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자동화 로봇이 초정밀 제조를 대행하고, 최신 패션 트렌드가 단 몇 주 만에 소비되고 사라지는 초고속의 시대. 역설적이게도 서울 패션의 중심부 한편에서 묵묵히 가장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유산’을 빚어내는 작업실이 있다. 가죽의 결을 읽고 바늘땀 하나에 혼을 담아내는 이 공간의 중심에는, 지난해 대한민국 핸드백 제조 분야 최초이자 유일하게 ‘서울명장’의 반열에 오른 호미가(HORMIGA)의 정윤호 대표가 서 있다.
그동안 대중과 미디어가 호미가를 수식해 온 단어들은 언제나 화려함 그 자체였다. 글로벌 초럭셔리 브랜드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의 ‘한국의 에르메스’, 혹은 ‘바늘땀 하나에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특수 피혁의 대가’라는 찬사가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정윤호 명장은 이제 그 화려한 수식어들을 과감히 뒤로하고, 대한민국 패션 산업의 지형도를 바꿀 파격적인 청사진을 펼쳐 보인다. 바로 바늘땀 하나에 담긴 세대 초월의 기록, 즉 오롯한 ‘한국적 헤리티지(Korean Heritage)’의 영속성을 위한 새로운 행보다.
◇오롯이 ‘호미가’라는 이름으로...비교를 거부하는 독자적 헤리티지
정윤호 명장에게 오랜 시간 따라붙었던 타사 브랜드와의 비교 수식어에 대해 묻자, 그의 표정에는 감사함과 동시에 명장으로서의 단호한 자부심이 교차했다. 그는 “과거에는 그 비유가 호미가의 가치와 독보적인 품질을 시장에 직관적으로 증명해 주는 고마운 이정표였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언제까지나 타 브랜드의 명성에 기대어 설명될 수는 없다는 장인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누군가의 이름 뒤에 머무르기에는 정 명장이 걸어온 40년의 세월과 호미가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이 너무나 깊고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미가는 악어가죽 고유의 미세한 결을 손끝으로 읽어내며 머리카락 한 올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이중 가공(Dual Tanning)’ 기법과 현대적인 염색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냈다. 이를 통해 이미 글로벌 초럭셔리 하우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 정점의 기술력을 업계에 증명해 왔다.
“유럽의 명품 하우스가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담아낸 산물이라면, 호미가는 대한민국 장인의 지독한 끈기와 정교함이 빚어낸 오롯한 ‘K-럭셔리’의 결정체다. 소재의 선별부터 마감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글로벌 브랜드와 비교해도 품질과 예술성 면에서 압도할 자신이 있다. 이제는 그 어떤 수식어도 과감히 걷어내고, 세계무대에서 오직 ‘호미가’라는 고유의 브랜드와 ‘명장 정윤호’라는 이름 석 자로 당당히 승부할 것이다”
이는 사치품을 쫓는 맹목적 추격자의 틀에 갇히지 않고, 대한민국 장인 미학의 정수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독자적인 럭셔리 하우스로서 글로벌 시장과 진검승부를 펼치겠다는 거침없는 선언이다.
◇강남 빌딩 대신 택한 바보의 길, 수류탄을 던지는 심정으로 빚다
정 명장의 작업실 한편에 훈장처럼 쌓인 수많은 실패작과 가죽 조각들은 그가 도달한 경지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한다. 40년 전, 특수 피혁 가공이라는 미개척지에 맨몸으로 뛰어들었을 당시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경제적 관념이 없는 ‘바보’라고 불렀다.
“그때 가죽 가공과 원피 연구에 쏟아부었던 막대한 자금으로 강남의 땅이나 빌딩을 샀다면 지금쯤 수천억 대의 재벌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자금을 전부 프랑스 HCP사 등에서 공수해 온 최고급 악어가죽 원피를 사고, 실험하고, 실패해서 내다 버리는 데 아낌없이 썼다. 후회는 전혀 없다. 그 무모한 투자가 없었다면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지금의 호미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일반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해외에서 이미 완성된 가공 가죽을 들여와 단순 재단만 하는 것과 달리, 정 명장은 최고급 수입 원피를 다시 물에 빨고 건조하며 가죽의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고유 공정을 거친다. 원자재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기에 칼을 대는 매 순간이 그에게는 ‘군대에서 진짜 수류탄을 투척하는 듯한 생사의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가죽의 패턴을 맞추는 재단 과정에서 아주 미세한 오차나 결의 어긋남만 보여도 수백만 원짜리 가죽을 가차 없이 폐기하는 엄격함은, “소비자의 눈은 잠시 속일 수 있어도 장인으로서의 내 양심은 절대 속일 수 없다”는 철칙에서 기인한다.
◇“기술 독점의 시대는 끝났다”… 도제식 장막을 걷어낸 오픈소스형 혁신
정윤호 명장이 지향하는 장인정신의 진화는 가방 제조라는 지엽적인 성취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특수 피혁 가공 및 염색 기술은 장인의 밥줄이자 생존권이었기에, 철저히 베일에 싸인 채 도제식으로 비밀스럽게만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 명장은 이 수십 년 묵은 관습의 장막을 과감히 걷어내고 ‘기술의 완전한 공유와 전수’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감행했다.
“장인들이 고령화되고 청년들이 제조업을 기피하는 지금, 기술을 나만 알고 숨기는 것은 결국 한국 패션의 뿌리를 끊어버리는 자멸 행위다. 내가 평생을 바쳐 체득한 염색 기법과 특수 가공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오픈하는 이유도 대한민국에 지속 가능한 ‘장인 생태계’를 단단히 구축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정 명장은 사내에 별도의 전문 교육 공간을 마련해 젊은 인재들을 선발하고 직접 기술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청년들에게 제품을 찍어내는 기능공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한다. 대신 “가죽이라는 캔버스 위에 혼을 불어넣는 예술가이자 미래의 명장”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준다. 속도와 효율, 대량 생산이 미덕인 시대에 가죽의 재단부터 바느질, 마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완수하는 ‘1인 전담 제작 시스템’을 청년들에게 이식하며, 가장 강력하고 단단한 아날로그 혁신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세대를 넘어 흐르는 유산, ‘호미가(HORMIGA)’의 100년 설계도
스페인어로 ‘일개미’를 뜻하는 브랜드명처럼, 정윤호 명장은 지난 40년간 화려한 홍보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개미처럼 성실하게 품질이라는 외길만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이제 자신의 당대를 넘어 호미가의 ‘100년 후’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정 명장의 최종 목표는 호미가를 유럽의 유서 깊은 글로벌 하우스들처럼 세대를 넘어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장수 헤리티지 브랜드’로 안착시키는 것이다.
“내가 현역에서 물러나 눈을 감더라도, 바늘땀 하나에 담긴 세대 초월의 기록과 장인의 DNA는 후배들의 손끝을 통해 호미가 가방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문화적 자산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서울명장이라는 무거운 왕관을 쓴 내가 대한민국 패션 산업과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마지막 사명이자 선물이라고 믿는다”
유행을 생산하는 패션 기업의 틀을 벗어나 한국의 문화적 자산과 장인정신의 가치를 길러내는 거대한 기둥이 되겠다는 정윤호 명장. 독창적인 미학을 향한 그의 타협 없는 고집은 이제 한국 패션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는 위대한 유산으로 진화하며, K-럭셔리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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