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보의 일히일비(10) - 귀를 기울인다는 건

"사랑하면 귀가 열린다"… 일상과 신앙 속 '경청'의 미학

"밥 먹었어?" 끊이지 않는 질문,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온기

귀를 기울이는 것과 기억력은 별개… "진짜 잘 잊어버리는 것뿐"

 

 

אָזַן (아잔) - 귀를 기울이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아내가 쫑알거리며 말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내 관심사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할 때는 사실 지겨울 때도 있지만, 쫑알거리며 가족을 비롯한 내 관심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입이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아내의 미니미 같은 딸 역시 그렇다. 뭐라뭐라 쫑알거리며 이야기할 때는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귀여울 수가 없다. 즐겁게 듣고 있게 된다. 물론 논의를 하거나 어떠한 쟁점에 있어서 토론이 될 때는 나 역시 열변을 토할 때도 있지만, 그냥 일상의 이야기를 할 때는 그저 질문을 한 번씩 던져가며 흐뭇하게 듣고 있게 되는 듯하다.

 

사랑하는 존재 앞에서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종교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신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초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집중하는 모습이 바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예외는 없다. 기독교 문화에서는 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바로 '기도', '말씀연구' 등으로 표현된다. 이는 독서, 음악 감상, 미술, 철학 등 모든 분야가 다르지 않다. 텍스트를 통해, 혹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화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무리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혹은 상대방의 반응에 귀를 기울인다. 그냥 입을 닫거나 떠들어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그리고 반응에 귀를 기울인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가. '밥 먹었어?', '잘 다녀왔어?', '뭐 먹을까?', '어때? 괜찮아?' 같은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다. 상대방이 반응해 주길 바라며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물론 귀를 기울이는 것과 기억력은 별개의 문제다. 사랑하기에 물어보고, 그 대답에 귀를 기울이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하느냐는 사랑의 크기와 별 상관이 없다. 그냥 잘 잊어버리는 것뿐이다. 

 

정말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이 글을 꼭 읽길 바라며...)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5.18 11:46 수정 2026.05.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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