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 윤병운
[중소기업연합뉴스] 윤병운 칼럼리스트 = 법원 울타리 안의 역설, 인가 후 기업이 마주하는 가혹한 현실,
현행 채무자회생법에 따른 회생절차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기업에게 합법적인 ‘부활의 기회’를 제공한다. 회생계획안이 법원의 인가결정을 받으면, 회생담보권을 제외한 일반 회생채권의 최대 70% 안팎이 감면 또는 출자전환이 된다. 남은 채무는 통상 10년간 분할 변제하는 방식으로 재조정되므로, 겉보기에는 기업이 과도한 채무 부담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경영활동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표면적인 진단에 불과하다. 법원의 손을 떠나 시장으로 복귀한 회생기업 앞에는 법정관리 시절보다 더 가혹한 ‘2차 생존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채무 감면의 대가로 진행된 출자전환으로 인해 기존 경영진(관리인)의 경영권 지분이 극도로 희석된다는 점이며, 둘째는 회생기업이라는 주홍글씨로 인해 정상적인 금융권 자금 조달이 원천 차단된다는 점이다.
특히 독보적인 기술력이나 유무형의 자산을 보유한 회생기업일수록 위험성은 배가된다. 지분 구조가 취약해진 틈을 타 외부 투기자본이나 경쟁사가 적대적 M&A를 시도할 가능성에 상시 노출되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피땀 흘려 회사를 정상화해 놓아도, 정작 열매는 회사의 역사와 철학을 전혀 모르는 적대적 세력이 가로챌 수 있다는 공포는 관리인의 경영 의지와 혁신 열정을 꺾어버리는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한다.
여기에 당장 원자재를 사고 공장을 돌릴 운영자금마저 부족한 ‘신용 경색’이 겹치면 기업은 다시 도산의 늪으로 빠져든다. 회생기업이 시장에서 완전히 독자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경영권 방어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다각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 취약한 지분 구조를 보완하는 ‘경영권 방어 전략’
출자전환으로 대주주가 된 채권단은 기업 경영보다는 채권 회수에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지분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거나 적대적 세력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장치가 필요하다.
우호 지분 확보와 주주 간 계약 체결
관리인은 경영권 안정화를 위해 현 경영진의 비전과 기술력을 신뢰하는 전략적 투자자(SI)나 재무적 투자자(FI)를 조기에 발굴해야 한다. 이들을 우호 주주로 끌어들이는 한편, 기존 출자전환 채권단과 협상하여 지분 매각 시 기존 관리인에게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우선매수권이나 공동매각권 등을 주주 간 계약에 명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콜옵션(Call Option) 제도의 적극적 활용
회생계획 수립 단계 또는 인가 후 채권단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향후 기업 경영 성과가 지표를 달성할 경우 관리인이나 그가 지정하는 제3자가 채권단의 지분을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되사올 수 있는 ‘콜옵션’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관리인에게 경영 정상화에 대한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는 동시에, 저렴한 비용으로 지분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법적 수단이다.
정관 변경을 통한 제도적 방어벽 구축
회생 절차 종결 전후로 주주총회를 통해 회사 정관을 정비해야 한다. 적대적 M&A 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적대적 인수자가 이사를 해임하려 할 때 통상적인 출석 주주 3분의 2가 아닌 80~90%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도록 하는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조항이나, 이사의 임기를 엇갈리게 하여 한꺼번에 이사회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차임기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2. 금융 절벽을 넘는 ‘대안적 자금 조달 전략’
신용등급이 최하위인 회생기업에게 시중은행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따라서 제도권 금융의 대안이 되는 특수 목적 자금과 구조조정 시장의 매커니즘을 영리하게 활용해야 한다.
DIP(Debtor-in-Possession) 금융 및 회생기업 전용 펀드 활용
최근 국내 구조조정 시장에서도 인가 후 회생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공공 유동성 공급이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정책금융기관이 운영하는 회생기업 전용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최우선적으로 두드려야 한다. 아울러 기업구조혁신펀드 등 PEF(사모펀드) 시장에서 회생기업의 내재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DIP 펀드를 유치하여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자산 유동화와 세일앤리스백(Sale and Leaseback)
회사가 보유한 공장 부지, 기계 설비 등 유휴 자산이 있다면 이를 과감히 처분하여 현금화 해야 한다. 만약 필수 영업 자산이라 처분이 어렵다면 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의 자산 매입 후 재임대(Sale and Leaseback)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자산을 매각해 즉시 막대한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해당 자산을 그대로 임차해 사용하여 공장 가동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향후 기업이 정상화되었을 때 해당 자산을 우선적으로 되사올 수 있는 특약(매수청구권)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국책 과제 연계 및 기술금융(IP 담보대출) 도입
기술력이 우수한 회생기업이라면 일반 신용대출이 아닌 기술 가치 평가 기반의 금융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회사가 보유한 특허권, 원천기술 등 지식재산권(IP)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정부 및 지자체가 지원하는 중소기업 기술개발(R&D) 국책 과제에 적극 참여하여 출연금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금 확보뿐만 아니라 회사의 기술적 공신력을 시장에 증명하여 대외 신용도를 회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3. 제도적 보완과 상생 모델의 필요성: ‘RE-Challenge’로의 확장
기업 내부의 자구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회생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적·제도적 시선의 전환이다. 기술력이 뛰어난 영세·중소 회생기업이 단지 자금난과 경영권 위협 때문에 무너지는 것은 국가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회생기업의 유무형 자산과 기술력이 지역 사회에 계속 남아 고용을 유지하고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한국기업회생협회가 돕는 ‘RE-Challenge(재도전) 프로젝트’ 같은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 예컨대 local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조성한 펀드가 회생기업의 출자전환 지분을 인수해 우호 주주 역할을 해주고, 기업이 정상화되면 관리인에게 지분을 환원하는 ‘상생형 지역 재도전 모델’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철저한 사전 준비만이 부활을 담보한다.
회생절차 인가는 마라톤의 결승점이 아니라, 고독한 생존 투쟁의 출발점이다.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도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하지 못해 회사를 빼앗기거나, 당장의 유동성 벽을 넘지 못해 재차 파산하는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회생기업의 관리인과 CRO는 인가 전 단계부터 법률·금융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콜옵션 확보, 정관 개정, 대안 금융 결합 등 촘촘한 ‘방어 및 조달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단순히 법원의 결정에 기대는 안일함이 아니라, 시장의 냉혹함을 직시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철저한 전략에서 나온다.
[한국기업회생협회] www.kocota.org / 1800-5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