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9년(세종 1년) 기해년 여름, 거제도 앞바다를 가득 메운 227척의 함대가 동쪽을 향해 돛을 올렸다. 우리 역사상 가장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단행되었던 해외 원정, 이른바 ‘기해동정(己亥東征)’ 대마도 정벌의 시작이었다.
조선 초기의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향후 200년간 남해안의 평화를 가져온 이 위대한 군사 작전은 강경한 국방 의지와 고도의 외교 전략이 결합한 조선 안보 정책의 결정판이었다. 왜구의 소굴을 초토화하고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했던 3차 대마도 정벌의 전말을 심층 취재했다.
1. 발발 배경: 선제타격 결단한 태종 이방원,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고려 말부터 이어진 왜구의 노략질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1419년 5월, 대마도의 극심한 기근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왜구들이 배 39척을 이끌고 충청도 비인현(지금의 서천)과 황해도 해주까지 밀고 들어와 민가를 불태우고 아군 지휘관을 전사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왕위는 세종에게 물려주었으나 군사권(병권)을 쥐고 있던 상왕(上王) 태종 이방원은 이 사태를 묵과하지 않았다. 태종은 왜구가 명나라 연안을 약탈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선을 재차 공격할 것을 간파하고 조정 회의에서 폭탄선언을 던진다.
"수군을 보내 바다 위에서 방어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왜구의 소혈(巢穴·소굴)을 직접 쳐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 결단은 단순한 보복을 넘어 갓 즉위한 세종의 왕권을 안정시키고, 변방의 안보 불안 요소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선제타격 의지였다.
2. 단 2주 만의 초고속 동원… 1만 7천 대군 대마도 상륙
태종의 군령이 하달되자 조선 조정은 놀라운 속도로 움직였다. 단 2주 만에 하삼도(경상·전라·충청도)에서 병선 227척, 군사 17,285명의 대규모 원정군이 조직되었다. 총지휘관인 삼군도체찰사에는 이종무 장군이 임명되었다.
6월 14일 거제도를 출항한 조선 함대는 6월 20일 정오, 대마도의 중심부인 아소만(당시 천포)에 도달했다. 바다를 덮어버린 조선 군선의 위용에 압도당한 왜인들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바빴다. 이종무 장군은 즉각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전개했다.
- 적의 기반 박살: 포구에 묶여 있던 왜선 129척을 포획하여 이 중 109척을 불태웠다.
- 소굴 초토화: 왜구의 거점 가옥 1,939호를 불태워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 인도주의적 성과: 왜구에게 붙잡혀 있던 중국인(명나라 백성) 포로 131명을 구출하며 국제적인 명분까지 확보했다.
작전 중반인 6월 26일, 험준한 산악 지형인 누카다케(糠岳) 전투에서 왜구의 기습을 받아 아군 편장이 전사하는 등 잠시 고전하기도 했으나, 우군절제사 황상 등의 거센 반격으로 적을 제압했다. 결국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宗貞盛)는 조선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릎을 꿇고 군대를 거두어 달라고 애원했다. 목적을 달성한 조선군은 태풍의 위험을 고려해 7월 3일 거제도로 무사히 회군했다.
3. 정벌 이후의 대마도 관리: 경상도 예속과 고도의 '밀당 외교'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이 위대한 이유는 무력 진압 이후에 펼쳐진 세종대왕의 천재적인 외교 통제 정책에 있다. 조선은 대마도를 무력으로 강점하는 대신, 경제적 생줄기를 쥐고 흔드는 유화책을 썼다.
척박한 대마도는 조선과의 교역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이를 간파한 세종은 대마도주를 조선의 신하로 임명하고 안보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1420년, 대마도주는 스스로 "대마도를 경상도의 한 고을로 편입해 달라"고 청원하기에 이른다.
조선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경상도의 제포(웅천), 부산포(동래), 염포(울산) 등 3포를 개항하여 합법적인 무역을 허용했다. 그러나 결코 통제권을 잃지 않았다. 1443년 계해약조를 통해 대마도주가 보낼 수 있는 무역선을 연간 50척, 하사하는 곡물을 200석으로 엄격히 제한하며 경제적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4. 역사적 평가: 조선 수군의 전투력 증명과 안보의 유산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남해안을 피로 물들였던 왜구의 대규모 침탈을 완전히 근절시켰다. 이 정벌 이후 임진왜란 전까지 약 200년간 조선의 바다에는 전례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대규모 함대의 장거리 기동력과 화포를 활용한 해상 타격력 등 조선 수군의 막강한 국방력을 천하에 과시한 사건이기도 했다.
역사 전문가들은 "대마도 정벌은 안보와 경제를 결합하여 주변국을 통제한 조선 초기 외교의 위대한 승리"라며, "강력한 자주국방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평화적인 외교와 국익 수호가 가능하다는 냉엄한 교훈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