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스승의 은혜를 다시 묻는다

말뿐인 감사에서, 실질적 존중과 제도적 보호로

▲박동명/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5월은 감사의 계절이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으며, 스승의날이 있다. 그 가운데 스승의날은 단순히 한 송이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기념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교사를 어떤 존재로 대하고 있는지, 다음 세대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지를 묻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의 스승의날은 예전처럼 따뜻한 감사의 말만으로 채우기 어렵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라는 노랫말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교실의 현실은 그 노랫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민원과 신고, 고소와 비난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의 자리가 신뢰의 공간이 아니라 방어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대학에서 2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강단에 선다는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만이 아니다. 때로는 학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때로는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으며, 때로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조언자가 되는 일이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교육에는 지식보다 더 깊은 책임이 있고, 기술보다 더 큰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책임과 사랑을 너무 쉽게 의심하고, 너무 빠르게 공격하며, 너무 늦게 보호하고 있다.


최근 교원단체들이 발표한 스승의날 관련 교원 인식조사 결과는 매우 무겁다. 교직 생활에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는 응답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고,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교사도 극히 적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최근 1년 사이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직업 만족도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 신호이다.


교사가 흔들리면 학교가 흔들리고, 학교가 흔들리면 학생이 흔들리며, 학생이 흔들리면 국가의 미래가 흔들린다. 교육은 단기 성과로 평가할 수 없는 국가의 장기 자본이다. 교사의 사기가 꺾이고, 교실의 신뢰가 무너지며, 교육활동이 위축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사회 전체로 돌아간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사들이 교육활동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언제든 아동학대 신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교실을 지배하고 있다. 정당한 생활지도와 부당한 체벌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학생의 인권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하고, 교사의 권위가 학생의 존엄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문제는 정당한 교육적 지도까지 무분별하게 의심받고, 신고되고,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으로 전가되는 현실이다.


법과 제도는 일정 부분 개선되었다. 교육부는 2024년 교권보호 제도 개선을 통해 학교 민원을 기관 차원에서 대응하고, 교육활동 침해 민원을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처리하도록 하며, 아동학대 신고 시 교육감 의견서 제출 제도를 법제화하고 법률·재정적 지원을 강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도록 하는 법적 근거와 세부 지침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제도가 있다는 것과 현장이 보호받는다는 것은 다르다. 법률 조항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교사가 곧바로 안심하고 교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교사는 여전히 민원에 민감하고, 학교는 갈등을 피하려 하며, 교육청과 행정기관은 절차적 책임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무고가 밝혀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교사가 감당한 정신적 고통, 사회적 낙인, 수개월의 조사 부담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교권 문제의 본질이다. 교권은 교사의 특권이 아니다. 교권은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공적 권한이다. 교사를 보호하자는 말은 교사를 학생 위에 세우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자는 뜻이다. 교사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 지도도 하지 못하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뒤로 물러서는 교실에서 학생이 건강하게 성장하기는 어렵다.


교육은 사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에는 기준이 필요하고, 질서가 필요하며, 때로는 단호한 지도가 필요하다. 학생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도 함께 배워야 한다. 학생의 권리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태도도 길러져야 한다. 이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교사이다. 그런데 교사가 정당한 지도를 할 수 없다면,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원관리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교권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했다. 이후 이른바 교권보호 관련 법과 제도들이 정비되었지만, 교육활동 침해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교육부도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 보호와 교육활동 방해 행위에 대한 대응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정당한 교육활동과 아동학대의 경계를 더 명확히 해야 한다. 아동학대는 결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정서적 학대의 개념이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게 적용될 경우, 교사의 교육적 지도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법은 약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동시에 정당한 공적 행위도 보호해야 한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관계로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악성 민원에 대한 공적 대응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학부모의 문제 제기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학부모는 교육의 중요한 주체이고, 학교 운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반복적·모욕적·위협적 민원, 사실관계 확인 없이 교사를 압박하는 민원,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수준의 민원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교사 개인이 모든 민원을 직접 감당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학교와 교육청, 법률지원 체계가 함께 대응하는 공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피해 교사에 대한 법률지원과 심리치료, 업무회복 지원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교사가 교육활동 중 발생한 분쟁으로 조사와 소송에 휘말렸을 때, 이를 개인의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공교육을 수행하는 공적 주체이다. 따라서 정당한 교육활동과 관련된 법적 위험은 국가와 교육행정기관이 함께 부담해야 한다. 법률상담, 변호인 지원, 심리상담, 병가와 복귀 지원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넷째, 교권보호위원회와 교육활동 보호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제도가 있어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교권보호위원회가 형식적 절차에 머무르지 않도록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청은 학교 현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적극 개입해야 한다. 교사가 보호받고 있다는 신뢰를 체감할 수 있어야 제도는 살아 있는 제도가 된다.


다섯째, 학부모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날 교육 갈등의 상당 부분은 내 아이만을 위한 교육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학교는 한 아이만을 위한 사적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여러 학생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공적 공동체이다. 내 아이의 권리가 중요하듯, 다른 아이의 학습권도 중요하다. 내 아이의 감정이 중요하듯, 교사의 인격과 교육적 판단도 존중되어야 한다.


학부모는 교사를 감시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교사는 아이의 적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 함께 서 있는 동반자이다. 때로는 학부모가 보지 못하는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때로는 가정에서 미처 잡아주지 못한 생활습관과 사회성을 길러주는 사람이다.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불신하면 아이는 그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반대로 교사와 학부모가 신뢰를 회복하면 아이는 훨씬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여섯째, 교사 자신도 전문성과 윤리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교권 회복은 교사의 책임 회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교사는 학생의 인권과 발달 특성을 이해해야 하고, 시대 변화에 맞는 교육 방법을 익혀야 하며, 말과 태도에서 높은 윤리적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 교사의 권위는 법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문성, 인격, 공정성, 헌신이 함께할 때 사회적 존중은 더욱 깊어진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것이 있다. 학생들은 단지 지식을 주는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준 사람,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잡아준 사람, 잘못했을 때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바로잡아준 사람을 기억한다. 교육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승은 학생의 현재를 넘어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는 스승이 오늘의 교실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스승의날에 꽃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다. 감사의 문자를 보내는 것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감사는 교사가 교육자로서 존중받고, 정당한 교육활동이 보호받으며,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신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스승의 은혜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늘의 교사를 지키고, 내일의 교육을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교사를 존중하는 사회는 결국 학생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교실을 지키는 사회는 미래를 지키는 사회이다. 교육의 권위를 무너뜨리고도 좋은 인재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교사의 마음을 꺾어 놓고도 따뜻한 학교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제 스승의날은 말뿐인 감사의 날을 넘어야 한다. 감사는 제도로 증명되어야 하고, 존중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정당한 교육활동은 보호되어야 하며, 악성 민원은 제어되어야 하고, 교사는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권한을 균형 있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다고 말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 하늘을 무너지지 않게 떠받쳐야 한다. 그것이 학생을 위한 길이고, 학부모를 위한 길이며, 대한민국 교육을 살리는 길이다. 스승의날에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이다.


우리는 과연 스승을 존중하는 사회인가.

이 질문에 부끄럽지 않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스승의날은 진정한 감사의 날이 될 것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6.05.17 18:49 수정 2026.05.17 18:49

RSS피드 기사제공처 : 한국공공정책신문 / 등록기자: 김유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