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란은 전쟁이 재개되면 '완전한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본지는 아신대 중동연구원 김종일 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정리해서 이란과 미국이 외교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알아본다.
김 교수는 2026년 5월 현재 중동 전역을 뒤흔들고 있는 지각변동의 본질을 3가지 축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첫째, 조너선 폴라드의 충격적인 발언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극우 세력이 구상하는 '이란 너머의 전쟁(튀르키예·이집트)'이라는 냉혹한 확전 시나리오를 폭로한다. ▶둘째,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봉쇄와 88% 통항량 급감이라는 수치 뒤에 숨겨진 미국과 이란의 막전 막후 휴전 협상 및 그 이면의 '방아쇠 셈법'을 지정학적으로 해부한다. ▶셋째, 가자지구 통제 영역을 70%까지 확대하려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지시와 "100% 팔레스타인의 땅이어야 한다"라는 유엔의 충돌을 통해, 숫자로 환산되는 점령의 지도상에서 소수점 이하로 밀려난 200만 인간의 실존적 비극을 다룬다. 궁극적으로 김 교수는 이념과 국익이라는 체스판의 말로 소모되는 무고한 생명들을 기독교적 시각과 인간적 공감으로 바라보며, 증오의 벽돌을 내려놓는 '십자가의 사랑'만이 미션 크립(Mission Creep)의 악순환을 끊을 유일한 해법임을 역설한다.
퍼센트의 지도 위에 그어지는 피의 경계선
땅의 지분을 두고 벌어지는 냉혹한 셈법 앞에서, 한 인간의 존엄한 생존은 자꾸만 소수점 아래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가자지구 내 통제 영역을 70%까지 끌어올리라고 군에 지시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국제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유엔은 곧장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대변인 스테판 뒤자리크는 거친 수식어를 배제한 채 "가자의 100%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것이어야 한다"라고 명백히 못 박았다.
그러나 현실의 장부 위에서 인간의 목숨은 늘 가차 없이 생략된다. 퍼센트로 환산되는 점령의 지도 위에서, 갈 곳을 잃은 200만 명의 영혼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무거운 질문은 지금, 이 순간 거대한 비극을 방관하고 있는 국제사회 전체를 향해 서늘하게 던져져 있다. 이 잔인한 영토 논쟁의 뿌리는 2025년 10월, 미국의 긴밀한 중재로 성사되었던 휴전 합의에 닿아 있다. 당시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역 내에 임시로 그어진, 이른바 '황색 선(Yellow Line)'까지 후퇴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그 시점에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땅은 가자 전체의 약 53% 수준이었으며, 나머지 영역은 하마스의 통제권 아래 남겨두는 구조였다.
하지만 인간이 종이 위에 갈겨쓴 휴전이란 약속은 늘 탐욕보다 나약했다. 하마스의 무장 해제 프로세스는 지지부진한 늪에 빠졌고, 이스라엘은 이를 빌미 삼아 가자 내부를 겨냥한 정밀 타격과 군사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합의의 핵심 조항들을 양측이 서로 위반한다는 상호 비방과 비판이 꼬리를 물었고, 그 혼란을 틈타 통제선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의 터전 안쪽으로 밀려들어 갔다. 평화라는 이름의 외교적 수사 아래에서, 전선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피로써 다시 그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스파이의 밀어와 폭풍의 전조
가자지구의 비극이 국지적 절망에 머물지 않는 까닭은, 그 이면에 중동 전체의 지도를 새로 그리려는 더 거대한 군사적 야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위해 미국의 고급 군사 기밀을 무단으로 빼돌린 죄로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을 차가운 감옥에서 보낸 한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그의 노회한 시선이 겨눈 다음 표적은 단일 국가로서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튀르키예와 이집트다. "이란 다음 전쟁은 튀르키예와 이집트를 향한다"라는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앙카라와 카이로의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중동 전역의 안보 지형을 격렬하게 흔들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스파이가 팟캐스트에서 뱉어낸 이 한마디는 단순한 노망 찬 망언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극우 강경파들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진짜 속내를 드러낸 균열의 신호탄인가.
