와 옛 알카에다 출신 샤라 대통령의 집권으로 그 축은 무너졌다. 헤즈볼라는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을 도왔고, 이란은 시리아를 거쳐 헤즈볼라에 무기를 옮겼다. 그래서 아사드를 무너뜨린 새 시리아 지도부에게 헤즈볼라는 과거 공범으로 비친다. 적의 동맹이 이제 적을 견제할 후보로 거론되는, 역전된 지형인 셈이다. 트럼프의 발언이 단순한 제안을 넘어 묵은 상처를 건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단은 트럼프였다. 

 

그는 일요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너무 오래 상대하며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불만을 드러냈고, "건물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며 이스라엘군을 비판한 뒤 "이 문제를 시리아에 넘기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곧바로 샤라 대통령이 응답했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엘메슈하드(Al Mashhad) 방송과의 대담에서 그는 트럼프의 말이 대중에게 잘못 해석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레바논 상황을 진심으로 불편해하며 전쟁을 멈출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시리아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말이, 마치 아침이면 곧 시리아가 레바논에 들어갈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해법의 일부이지, 레바논이 시리아의 손에 아파할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라며, 해법은 군사적 방식이 아니라 경제·정치·사회적 조치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레바논과 시리아 사이에서 군사적 통로가 아니라 경제적 통로를 찾고 있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다.

 

엇갈린 기억과 셈법

 

샤라 대통령의 화법은 단호하면서도 결이 복잡하다. 헤즈볼라와 같은 테이블에 앉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레바논의 이익에 부합하고 시리아의 안보를 보장한다면 왜 안 되겠는가"라고 답했다. 다만 그는 아사드 정권 변화가 역내에 큰 기회를 열었음에도 일부 레바논 세력이 "과거의 포로"가 되어 옛 시절의 사고로 움직인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레바논 안에서 그의 손길은 환영만 받지 못한다. 

 

레바논 정부는 헤즈볼라 무장 해제를 원하면서도 시리아의 개입은 원하지 않는다. 카네기 중동센터의 마이클 영은 시리아 진입을 "완전히 터무니없는 발상"이자 "판도라의 상자"라 부르며, 다 종파 사회인 레바논의 분열을 부를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이스라엘 당국자조차 "헤즈볼라는 이미 시리아에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시리아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와 싸우는 일은 역량 밖"이라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같은 제안을 두고 워싱턴·다마스쿠스·베이루트·텔아비브의 셈법이 이토록 어긋난다. 

 

말은 오해되고, 역사는 무겁다

 

여기서 사건의 본질이 드러난다. 트럼프의 말이 오해된 것은, 그 말이 닿은 땅의 기억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강대국 지도자의 직설은 지도 위의 한 수였으나,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민에게는 29년 주둔의 상흔을 건드리는 한마디였다. 샤라 대통령이 군사에서 경제로, 개입에서 제도 강화로 황급히 방향을 튼 것도 그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시리아의 구상도 반드시 레바논 국가와 공식 기관을 거쳐야 한다고 못 박으며, 과거 후견 시대로의 회귀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의심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한때 '줄라니'로 불리던 인물을, 기독교인과 드루즈와 시아파가 어우러진 레바논의 모자이크가 선뜻 신뢰하기란 어렵다. 남에서는 이스라엘이 누르고 동에서는 시리아가 거론되는 사이, 레바논 사람들은 포위의 공포를 떠올린다. 결국 이 사안이 묻는 것은 누가 헤즈볼라를 다룰 것인가가 아니라, 한 나라의 운명을 이웃의 손에 맡기는 일이 과연 평화인가 하는 물음이다. 말은 바로잡을 수 있으나, 역사가 남긴 두려움은 한 번의 해명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작성 2026.06.24 01:30 수정 2026.06.24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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