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 잡상과 자금성 주수, 지붕 위 권력의 암호

같은 지붕 장식, 조선 궁궐과 중국 황궁은 왜 달랐나

조선은 수호와 위엄, 중국은 황제권과 등급 질서 강조

동아시아 궁궐 지붕에 새겨진 수호와 권위의 상

조선 궁궐의 잡상과 중국 베이징 자금성의 주수는 모두 궁궐 지붕 위에 놓인 수호 장식이다. 그러나 두 장식은 같은 동아시아 궁궐 건축 문화권 안에서 영향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조선 궁궐의 잡상은 왕실 건축의 수호와 위엄을 드러낸 장식기와이고, 자금성의 주수는 중국 황실 건축의 등급과 황제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궁궐 지붕 위에 줄지어 놓인 작은 인물상과 동물상은 멀리서 보면 단순한 장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은 장식에는 왕실의 권위, 재앙을 막으려는 믿음, 건축물의 격을 드러내는 상징 체계가 담겨 있다. 조선 궁궐의 잡상과 자금성의 주수는 모두 지붕 위 수호 장식이라는 공통점을 갖지만, 이름과 배열, 수량, 의미는 서로 다르게 발전했다.

경복궁  경회루의 잡상 (사진=국가유산포털 제공)

한국에서 이 장식은 일반적으로 잡상이라고 부른다. 잡상은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놓이는 흙을 구운 장식상이다. 궁궐 지붕의 끝부분에 올려 건물의 위엄을 높이고, 재앙과 악귀를 막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조선 궁궐의 잡상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왕실 공간의 품격을 드러내는 건축 요소였다.

 

자금성의 주수 (사진=국가유산컨텐츠센터 제공)

반면 자금성 지붕 위 장식을 모두 한국식 표현인 잡상으로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중국 건축에서는 주수, 선인상, 선인주수, 척수 같은 용어가 쓰인다. 특히 처마 모서리에 줄지어 놓인 동물상은 주수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두 문화를 비교할 때는 조선 궁궐의 잡상과 자금성의 주수 또는 선인주수를 구분해 쓰는 것이 정확하다.

 

조선 궁궐의 잡상은 문헌상 이름과 실제 지붕 위 형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문헌에는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등 『서유기』 계열로 해석되는 이름들이 전한다. 그러나 현존 궁궐 지붕 위 잡상은 손오공, 사자, 해치, 용, 봉황 등 여러 상징 동물과 서수가 섞여 나타난다. 이 때문에 잡상을 단순히 『서유기』 인물상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대표 사례로 경복궁 경회루를 들 수 있다. 경회루는 조선 궁궐 건축의 격을 보여주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지붕 내림마루에 잡상 11개가 올라간 사례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수량을 중국식 건물 등급 체계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조선 궁궐의 잡상 수는 건물의 격과 관련이 있지만, 현존 사례의 배열과 형상은 일정한 공식보다 수호와 장식, 권위 표현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자금성 보화전 (사진=국가유산컨텐츠센터 제공)

자금성의 경우는 다르다. 중국 황실 건축에서 주수의 수량은 건물의 규모와 등급을 드러내는 시각적 표지로 작동했다. 자금성 태화전은 그 상징성이 가장 강한 사례다. 태화전 처마 모서리에는 앞쪽의 기봉선인 뒤로 용, 봉, 사자, 천마, 해마, 산예, 압어, 해치, 두우, 행십 등 10개의 주수가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태화전을 “주수 11개”로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쪽의 기봉선인은 봉황을 탄 선인상이고, 그 뒤에 놓인 열 마리가 주수다. 중국식 설명에서는 기봉선인과 주수를 구분해 계산한다. 따라서 태화전은 “기봉선인 1상과 주수 10개를 둔 최고 등급의 사례”라고 정리하는 것이 정확하다.

 

숫자가 갖는 의미도 두 문화권에서 다르게 읽힌다. 조선 궁궐의 잡상은 건물의 격, 수호 의미, 장식성이 함께 작용한다. 반면 자금성의 주수는 건축 위계를 보다 뚜렷하게 보여준다. 태화전의 10개 주수는 황제권의 최고 위계를 상징하는 장치로 이해된다. 건물 등급에 따라 주수의 수량이 달라지는 중국 황실 건축의 질서가 지붕 위에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기능 면에서는 공통점도 분명하다. 조선 궁궐의 잡상과 자금성의 주수는 모두 재앙을 막고 건물을 지키려는 상징을 지녔다. 화재를 막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도 함께 담겼다. 다만 중국의 주수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지붕의 기와가 만나는 부분을 덮고 장식하는 건축적 기능도 갖고 있었다. 조선 궁궐의 잡상 역시 지붕선을 장식하고 궁궐 건축의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결국 조선 궁궐의 잡상과 자금성의 주수는 닮았지만 같은 장식은 아니다. 둘 다 궁궐 지붕 위에 놓인 수호 장식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조선 궁궐의 잡상은 왕실 건축 안에서 수호와 위엄의 상징으로 변용된 한국식 장식기와다. 자금성의 주수는 중국 황실 건축에서 건물의 등급과 황제권을 드러내는 시각 언어다.

 

두 장식의 차이는 동아시아 궁궐 건축 문화의 공유와 변용을 보여준다. 조선은 외래 건축 요소를 받아들이되 궁궐의 질서와 상징 체계 안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중국 자금성은 황제 중심의 건축 위계를 지붕 장식의 수량과 배열로 체계화했다. 작은 지붕 장식 하나에도 각 왕조가 권위를 표현한 방식이 담겨 있는 셈이다.

 

따라서 조선 궁궐의 잡상과 자금성의 주수는 “같은 지붕 위 수호 장식”이라는 공통점과 “조선 궁궐의 변용, 중국 황실 건축의 위계”라는 차이를 함께 보아야 한다. 조선 궁궐의 잡상은 궁궐을 지키는 상징이자 왕실 건축의 품격을 높이는 장식이었다. 자금성의 주수는 황제권과 건물 등급을 드러내는 중국 황실 건축의 암호였다.
 

작성 2026.05.29 17:44 수정 2026.05.2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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