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AI와 박사학위 (3) - 시장과 사회가 알아듣도록 전문성을 표현하라

▲박동명/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한국공공정책신문은 박동명 법학박사의 3회 연재 칼럼을 통해 AI 시대 박사학위의 의미와 한국사회 고급인재 활용 문제를 진단한다. 이번 연재는 박사학위 2만 명 시대의 현실, AI 시대 지식과 질문의 관계, 시장과 사회가 알아듣는 전문성의 번역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박사학위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한다. 박동명 박사는 노동법을 전공한 법학박사로서 지방의회 의정활동, 공공정책 평가, 인공지능 활용 의정교육 분야에서 활동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박사학위의 미래를 공공정책과 사회적 활용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지난 두 차례의 칼럼에서 한국 사회가 맞이한 박사학위 2만 명 시대의 현실과, 인공지능 시대에 박사학위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 칼럼에서는 박사학위의 희소성이 약화되고, 학위와 노동시장 사이의 불일치가 커지고 있다는 문제를 짚었다. 두 번째 칼럼에서는 AI 시대의 박사는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움직이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세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하는 박사는 자신의 전문성을 어떻게 사회적 가치로 전환할 것인가.

 

전문성을 시장과 기업공공정책의 언어로 바꿔라

 

여기서 말하는 번역은 단순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박사가 가진 학문적 지식과 전문성을 사회와 시장과 기업, 그리고 공공정책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다. 아무리 깊은 지식이라도 사회가 알아듣지 못하면 고립된다. 아무리 정교한 이론이라도 기업의 의사결정과 연결되지 못하면 활용되기 어렵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라도 시민의 삶과 정책 현장의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면 사회적 힘을 갖기 어렵다.

 

박사의 위기는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은 넘쳐난다. 문제는 그 지식이 현실 속에서 작동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학문적 언어 안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시장의 언어로 설명되지 못하고, 사회의 문제 해결과 연결되지 못하며, 기업과 행정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되지 못할 때 전문성은 힘을 잃는다.

 

이제 박사는 전문성을 소유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문성을 작동시켜야 한다.

전문성을 작동시킨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이 누구에게, 어떤 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유용한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무엇을 전공했다가 아니라 내 전공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떤 논문을 썼다가 아니라 내 연구는 사회와 기업과 정책 현장의 어떤 의사결정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은 학위를 구매하지 않는다. 기업은 호칭을 채용하지 않는다. 사회도 명함만으로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장과 기업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학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학위를 가진 사람이 던지는 질문과 그 질문이 만들어내는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다.

 

이 점에서 박사학위자는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학문을 낮추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학문의 생명력을 현실 속에서 되살리는 일이다. 깊은 지식이 현실과 만나지 못하면 권위에 머물지만, 현실의 문제를 움직이면 가치가 된다.

 

예컨대 법학 박사의 전문성은 법조문과 판례 해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론 법리 해석은 법학의 기본이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와 기업은 법학자에게 더 넓은 역할을 요구한다. 법학의 언어는 이제 위험관리, 규제 설계, 컴플라이언스, 데이터 거버넌스, 인공지능 윤리, 개인정보 보호, ESG 경영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법학 지식은 분쟁이 발생한 뒤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분쟁을 예방하고 제도를 설계하며 조직의 신뢰를 높이는 전략적 자산이 되어야 한다.

 

행정학 박사의 전문성도 마찬가지다. 행정학은 조직, 제도, 정책, 재정, 거버넌스를 연구한다. 그러나 그 언어가 학문 내부에만 머물면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 행정학의 언어는 정책성과, 예산 효율성, 주민 편익, 공공서비스 혁신, 지방정부 역량 강화, 행정사무감사, 데이터 기반 정책평가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론 설명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바꾸는 정책 설계 능력이다.

 

경영학 박사의 전문성 역시 논문 속 개념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전략, 마케팅, 조직이론, 인사관리, 재무관리의 지식은 기업 현장에서 시장 기회, 고객 문제 해결, 조직 혁신, 성장 모델, 리스크 관리, 지속가능 경영의 언어로 전환되어야 한다. 기업은 더 이상 지식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기업은 불확실한 시장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어떤 위험을 먼저 보아야 하는지, 어떤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도 다르지 않다. 인문학은 흔히 시장성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하고, 가치를 해석하며, 공동체의 의미를 묻는 능력은 AI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조직문화, 리더십, 사회갈등, 윤리, 시민성, 공동체 회복은 모두 인문사회적 통찰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그 통찰이 현실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문학은 더 이상 책장 속 교양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간과 조직, 사회와 기술의 관계를 해석하는 실천적 지혜가 되어야 한다.

 

교육학 박사의 전문성도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 교육학은 학교교육에만 갇힐 수 없다. 오늘의 기업과 공공기관, 지방정부와 시민사회는 모두 학습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교육학의 언어는 인재 양성, 역량 개발, 평생학습, 조직학습, 직무 재교육, AI 리터러시, 지역인재 육성의 언어로 확장되어야 한다. 저출생과 고령화, 산업구조 변화와 디지털 전환 속에서 교육학의 역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결국 전공의 문제가 아니다. 번역의 문제이다. 어떤 전공이든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뀌지 않으면 고립된다. 반대로 어떤 전공이든 현실의 문제 해결과 연결되면 강력한 사회적 가치를 갖는다.

