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정찬] (시) '사람이 온다'외 1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시인 한정찬의 시 "사람이 온다",  "인연의 기적"



사람이 온다

 

 

바람은 등을 기대려고

저물녘 언덕을 찾아간다

 

햇볕은 하루의 가장 따뜻한 자리에

가만히 배를 드러낸다

 

우리 또한

끝내 바라보아야 곳이 있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의 눈빛,

끝까지 의심하지 않는 마음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사람에게 데려다준다

 

, 신뢰란

상처 입은 영혼조차

다시 문을 열게 하는 힘이다

 

바람이 불어오고

햇볕이 천천히 내려앉는 동안

 

길을 건너

사람이 온다

 

 

* 시작 노트

우리는 오래 살아도 끝내 사람에게 기대며 살아간다. 바람이 저물녘 언덕을 찾아가듯, 햇볕이 가장 따뜻한 자리에 몸을 눕히듯 마음 또한 닿아 머물 곳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신뢰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상처를 겪은 영혼일수록 문을 닫고,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흔들린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먼 길을 건너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시는 끝내 한 사람을 믿어 보려는 마음, 그리고 다시 사람에게로 열리는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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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기적

 

 

별빛은
제 몸을 다 태운 뒤에야
밤에 닿고,

 

바다는
부서지는 빛의 조각들로
하루의 끝을 흔든다.

 

사람의 마음도 그와 비슷해서
우리는 어느 날
우연처럼 서로를 발견하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물살 하나
서로를 향해 흘려보내고 있었는지 모른다.

 

한 사람의 이름이
내 삶에 들어와
조용히 불을 켜는 일.

 

그건 잠시 스쳐 가는 감정이 아니라
숱한 외로움과
견디던 시간들이 밀어 올린
깊고 느린 도착이다.

 

오늘
그대와 내가
한숨 놓을 자리 하나 사이에 두고
삶의 마른 이야기들을 꺼내놓을 때,

 

끊어졌던 하루의 가장자리들이
다시 이어지고,

 

다 살아낼 수 없을 것 같던 세상도
조금 더 오래
우리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래서 인연은
소란한 운명이 아니라,

 

다정한 사람 하나가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조용한 기적이다.

 

 

* 시작 노트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서로를 향해 흘러온 인연의 결과로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살아가며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비춰 주는 일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견디고 품어 온 시간들이 쌓여 이루어진 은혜라는 생각을 담고자 했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시 마주 앉아 삶을 이야기하고 다시 하루를 건너갈 힘을 얻는 순간들이 결국 세상을 오래 버티게 하는 조용한 기적임을 전하고 싶었다.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시집한 줄기 바람(1988) 29, 한정찬시전집 2, 한정찬시선집 1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6.05.30 19:17 수정 2026.05.3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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