발언의 주인공은 국제 스파이 역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조너선 폴라드다. 그는 과거 미국 해군 정보분석관으로 은밀히 활동하다가, 1984년 동맹국이었던 이스라엘에 미국의 핵심 기밀문서들을 지속적으로 넘긴 혐의로 FBI에 체포되어 미국 연방 교도소에서 30년이라는 무거운 복역 기간을 채웠다. 2015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2020년 말 이스라엘로 영구 이주했고, 공항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극진한 영웅 대접을 받으며 이스라엘 시민권을 획득했다. 워싱턴에서는 국가를 배신한 추악한 반역자로 낙인찍혔으나, 텔아비브에서는 조국을 구한 위대한 애국자로 칭송받는 극단적인 인물이다. 더욱이 그는 현재 이스라엘 정권의 폭주를 주도하는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 안보 장관의 오랜 측근이자 사상적 멘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가벼워 보이는 담론은 단순한 사견이 아닌, 권력 핵심부의 예언서와 같은 무게를 지닌다.
폴라드는 이스라엘 강경 매체인 '아루츠 셰바(Arutz Sheva)'의 팟캐스트 마이크 앞에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전쟁의 확장 논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튀르키예 사람들과의 전면전이 이란과의 대결만큼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담을 진행하던 사회자가 튀르키예 군대를 명실상부한 중동 최강의 재래식 군사력으로 꼽으며 우려를 표시하자, 폴라드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짧고 강력하게 답했다. "폭풍이 오고 있다."
그는 튀르키예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핵심 회원국이라는 엄연한 지정학적 사실을 두 번이나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그 정체성 때문에 군사적 처리가 더 까다롭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란 및 가자지구, 그리고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쟁은 "지중해 동부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반드시 먼저 끝내야 할 선결 과제"라고 단호히 규정했다. 이스라엘이 지금 전 세계의 비난을 무릅쓰고 전면적인 군사 행동에 매달리는 본질적인 이유를, 그는 "다음에 도래할 진짜 거대한 전쟁을 완벽하게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단호히 못 박았다. 그들이 상정하고 있는 최종 전쟁의 상대가 바로 이슬람 수니파의 두 축인 튀르키예와 이집트라는 대담한 선언이다.
호르무즈의 모순과 협상 테이블 밑의 방아쇠
이처럼 전선이 끝없이 팽창하는 와중에, 세계 경제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은 깊은 모순과 기만의 안개로 가득 차 있다. 백악관의 워싱턴 관료들은 언론을 향해 "잠정 합의가 코앞에 다가왔다"라며 낙관론을 펼치고 있으나, 같은 시각 테헤란 앞바다의 서슬 푸른 파도 위에서는 민간 유조선들을 향한 혁명수비대의 날카로운 경고 사격이 굉음을 내며 울려 퍼진다. 미국과 이란은 진정으로 평화의 손을 잡으려는 것인가, 아니면 서로 마주 앉은 협상 테이블 밑에서 상대의 심장을 겨눈 채 여전히 차가운 방아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인가. 2026년 5월 29일 현재, 중동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이 거대한 모순의 물음표를 외교적 팩트를 통해 하나씩 풀어내야 한다.
이 극단적인 봉쇄 위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지난 2026년 2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과 이스라엘 연합군이 이란 내 심장부를 겨냥해 단행한 전격적인 기습 참수 타격으로 인해 오랜 기간 닫혀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최고지도부를 잃은 이란은 즉각적인 보복 조치로 세계 원유의 숨통인 호르무즈 해협에 군사 기뢰를 다량 살포하며 물길을 틀어막았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뒤를 이은 트럼프 행정부는 4월 13일을 기해 이란의 모든 주요 항구와 해안선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해상 봉쇄(Naval Blockade)의 전면적 시행으로 맞받아쳤다.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무려 5분의 1이 매일 통과하는 이 좁은 물길이 군사적으로 차단당하자, 해협을 정기 통항하던 선박들의 전체 통항량은 전쟁 발환 전과 비교해 무려 88%라는 파멸적인 수치로 곤두박질쳤다. 전 세계의 주유소 기름값이 한꺼번에 출렁거리고 아시아와 유럽의 실물 경제가 일제히 숨을 죽인 근본적인 까닭이 바로 이 88%의 절벽에 있다.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신호들은 시장과 동맹국들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의 유력 매체 악시오스(Axios)의 보도에 따르면, 미·이란 양측의 막후 협상가들은 일단 60일간 군사 행동을 멈추는 '잠정 휴전 합의 초안'에 극적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초안의 골자는 명확하다. 적대 행위를 60일간 공식 연장 및 중단하고, 이란 해군이 해협 내에 매설한 기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조건으로 미국 역시 이란 경제의 목을 죄고 있는 해상 봉쇄를 즉각 해제하며, 이후 고농축 우라늄 등 동결된 핵 활동 문제를 테이블 위에서 재협상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평화의 외견과 달리, 권력의 내부는 여전히 서늘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합의안에 대한 최종 서명을 고의로 미루며 판을 흔들고 있고, 테헤란의 외교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완성된 합의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타결설 자체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밴스 부통령 역시 조인트베이스 앤드루스 기지의 활주로에서 기자들과 만나 “외교적 타결에 완전히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처분 문제와 추가 농축 권리라는 아주 "껄끄러운 지정학적 대목"이 여전히 거대한 걸림돌로 남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금융 시장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의 물길이 완전하고 안전하게 열리기 전까지는, 이란에 대한 그 어떤 경제 제재 완화나 해제 논의도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평화의 대화 속에서도 군사적 억지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냉혹한 실용주의(프라그마티즘)의 극치다.
