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학과 리쇼어링이 불러올 비용 구조 변화
2026년 6월, 세계 경제 논의의 중심에 또다시 공급망 문제가 올라섰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소장 애덤 포즌(Adam S. Posen)은 2026년 6월 17일 Project Syndicate에 기고한 칼럼에서 리쇼어링(reshoring)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움직임이 글로벌 공급망을 지역화시키며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 시기의 디플레이션 압력을 약화시키고,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진단은 수출·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에 산업 전략, 기업 투자, 그리고 거시 정책 전반을 재설계하라는 경고로 읽힌다.
핵심 문제는 생산 효율성의 구조적 저하다. 지정학적 긴장과 국가 안보 우선의 무역·투자 정책이 생산 효율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하면, 기업의 단가(생산비)와 소비자 물가가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포즌은 칼럼에서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역화된 생산 네트워크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고, "이는 초세계화 시대의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의 주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Project Syndicate, 2026년 6월 17일).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부품 등 글로벌 밸류체인에 깊이 연결된 한국 경제는 이 변화에 직접 노출돼 있다. 첫 번째 근거는 비용 구조의 변화다.
글로벌 분업은 규모의 경제와 비교우위를 활용해 단가를 낮추는 메커니즘이었다. 그러나 리쇼어링은 공급망을 안전한 우군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복 설비, 낮은 가동률, 높은 인건비·물류비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포즌은 "정부는 국가 안보와 경제적 효율성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썼다(Project Syndicate, 2026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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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균형을 찾지 못하면 기업은 비용 증가를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하게 되고, 물가 상승 압력은 장기화된다. 단순한 가격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분업 체계가 수십 년간 억눌러 온 인플레이션 구조가 해제되는 전환점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두 번째 근거는 기업의 전략적 반응이다.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부품 등 중간재 중심의 글로벌 밸류체인에 깊이 연결돼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질수록 기업은 공급망 다변화 대신 생산기지 이전(리쇼어링)이나 가까운 우호국으로의 이전(프렌드쇼어링)을 선택할 유인이 커진다. 이러한 전략 전환은 단기적으로 안정성을 높일 수 있으나, 설비 투자·전환 비용·기술 이전 비용이 뒤따른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자동화·로봇·생산성 향상 투자를 통해 단가 상승을 상쇄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겠지만, 이 과정은 시간과 자본을 요구한다. 모든 기업이 동일한 수준으로 비용 상승을 흡수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 전략의 전환: 비용, 리스크, 투자 우선순위
세 번째 근거는 거시적 파급효과다. 공급망 지역화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경우 국제무역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교역 증가율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 선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2020년 3월 이후 글로벌 공급망은 항만 적체, 부품 부족, 물류 지연 등 전방위적 충격을 받았고, 기업들은 공급망 취약성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인 2018년 미·중 무역분쟁은 기업들이 공급기지 다변화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게 만든 촉매로 작용했다.
이처럼 지정학적 이벤트와 정책 전환은 무역 패턴과 생산 배치를 바꿔왔으며, 현재 진행 중인 리쇼어링·프렌드쇼어링의 파도도 유사한 거시적 영향을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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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근거는 투자·금융 시장의 반응이다. 비용 상승과 공급 리스크 증가는 인플레이션 기대를 끌어올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긴축 압력을 강화할 수 있다.
금리 상승은 설비투자 비용을 높여 생산 확장을 지연시키고, 장기 성장률 전망을 낮춘다. 한국 기업과 투자자는 이런 환경에서 투자 우선순위를 재설정해야 한다. 안정적 공급원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 비용, 자동화 및 디지털 전환 투자비용, 물류 인프라 현지화 비용 등은 단기 비용이 아닌 구조적 중장기 비용으로 재무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예상되는 반론도 짚을 필요가 있다. "리쇼어링은 단기 비용을 유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안정과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일부 산업에서는 공급지 근접화가 재고비용과 지연으로 인한 손실을 줄여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포즌의 논점은 규모와 집단적 효과에 있다.
