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의 만년설 아래서 피어난 미·이란 간의 가녀린 화해 기류가 테헤란발 돌발 변수로 인해 다시금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스위스 뷔르겐스토크에서 극적으로 성사된 고위급 기술 회담과 호르무즈 해협 통행세 면제 합의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란 국영 방송(IRIB)을 통해 송출된 한 편의 인터뷰가 이란 전역을 심각한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국경을 넘어 온 타협과 내부 결속의 균형추
정치적 타협은 대외적인 국익의 극대화뿐만 아니라 대내적인 명분의 확보라는 두 가지 축이 동시에 맞물려야 지탱된다. 이란 정부가 오랜 적대국인 미국과 마주 앉아 60일간의 정전 및 호르무즈 해협 통행세 면제라는 실리적 카드를 수용한 배경에는 장기화된 경제 제재를 타개하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조 변화는 수십 년간 미제를 공공의 적이자 절대 악으로 규정하며 내부 결속을 다져온 이란 보수 강경파에게 심각한 사상적 균형 상실을 의미했다.
대외적 외교 성과가 가시화될수록 내부 체제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테헤란 내부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부가 대외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사이, 국영 언론과 강경 세력은 군사적 자존심과 혁명 이념이 훼손되었다는 논리를 유포하며 반발했다. 결국 이번 방송 논란은 단순한 보도 사고가 아니라, 대외적 출구전략을 모색하려는 온건·실리파와 기존의 대미 대결 노선을 고수하려는 강경파 사이의 누적된 불만이 특정 계기를 통해 표출된 구조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테헤란을 뒤흔든 국영 방송의 마이크
혼란의 도화선이 된 사건은 이란 국영 방송이 방영한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다. 이란 외무부 부카이 대변인을 비롯한 외교 라인이 스위스 회담의 당위성과 기술적 합의 이행을 차분히 설명하던 와중에, 국영 방송 측은 회담의 진정성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강경파 인사의 인터뷰를 돌발적으로 배치했다. 방송에 출연한 인물은 이번 미·이란 간의 밀실 합의가 혁명의 가치를 훼손하고 이스라엘의 시간 벌기에 동조하는 배신행위가 될 수 있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이 방송이 송출되자마자 이란 사회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시민들은 정부가 마침내 서방과 타협해 숨통이 트이는 줄 알았다가 다시 충돌 국면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한 대표단이 스위스에서 복귀하기도 전에 방송을 통해 ‘합의 위기론’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테헤란의 권력 지도부는 외교적 신뢰도 추락과 내부 여론 분열이라는 이중고를 마주하게 되었다. 권력의 심장부인 국영 방송이 정부의 공식 외교 노선에 반기를 든 초유의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불안이 잠식한 바자르와 통제된 편집실
인터뷰가 방영된 직후인 최근 며칠간 테헤란의 중심가와 전통 시장인 바자르(Bazaar)의 공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과 대중은 외교적 합의가 파기될 경우, 몰려올 환율 폭등과 생필품 고갈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화가 단절되고 다시 유혈 충돌의 화염이 타오를지 모른다는 현실적 공포가 이란 국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다.
반면, 이란 국영 방송국의 고위 관계자들과 편집실 내부의 분위기는 철저한 정적과 통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테헤란의 언론인은 이번 인터뷰가 최고지도부 주변의 초강경파 세력의 묵인 아래 기획된 조직적 저항이라고 귀띔했다. 대외적인 기술 회담의 성과를 깎아내림으로써 향후 진행될 본격적인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내부 권력 투쟁의 단면이라는 해석이다. 평화를 갈망하는 광장의 절박한 한숨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편집실의 냉혹한 계산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위태롭게 교차하고 있었다.
마주 잡은 손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
외교 노선을 둘러싼 내부의 파열음은 역설적으로 이번 평화 프로세스가 가진 무게감을 증명한다. 이란 국영 방송의 인터뷰 파동은 수십 년간 축적된 불신과 이념의 벽이 얼마나 공고한지 보여 주는 단면이다. 강경파의 반발과 합의 위기론이라는 암초를 만났지만, 미·이란 양국이 어렵게 마련한 대화의 불씨를 여기서 꺼뜨려서는 안 된다. 파국을 막기 위한 기술적 합의와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완화는 단순히 정치인들의 이익을 넘어 무고한 대중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체제 안정을 명분으로 다시 증오의 마이크를 잡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자해 행위에 불과하다. 테헤란의 통치 엘리트들은 내부의 이념 과시보다 민생의 안정이 더 시급한 혁명 완수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비록 과정은 험난하고 내부의 저항은 거세겠지만, 인간의 이성과 대화의 가치를 믿고 외줄타기와 같은 외교적 행보를 지속할 때 비로소 중동 대륙에 항구적인 평화의 싹이 자라날 여지가 생긴다. 전 세계는 테헤란이 분열을 딛고 대화의 테이블을 지켜낼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