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의 손을 다시 잡은 카불 — 탈레반·러시아 군사협정, 누구를 위한 악수인가

40년 전 붉은 군대가 흘린 피, 오늘 모스크바의 악수가 되다

빌려 온 기둥은 빠져나간다 — 탈레반이 잡은 위험한 손

비밀에 부쳐진 협정문 — 러시아는 무엇을 주고 무엇을 챙기나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역사에는 이따금 소설보다 기이한 장면이 등장한다. 1980년대, 붉은 군대는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악에서 십 년 가까이 피를 흘리다 끝내 물러났다. 그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자라난 무장 세력이 바로 탈레반이다. 그런데 40여 년이 흐른 지금, 모스크바는 그 탈레반과 군사협정을 맺고 손을 맞잡았다. 칼을 겨누던 자리에서 악수가 오간 셈이다.

 

장면은 이렇다. 2026년 5월 27일, 모스크바 외곽에서 열린 국제안보포럼의 한편에서 러시아 안보 회의 서기 세르게이 쇼이구와 탈레반 국방장관 모하마드 야쿱이 군사기술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야쿱은 탈레반 창설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이자 옛 군사 책임자다. 다만 양측 모두 협정문의 내용과 범위를 공개하지 않아, 이것이 실질적 군사협력의 전환점인지 상징적 정치 제스처에 불과한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종류의 협정은 통상 무기 교환과 제조 면허, 방위 기술과 공동 연구를 포괄한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이 악수는 과연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것인가. 카불 사정에 정통한 한 분석가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이 협정이 아프가니스탄의 장기적 국익을 키우기보다, 도리어 이 나라를 강대국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더 깊이 끌어들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강대국이 약소국과 손잡는 이유는 대개 약소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의 셈법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셈법은 분명하다. 모스크바의 최대 관심사는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다. 이 조직은 2024년 3월 모스크바 인근 공연장을 습격해 150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참극을 자행한 바 있다. 쇼이구는 아프가니스탄 안에 20여 개 무장 단체와 연계된 1만 8천에서 2만 3천 명의 전투원이 활동한다고 경고했다. 곧 러시아에 탈레반은 전략적 동반자라기보다, 중앙아시아라는 뒷마당의 화재를 막아 줄 방화벽에 가깝다. 2024년 푸틴이 탈레반을 "테러와의 전쟁의 동맹"이라 부른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러시아가 그 대가로 내줄 것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 제재로 곳간이 비어 버린 러시아가 탈레반에 무상 군사 원조를 베풀 형편이 못 된다고 짚는다. 역사도 같은 교훈을 들려준다. 구소련이 붕괴한 뒤, 모스크바는 아프가니스탄의 역대 정부에 이렇다고 할 지원을 안긴 적이 없다. 빈손으로 맺은 약속이 갑자기 두툼해질 리는 없다. 

 

그렇다면 탈레반은 왜 이 손을 잡는가. 사면초가에 몰렸기 때문이다. 파키스탄과의 국경 듀랜드 라인을 따라 무력 충돌이 거듭됐고, 2026년 초 파키스탄의 공습은 탈레반의 군사 기반을 상당 부분 무너뜨렸다. 2021년 물려받은 나토 규격 탄약은 거의 바닥났거나 쓸 수 없게 됐다. 내부에서도 파슈툰계와 타지크계 분파가 바다흐샨의 금광 수익을 놓고 유혈 충돌을 빚는 등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군사력의 실상은 처참하다. 미국제 장비는 정비와 부품 보급이 끊겨 고철이 되어 가고, 러시아제 구형 장비마저 대부분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처지에서 안보 협정 한 장이 실질적 군사 원조로 둔갑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에 가깝다. 

 

더 깊은 함정은 따로 있다. 약하고 취약한 나라일수록, 서로 칼을 겨눈 강대국들과 동시에 같은 깊이의 우정을 맺기란 불가능하다. 인도와 파키스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중국과 이란을 한꺼번에 끌어안으려다가는, 협력의 수혜자가 아니라 경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기에 십상이다.

 

이 모든 혼란의 뿌리에는 정통성의 결핍이 자리한다. 러시아는 2025년 7월 강대국 가운데 처음으로 탈레반 정부를 공식 승인했고, 앞서 4월에는 자국 테러 조직 명단에서 탈레반을 빼 주었다. 그러나 화려한 외교적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도 중국도 유엔 제재 명단에서 탈레반 지도자들을 빼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핵심 인물들이 제재 아래 있는 한, 온전한 국제적 승인은 요원하다. 저자의 결론은 묵직하다. 국제적 정통성은 결국 국내적 정통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국민의 폭넓은 동의와 대표성 있는 제도 없이 얻은 인정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허약하다.

 

나는 여러 나라의 흙길을 오래 걸으며, 무너지는 집들을 보아 왔다. 그 집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 기둥을 세우는 대신, 강한 이웃의 어깨에 지붕을 기대려 했다는 점이다. 빌려 온 기둥은 빌려준 이의 사정에 따라 언제든 빠져나간다. 

 

한 나라의 진정한 힘은 강대국의 승인 도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제 백성의 신뢰와 동의라는, 누구도 거두어 갈 수 없는 토대에서 솟아난다. 낯선 권력자의 인정을 구하느라 분주한 사이, 정작 제집 식구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그 악수가 무슨 소용인가.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이 힘을 겨루는 전장이 아니라, 지역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그 꿈이 나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작성 2026.06.18 01:10 수정 2026.06.18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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