그는 칼럼에서 리쇼어링·프렌드쇼어링의 집단적 효과가 글로벌 효율성을 저해하고, 그 결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봤다(Project Syndicate, 2026년 6월 17일). 즉 일부 산업·기업 차원에서의 장기 비용 절감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전체 경제 차원에서의 평균 비용 상승과 물가상승 압력이 더 큰 구조적 변화로 작동할 위험이 크다. 두 번째 반박은 기업 간의 적응 능력 격차다.
대기업은 자본과 기술을 동원해 자동화·디지털 전환을 통해 비용 상승을 어느 정도 흡수할 여지가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수출 생태계는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 협력사로 구성돼 있어, 협력사들의 비용 부담 증가는 전체 가치사슬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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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개별 기업의 리스크 관리 문제를 넘어 산업 전체의 경쟁력 문제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정책적 개입의 필요성을 높인다.
한국 경제에 남는 선택지와 정책 과제
마지막으로 정책적 선택의 문제다. 포즌은 정부의 역할을 두고 균형을 주문했다. 한국 정부는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 보호를 위해 핵심 산업의 공급망 재구성을 지원할 유인이 있다.
하지만 정책 지원이 엄밀한 비용편익 분석과 산업별 우선순위 설정 없이 확장되면 재정 부담을 키우고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동시에 준비해야 할 과제는 세 가지다. 공급망 가시성(visibility)과 리스크 측정에 대한 투자 확대, 자동화와 고부가가치 전환을 통한 단가 상승 흡수 전략, 산업별 취약성에 근거한 선별적 지원과 국제협력을 통한 위험 분산이 그것이다.
한국의 투자자와 기업에 대한 시사점은 구체적이다. 비용과 리스크의 구조적 변화는 포트폴리오 구성과 설비투자(CAPEX)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제조업 중심의 기업은 공급망 재배치에 따른 단기 비용을 감내할 재무적 준비를 갖춰야 하고, 금융시장은 산업별 리스크 프리미엄을 재평가해야 한다. 정책당국은 리쇼어링으로 인한 잠재적 인플레이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생산성 제고 정책과 노동시장·교육 시스템 개편을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 이 사안에 대한 판단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리쇼어링·프렌드쇼어링의 지정학적 필요성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그 경제적 비용을 과소평가하면 한국의 물가·투자·성장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공급망 전략을 재설계하면서 비용 상승 시나리오에 근거한 재무적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행해야 하고, 정부는 선별적·효율적 지원으로 산업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
공급망 재편의 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 것인지를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와 중소기업에게 집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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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Q. 일반 소비자는 공급망 지역화 흐름으로 어떤 영향을 받나
A. 지정학적 리쇼어링 흐름은 생산비용과 물류비용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국가 안보 우선의 무역정책이 공급망을 지역화하면 규모의 경제가 약화되고, 그 비용 상승분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단기에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가전·자동차·식품 등 제조 기반 소비재 전반의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가계는 이러한 구조적 물가 변화를 반영해 소비·저축 계획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Q. 기업은 공급망 재편에 어떤 방식으로 대비해야 하나
A. 기업은 먼저 공급망의 취약 지점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시나리오 기반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행해야 한다. 자동화·디지털화 투자를 통해 인건비 상승 압력을 상쇄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두 번째 과제다. 금융 측면에서는 환헤지, 장기 조달 계약, 전략적 재고 관리 등으로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이 현실적 조치다. 대기업에 비해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 협력사는 산업 단위의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거나 정부의 선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Q. 정책당국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실무적 조치는 무엇인가
A. 정책당국은 산업별 공급망 취약성을 진단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선별적 지원과 규제 완화를 통해 전환 비용을 낮춰야 한다. 동시에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연구개발(R&D)·인력 재교육 투자를 확대하고, 국제 협의를 통해 무역·투자 규범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외교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정책의 효과는 타이밍과 정밀도에 달려 있으므로 데이터 기반 분석을 정책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