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배들(3) 철학자의 겉옷을 입은 십자가의 변증가, 순교자 유스틴

"진리 그 자체를 만났다"… 철학의 방황 끝에 십자가를 붙든 구도자

이성을 넘어 복음으로… '로고스'의 언어로 제국을 뒤흔들다

세상 학문 속 숨겨진 신비… 배척 아닌 소통으로 참된 주인을 증명하라

 

화려한 도심의 불빛 뒤로 쓸쓸한 고독이 밀려올 때, 우리는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까요? 돈을 더 많이 벌면 이 공허함이 채워질까 싶어 몸부림치기도 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지식을 쌓으려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이번에 이야기할 믿음의 선배는 우리처럼 인생의 진짜 정답을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던 구도자, 유스틴(Justin Martyr, 100?~165)입니다. 이름 뒤에 '순교자'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아예 성처럼 붙어버린 신앙의 선배이지요.

 

유스틴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나블루스(Nablus) 지역인 '플라비아 네아폴리스'에서 이방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세겜 지역 근처입니다. 오늘날 여전히 분쟁과 아픔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유대 땅에서 자란 그리스 철학자였던 셈입니다. 그는 진리를 찾기 위해 당대의 내로라하는 철학을 다 섭렵했습니다. 금욕을 강조하는 스토아학파, 말재주를 가르치는 소요학파, 숫자로 세상을 풀려던 피타고라스학파를 거쳐 플라톤의 철학에 심취했지요. 그러다 로마로 건너가 기독교 철학 학교를 세우고 활동하다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이유로 참수형을 당해 삶을 마감했습니다.

 

플라톤의 사상에 빠져 "이제 나도 신을 볼 수 있겠구나" 하며 거드름을 피우던 젊은 유스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적한 바닷가를 거닐며 사색에 잠겨 있는데, 남루한 옷차림의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노인은 유스틴이 자랑하던 인간의 철학이 얼마나 부질없고 한계가 명확한지 조목조목 짚어냈습니다. 그리고 철학자들의 책 대신,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진리를 말했던 '예언자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노인이 떠난 후, 유스틴의 마음에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뜨거운 불꽃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의 학문이 줄 수 없던 평안이 밀려왔지요. 게다가 당시 로마 제국의 지독한 박해 속에서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던 기독교인들의 용기가 떠올랐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예수가 진짜 진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철학자의 겉옷을 벗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야말로 인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장 안전하고 유익한 참된 철학'이라고 세상에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스틴의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로고스(λόγος)'입니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로고스는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이성이자 원리를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중고등학생 때 배우는 도덕이나 철학 시간에 나오는 세상의 이치 같은 개념이지요. 유스틴은 이 단어를 가져와 기독교를 모르는 로마 사람들에게 아주 친숙하게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씨앗이 조금씩 뿌려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씨 뿌려진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이라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현인들이 올바른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바로 이 로고스의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유스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상 철학자들이 깨달은 진리는 파편적이고 불완전하지만, 그 로고스가 온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일부를 보고 말했지만, 우리는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을 믿는다는 당당한 선언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학문과 진리, 아름다운 가치들의 진짜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교회 밖의 세상 학문이나 문화, 예술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면 됐지, 세상 공부는 해서 뭐 하니?"라는 식의 딱딱한 태도 말입니다. 하지만 유스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법칙, 감동적인 문학 작품,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음악 속에도 하나님의 신비와 진리의 조각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정교한 수술로 생명이 살아나고, 따뜻한 법률가에 의해 억울한 사람이 구제받는 그 모든 일반적인 영역 속에 하나님의 '로고스'가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개방성과 희망을 줍니다. 세상의 좋은 가치들을 무서워하거나 배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누리고 감사하며, 그것들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너희는 다 틀렸어"라고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좋은 생각들을 징검다리 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유스틴이 철학의 언어로 로마 황제에게 기독교의 억울함을 당당히 변호했듯이 말입니다.

 

유스틴은 결국 자신의 신앙을 굽히지 않고 로마의 칼날 앞에 목을 내주었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세상의 권력보다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교묘하게 신앙을 흔들고, 우리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지혜의 근본이 주님께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도, 직장에서 업무를 볼 때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곳에 계신 주님을 발견해 보세요.

 

세상의 학문을 열심히 배워서 세상을 이롭게 하고, 동시에 그것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멋지게 증명해 내는 삶. 그것이 바로 유스틴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희망의 이정표입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5.30 16:33 수정 2026.05.3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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