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의 기다림 끝에 돌아온 ‘고려의 미소’-서산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봉안식 거행

단순한 복제품 넘어 역사 회복의 상징으로

지역 문화유산의 새로운 출발점

17일 오전 10시, 충남 서산의 천년고찰 부석사에서 고려시대 문화유산인 ‘금동관음보살좌상’봉안식이 엄숙하게 거행됐습니다. 이번 봉안식은 왜구의 약탈과 한일 간 문화재소유권 분쟁이라는 긴 역사를 뒤로하고, 불상이 복제본 형태로마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금동관음보살좌상           사진 / 이정우

 

귀중한 고려 불교문화의 정수

이번에 봉안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고려 충숙왕 시기) 서산 도비산 부석사에서 조성된 불상입니다. 불상 내부의 결연문을 통해 제작 시기와 장소가 명확히 확인되는 귀중한 유산으로, 높이 약 50.5cm, 무게 약 38.6kg의 크기에 고려 불교 조형미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왜구 약탈과 반환 논란의 역사

이 불상은 고려 말 왜구의 침탈로 일본 쓰시마(대마도) 간논지(觀音寺)로 옮겨졌으며, 지난 2012년 국내 절도단에 의해 한국으로 반입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후 원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이어졌으나, 2023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본 간논지 측의 취득시효를 인정해 일본의 소유권을 확정 판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불상은 2025년 일본으로 반환되었습니다.

 

실제 불상은 떠났지만, 부석사와 지역사회는 원형 복원 사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본 간논지 측 또한 문화 교류 차원에서 3D 스캔 데이터 제공과 복제 제작을 공식 허가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전통 밀랍주조 및 개금(鍍金) 기법을 활용해 복제본을 완성했습니다.

 

비록 불상 본체의 복원은 완성도가 높으나, 광배와 좌대에 대한 연구와 복원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역 문화유산의 새로운 출발점

오늘 봉안식에는 불교계 인사와 지역 주민, 문화유산 관계자 등 수백 명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3D 데이터를 제공한 일본 관계자들과 간논지 전 주지 다나카 셋코 스님도 자리를 함께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인사말 하시는 부석사 주지 원우스님      사진 / 이정우

 

이번 봉안은 불상 복원을 넘어 지역 문화유산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산 부석사는 앞으로 이 복제본을 중심으로 고려 불교문화와 약탈 문화재 문제를 함께 조명하는 역사·문화 교육 공간으로 거듭날 전망입니다. 

 

 봉안식에 참석한 관계자와 지역 주민들 모습           사진 / 이정우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사건 개요 (시기별)

 

[불상의 기원 및 약탈]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충남 서산 부석사에 봉안됐으며, 고려시대 불자 30명에 의해 제작됐습니다. 높이 50.5㎝, 무게 38.6㎏의 이 불상은 200여 년 뒤인 1527년경 왜구에 의해 약탈(추정)돼 일본 대마도 간논지(관음사)에 보관됩니다. 이후 1973년에는 나가사키현 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2012년 10월 — 절도 및 국내 반입]

2012년 10월 6일경 대마도 관음사에서 불상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사라진 불상 두 개가 한국으로 밀반입됐는데, 이 중 하나가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었습니다. 절도범들이 국내로 밀반입한 불상을 처분하려다 같은 해 12월 경찰에 적발돼 몰수됐습니다. 불상 내부에서 “1330년 서주(충남 서산의 고려 시대 지명) 부석사에 봉안했다”는 결연문이 발견되면서 소유권 논란이 촉발됐습니다. 

 

[2013년 2월 — 부석사 가처분 신청]

정부가 일본에 불상을 반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서산 부석사가 2013년 2월 19일 법원에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로 인해 불상은 대전에 위치한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수장고에 보관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4월 — 유체동산인도 본안소송 제기]

부석사는 2016년 4월 20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유체동산인도소송을 제기하며 본격적인 법적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1월 — 1심 판결: 부석사 승소]

1심 재판부인 대전지방법원 제12민사부는 2017년 1월 26일 "피고는 원고에게 불상을 인도하라"며 부석사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일본 관음사가 불상을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 한 돌려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를 대리한 대전고등검찰청이 즉시 항소하고 강제집행정지를 신청해 부석사로의 인도가 중단됐습니다. 

 

[2018~2022년 — 항소심 장기화]

항소심 재판부는 2018년 6월 '불상을 복제해 부석사가 보관하고 원본은 관음사에 돌려주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에는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일본 관음사 측이 2심 재판에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해 적극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했고, 불상이 가짜라는 진위 논란도 재점화됐습니다. 

 

[2023년 2월 — 2심 판결: 일본 소유권 인정]

대전고등법원 제1민사부는 2023년 2월 1일 항소심 최종 선고에서 1심을 뒤집고 일본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불상이 서주 부석사에서 조성됐고 왜구에 의해 약탈됐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관음사가 1953년 법인 설립일부터 2012년 밀반입 때까지 약 60년간 불상을 보관해 한일 양국 민법의 '20년 취득시효'를 넘겼다고 판단했습니다. 

[2023년 10월 — 대법원 최종 판결: 일본 소유권 확정]

대법원 1부는 2023년 10월 26일 "불상이 제작·봉안된 고려시대 사찰 서주 부석사와 현재 서산 부석사는 동일한 권리주체로 볼 수 있지만, 일본 관음사가 불상을 시효취득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원고는 이 사건 불상의 소유권을 상실하였다"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이로써 장장 10년에 걸친 법적 분쟁이 일본 측의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2024년 9월 — 반환 합의 및 친견법회 결정]

2024년 9월 부석사는 일본에 반환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했고, 반환 전 부석사에서 100일 동안 법회를 여는 '친견법회'를 진행하기로 양측이 합의했습니다. 

 

[2025년 1월~5월 — 647년 만의 귀향과 친견법회]

불상은 2025년 1월 25일부터 5월 5일 부처님오신날까지 100일 동안 서산 부석사 설법전에 모셔져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친견법회 기간 동안 전국에서 수만명이 찾았고, '정부 환수 노력 촉구 서명운동'에 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2025년 5월 11일 — 일본 반환]

부석사에서 봉송법회를 마친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인천공항을 출발해 일본 후쿠오카를 거쳐 대마도로 향했으며, 절도범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지 12년 7개월 만에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불상은 원래 있던 관음사에 잠시 머문 뒤 대마도박물관에 보관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5년 7월 — 복제본 제작 합의]

일본 관음사가 복제본 제작에 동의하면서 2025년 7월 6일 다나카 세코 전 관음사 주지가 부석사를 방문해 3D 스캔 파일과 복제동의서를 전달했습니다. 

작성 2026.05.17 13:25 수정 2026.05.1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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