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오십이 넘으면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아직도 '바빠서 이만'이라는 그 흔한 거절의 말 한마디를 내뱉지 못해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가?
나무를 깎는 공방의 오후는 고요하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깎여 나가는 목재의 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소음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 고요를 깨고 불쑥 찾아와 "차 한잔하러 왔다"며 서성이는 이웃을 마주할 때, 공방의 공기는 이내 무겁게 가라앉는다.
지금 당장 마감해야 할 작품이 있고, 밀린 작업이 산더미 같지만, 입술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제가 좀 바빠서요, 다음에 오시겠어요?"라는 그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한 문장이 목구멍 뒤편에서 끈적하게 걸려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하던 일을 멈추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씻는 당신의 등 뒤로, 귀한 오후의 시간과 에너지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거절을 '범죄'처럼 여기는가
우리는 어려서부터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특히 인생의 하반기에 접어든 이들은 조직과 가정에서 '좋은 사람', '너그러운 어른'이라는 평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에 시달린다.
거절을 하면 상대방이 나를 야박하게 여길까 봐, 혹은 나를 무리에서 배제해 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거절하지 못해 억지로 응하는 그 모든 순간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단지 갈등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도망치는 비겁한 타협일 뿐이다.
당신이 지켜낸 그 가짜 관계가 정말 당신을 지켜주는가
거절을 미안해하는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지독한 인정 욕구와 고립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내가 선을 긋는 순간, 그동안 쌓아 올린 인간관계의 탑이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라. "바빠서 이만"이라는 말 한마디에 쉽게 토라지고 당신을 비난할 사람이라면, 그 관계는 처음부터 당신의 에너지를 빨아먹기 위해 존재했던 껍데기에 불과하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내 삶의 영토를 침범당하면서까지 얻어야 할 평화는 없다
공방의 나무는 제 살을 깎아내며 단단한 기물이 된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제 영혼과 시간을 깎아내기만 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고 부서지기 마련이다.
무례한 요구에 침묵으로 동조하거나 애매한 미소로 일관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 삶의 영토를 마음껏 짓밟아도 좋다'는 허락을 건네는 것과 다름없다. 품위 있는 중장년의 삶은 내 공간에 아무나 들이지 않는 단호한 문지기가 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단호하지만 우아하게 선을 긋는 첫걸음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화를 내거나 붉으락푸르락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거절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한 주권 선포의 영역이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현재 내 상황의 팩트만을 전달하면 그만이다. 미안하다는 사족을 길게 붙일 필요도 없다.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당신의 소중한 하반기를 낭비하기에,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