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 반 만의 베이징, 그 미소 뒤에 흐른 강(江)을 따라서
지구촌이 숨을 죽인 이틀이 있었다. 2026년 5월 14일과 15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 옆 인민대회당이 다시 한번 세계의 무게중심으로 솟아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확히 8년 6개월 만에 중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국빈 만찬으로 그를 맞이했고, 두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미소의 등 뒤에는, 8년이라는 세월이 빚어 놓은 거대한 강물이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칼럼니스트의 시선으로 그 강의 물길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거꾸로 흐른 8년, 무엇이 무너졌나
트럼프가 마지막으로 베이징을 다녀간 2017년 11월 이후, 세계의 풍경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구촌을 휩쓸고 지나갔다. 미·중 사이에는 관세 전쟁의 포연이 짙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유럽의 평화는 길게 찢어졌다. 미군은 황급히 아프가니스탄을 떠났고,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반도체 대란이 일상을 빈틈없이 바짝 좼다. 영국은 끝내 유럽연합과 결별했다. 시리아에서는 하야트타흐리르 알샴(HTS)이 권력을 잡았고,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는 ‘12일 전쟁’이라 불리는 단기 충돌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리고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입성한 직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격적으로 이란을 향해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고, 국제에너지기구가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위기’라 부를 만큼 유가가 요동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5년간 쌓아 올린 국제 질서가, 마치 사막의 모래성처럼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풍경이었다.
대표단의 면면이 말해 주는 진심
흥미로운 건, 트럼프가 동행시킨 사람들의 이름표이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함께, 애플의 팀 쿡,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엔비디아의 젠슨 황까지 미국 첨단 산업의 정점에 선 인물들이 비행기에 올랐다. ‘안보의 입’과 ‘돈의 손’을 한 자리에 모은 셈이다. 단순한 외교 의례가 아니라, 잃어버린 균형을 다시 사고 싶다는 다급한 신호였다. 협상 테이블에는 무역과 인공지능, 희토류와 농산물이 동시에 올라왔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보잉 여객기 200대 구매에 합의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고, 중국은 회담을 앞두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다시 허용하는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나 희토류 협정도, 인공지능 공동 투자안도 끝내 서명되지 못했다. 화려한 의례 속에서 알맹이는 빠져 있었다.
시진핑의 ‘붉은 선’, 그리고 트럼프의 침묵
회담의 진짜 주인공은 대만이었다. 시진핑은 첫날부터 ‘대만 문제는 미·중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분명히 못 박았다. 그의 표현은 외교 언어치고는 이례적으로 날카로웠다. “제대로 다루면 관계는 유지된다. 그러나 잘못 다루면, 양국은 충돌하고, 심지어 정면으로 부딪칠 것이다.” 한 단어 한 단어가 비수처럼 박혔다. 트럼프는 14억 달러 규모의 대만 무기 패키지를 의회에 보내는 일정을 이미 늦춰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백악관이 회담 직후 내놓은 공식 발표문에는, 놀랍게도 ‘대만’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침묵 자체가 메시지였다. 어떤 외교에서는,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보다 훨씬 무겁다.
“위대한 지도자”라는 한마디의 무게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트럼프가 시진핑을 향해 건넨 이 한 문장은, 팬데믹 시절 그가 외쳤던 “차이나 바이러스”와 도무지 같은 입에서 나온 말 같지 않았다. 무엇이 바뀐 것일까. 지역 전문가들은 ‘세계 속에서 점점 좁아진 미국의 운신 폭’을 그 배경으로 짚는다. 베네수엘라 작전, 4월의 전방위 관세 전쟁, 그리고 이란을 향한 군사 행동까지 - 모두가 미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동맹조차 멀어지게 만든 결정들이었다. 결국 트럼프는 ‘숨 쉴 공간’을 찾아 베이징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호르무즈를 다시 열기 위해서는, 이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중국이 등을 떠밀어 주어야 한다. ‘위대한 지도자’라는 호칭은 외교적 감탄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는 서툰 손짓이었던 셈이다.
누가 이긴 회담이었나
겉으로는 두 사람 다 웃었다. 그러나 속으로 시진핑은 더 깊이 웃었을 것이다. 이란 제재와 호르무즈 봉쇄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이었다. 중국은 도리어 “미국은 모두를 불태우지만, 우리는 안정적이고 예측이 가능한 파트너”라는 이미지를 거저 얻은 셈이다. 트럼프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큰 전리품을 들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너무 적게 얻으면 안으로 분노할 것이고, 너무 크게 이기면 시진핑의 체면을 깎을 것이다. 그래서 베이징은 그를 ‘적당히 만족한 손님’으로 만들어 보냈다. 두 강대국은 ‘전략적 안정의 건설적 관계’라는 모호한 새 표어에 합의했지만, 대만도 이란도 호르무즈도 해법 없이 그대로 남았다. 외형은 화해, 내실은 휴전 - 그것이 이번 회담의 진짜 색깔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칼럼니스트의 작은 묵상
두 거인이 악수하는 사진 속, 그들의 어깨 위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얼굴이 얹혀 있었다. 호르무즈 항로가 닫혀 일자리를 잃은 이란의 어부, 유가가 치솟아 난로를 못 켜는 유럽의 노인, 대만 해협의 어린 학생, 가자 지구의 무너진 흙더미 옆에서 빵 한 조각을 쥐고 있는 아이의 손. 정상 회담이라는 거대한 무대의 빛은 늘 그 작은 손들 위로 떨어진다. 중동 땅을 오래 걸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는 안다. 강대국의 셈법이 화려할수록, 가장 약한 자의 저녁상은 더 작아진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외교의 승패를 묻는 대신 부디 그 두 사람의 다음 악수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깨들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