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독재를 한 이승만과 전범 앞잡이 박정희 사진을 걸어놓은 보수 정당의 중심인 ‘국민의힘’ 당명과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슬로건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지난 2020년 국민의힘이 미래통합당에서 현재의 당명으로 개명할 당시, 일본 극우 단체의 슬로건을 표절했다는 의혹과 국내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명칭을 도용했다는 논란이 동시에 터지며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두 정당의 명칭 역사와 인물들의 발언을 통해 당시 논란의 실체를 재조명해 본다.
1. 70년간 당명 고수한 日 자민당, 최근 구호는 ‘정치 개혁’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은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보수합동)하면서 창당된 이후 약 70년간 단 한 번도 당명을 바꾸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반면, 한국의 보수 정당은 정치적 국면마다 당명을 수차례 바꾸는 행보를 보여 대조를 이룬다.
자민당은 선거철마다 새로운 구호(슬로건)를 내걸고 있다. 최근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 등으로 인한 당내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정치 개혁, 확실하게 단행한다(政治改革、確実に断行する)"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울러 국가 안보와 미래 비전을 강조하는 "일본을 지키다, 미래를 창조하다(日本を守る、未来を創る)" 등의 슬로건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2. "일본 극우의 소굴에서 따왔다"… 학계·여당의 파상 공세
지난 2020년 9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미래통합당은 새 당명으로 ‘국민의힘’을 확정했다. 그러나 새 당명이 공개되자마자 일본 자민당이 아닌, 일본 최대 규모의 극우 성향 민간 단체인 '일본회의(日本会議)'의 슬로건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정치권에 파장이 일었다.
학계에서는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총대를 멨다. 강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미래통합당의 새 당명은 일본 극우파의 본산인 일본회의의 슬로건 '국민의 힘(일본어: 고쿠민노 치카라)'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어법상 '국민의 힘'이라고 띄어 써야 하는데도 붙여서 쓰는 것은 명사는 한자를 쓰고 조사는 히라가나를 써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지극히 일본식 표기법을 따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즉각 공세에 가담했다. 김남국 당시 민주당 의원은 "정말 부끄럽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힘 지지 기반이 극우 단체임을 몰래 인정하는 꼴"이라며 거칠게 비판했다.
3. 정청래 "내 시민단체 이름 훔쳐" vs 김수민 "질투심에 깎아내리기"
표절 시비는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 역사적 배경과도 얽히며 복잡해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이라는 명칭이 과거 자신이 이끌던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이름이라고 폭로했다.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나와 많은 회원들이 2003년에 발족한 시민단체 이름이며 내가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단체"라며 "명백한 이름 훔치기다. '국민의 힘'에 의해 탄핵당한 세력들이 이 이름을 당명으로 사용하는 코미디가 어디 있느냐"고 유감과 불쾌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당명 개정 작업을 주도했던 김수민 국민의힘 홍보본부장은 MBC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김 본부장은 "몇몇 사람들이 재미 아니면 질투심 때문에 상대방의 열정을 깎아내리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소위 '원조'를 주장했던 정청래 의원도 그러면 과거에 극우 단체 이름을 딴 것이냐,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또한, '국민의힘'이라는 단어 조합은 2012년에도 정치권에서 사용된 적이 있는 보편적인 언어라고 선을 그었다.
4.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난 공방의 결론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이라는 당명은 대국민 공모에서 접수된 1만 6,941건의 제안 중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인 '국민'을 바탕으로 전문가 심사를 거쳐 제정된 명칭으로 확인되었다.
일본회의가 사용한 문구 역시 확인 결과 "자랑스러운 나라 만들기에 국민의 힘을!"이라는 통상적인 문장의 일부분에 불과했으며, 띄어쓰기를 생략한 것 또한 시각적 로고 디자인과 정당법상 정식 등록을 위한 브랜드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이 인정받았다. 결국 일본 자민당이나 특정 극우 단체의 구호를 모방했다는 주장은 치열한 여야 대치 정국 속에서 번진 정치적 낙인찍기성 해프닝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