 

박사학위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전문성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나는 법학을 전공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직면한 규제 리스크를 진단하고, 제도적 해법을 설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행정학을 전공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지방정부의 정책성과를 분석하고, 예산과 행정사무감사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조직의 성장 정체 원인을 분석하고, 시장 변화에 맞는 전략적 전환을 설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전문성의 번역이다.

 

번역된 전문성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문제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박사의 전문성은 전공명으로 설명될 때보다 문제명으로 설명될 때 더 강해진다. 사회와 기업은 당신의 전공이 무엇인가보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지역소멸, 저출생, 청년 일자리, 지방재정, 규제개혁, 조직갈등, AI 윤리, 데이터 거버넌스, 공공서비스 혁신과 같은 현실의 문제 속에서 자신의 지식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둘째, 성과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학문은 과정과 논증을 중시한다. 그러나 현장은 결과와 변화를 묻는다. 연구가 어떤 정책성과를 높일 수 있는지, 어떤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 어떤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지, 어떤 시민 편익을 만들 수 있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성과의 언어로 말한다고 해서 학문성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문이 현실에서 검증되는 통로가 열린다.

 

셋째, 협업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오늘의 문제는 단일 전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저출생은 경제 문제이자 주거 문제이고, 노동 문제이자 문화 문제이며, 교육 문제이자 젠더 문제이다. 지역소멸은 인구 문제이면서 산업 문제이고, 행정 문제이면서 복지 문제이며, 교통 문제이면서 공동체 문제이다. 박사는 자신의 전공을 절대화하기보다 다른 분야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성은 폐쇄될 때 약해지고, 연결될 때 강해진다.

 

인공지능은 이 번역의 과정을 더욱 빠르게 요구하고 있다. AI가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통계를 분석하는 시대에는 단순한 지식 제공자로서의 박사는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진다. 그러나 AI를 활용하여 더 좋은 질문을 만들고, 복잡한 문제를 구조화하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박사는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AI 시대의 박사는 AI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AI가 정리한 정보를 어떤 방향으로 해석할 것인지 판단하는 사람이다. AI가 만든 답의 전제를 검토하고, 빠진 관점을 찾아내며, 사회적 가치와 윤리적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이다. AI가 도구라면, 박사는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국가와 대학,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박사학위자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박사급 인재를 양성하는 사회라면, 그 인재가 현실 속에서 기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은 박사과정을 논문 생산 구조에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 논문 작성 능력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박사과정에는 문제 정의, 정책 설계, 데이터 분석, AI 활용, 현장 연구, 연구성과의 사회적 소통, 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전문성 번역 훈련이 포함되어야 한다. 학문 내부의 완성도와 사회적 활용 가능성을 함께 길러야 한다.

 

정부는 박사급 인재를 국가혁신과 공공문제 해결에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지방소멸, 고령화, 기후위기, 재정위기, 디지털 전환, AI 행정혁신과 같은 문제는 복합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과 시민사회가 박사급 인재를 활용할 수 있는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정책분석, 조례 검토, 예산 평가, 행정사무감사, 지역 데이터 분석 영역에서 박사급 전문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박사학위자를 과잉학력자라는 낡은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제대로 활용된 박사는 복잡한 문제를 구조화하고, 새로운 질문을 만들며, 조직이 보지 못한 위험과 기회를 발견하는 전략적 인재가 될 수 있다. 다만 박사 역시 기업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전문성을 설명해야 한다. 기업과 박사 모두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지방사회에서도 박사급 인재의 역할은 커져야 한다. 지역은 지금 인구 감소, 산업 기반 약화, 청년 유출, 재정 압박, 복지 수요 증가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는 단순 행정 집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역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주민의 삶을 해석하며, 정책의 효과를 검증하고, 미래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고급 지식 인재가 필요하다. 지역의 박사들이 지역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박사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박사는 더 이상 학위증 뒤에 숨을 수 없다. “박사입니다라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바꿀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 자신의 전공을 현실의 문제와 연결하지 못한다면, 학위는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그 번역된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박사학위는 다시 힘을 갖는다.

 

박사는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움직이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사회와 시장과 기업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질문만 있고 번역이 없으면 현실을 움직이기 어렵다. 번역만 있고 질문이 없으면 깊이가 부족하다. AI 시대의 박사는 깊은 질문과 정확한 번역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이제 박사학위의 가치는 새로운 기준 위에 세워지고 있다.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가.

얼마나 어려운 개념을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개념을 현실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논문을 썼는가가 아니라, 그 연구가 사회와 기업과 공공정책의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가.

 

박사학위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 낡은 박사관의 시대가 끝나고 있을 뿐이다.

지식을 소유한 박사는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을 움직이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사회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박사는 쉽게 대체될 수 없다.

 

미래의 박사는 책상 위의 지식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장의 문제를 읽고, AI를 도구로 활용하며,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적 언어로 전환하는 실천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그때 박사학위는 한 장의 증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를 묻고 현실의 변화를 이끄는 지적 책임의 이름이 될 것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6.05.11 00:39 수정 2026.05.1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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