십자가의 긍휼, 체스판 위의 한 영혼을 위하여
수많은 정보와 비밀 해제된 문서들, 그리고 스파이들의 서늘한 밀어와 외교 장부의 퍼센트 수치들을 거듭 팩트체크하고, 크로스체크하면서, 필자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형언할 수 없는 서글픔과 영적인 고뇌가 짙게 밀려온다. 지정학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강대국들과 권력자들은 국익과 이념이라는 화려한 깃발을 흔들며 판세를 논하지만, 정작 그 판 위에서 소모품처럼 지워지는 것은 언제나 신의 형상을 닮은 무고한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임무가 살금살금 기어간다"라는 미션 크립(Mission Creep)의 덫에 걸린 중동은, 제한적 타격이라는 기만적인 명분으로 시작해 결국 점령과 체제 전복, 그리고 또 다른 전면전이라는 파멸의 소용돌이로 무고한 백성들을 끌고 들어간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이 서서히 다가오는 파멸을 인지하지 못한 채, 텔아비브와 워싱턴, 그리고 테헤란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거대한 극작가라도 된 양 오만을 떨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는 이 어두운 시대의 탐욕을 향해 엄중히 선포한다.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라는 그 단 하나의 선언은, 유대인이든 페르시아인이든, 팔레스타인이든 튀르키예인이든 그 누구도 권력자들의 체스판 위에서 소모되어도 좋은 한낱 말(馬)이나 숫자가 될 수 없음을 천명한다. 성경이 요구하는 공의(미쉬파트)는 인간의 법정이 말하는 보복의 논리가 아니며, 성경이 선포하는 긍휼(헤세드)은 강자의 동정이 아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원수 된 둘 사이의 막힌 담을, 그 어떤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자기 육체를 온전히 찢으심으로써 허무신 참된 화해의 유산이다(에베소서 2:14).
어느덧 수많은 분석과 지정학적 논리의 긴 여정을 지나 마지막 단락에 당도했다. 짧지 않은 시간 중동에서 살면서 깨어지고 부서진 인간의 실존을 목격해 온 기자로서, 세상의 화려한 분석서들이 끝내 기록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의 얼굴을 지울 수 없다. 포탄이 지나간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진 엄마의 손을 잡고 우는 가자지구 아이의 젖은 눈동자, 국가의 명령이라는 거대한 압제 앞에서 방아쇠를 당겨야만 하는 어린 군인의 떨리는 손끝, 리알화 폭락으로 가족들의 저녁 빵 한 조각을 구하지 못해 어두운 골목길에 홀로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테헤란 상인의 굽은 등.
서면 인터뷰에 응한 김 교수는 그들을 가리켜 뉴스 헤드라인이 규정하는 '사탄'도, 제거해야 할 '적'도, 승리를 위한 '아군'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저 우리와 똑같은 흙으로 빚어져, 창조주의 숨결을 부여받은 고귀하고 고독한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칼로써 잘라낸 매듭은 일시적인 승리의 도취를 줄지언정, 반드시 그 칼날의 수천 배에 달하는 피비린내 나는 증오의 매듭을 다시 낳는 법이다. 진정한 평화는 서늘한 동맹의 서명이나 봉쇄의 해제라는 장부의 청산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총구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를 나와 똑같이 아파하고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용기와 사랑에서 비로소 피어난다.
메마르고 거친 유대의 광야에도, 황량한 페르시아의 사막에도 눈물 유전이 터지면 꽃은 핀다. 거대한 권력의 사슬 속에서 누군가 먼저 손에 쥐고 있던 증오의 벽돌을 조용히 내려놓고, 갈라진 땅의 균열을 향해 조건 없는 용서와 긍휼의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릴 때, 나는 그 십자가의 한 방울이 결코 메마른 대지에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참된 평화의 강물로 흐르게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