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백악이무소성(塗白堊而無所成-흰 회를 덧칠했지만 이루어진 것은 없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비자(韓非子)의 냉철한 안목이 담긴 이 비유는 본래 법과 술(術)이라는 통치 철학 없이 겉면만 화려하게 분칠한 정치 행태를 꼬집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말은 우리 사회 '신분 세탁'의 허상을 낱낱이 파헤치는 직설이 됩니다. 겉면의 색칠을 바꾼다고 해서 그 안의 비루한 알맹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본성, 강산이 바뀌어도 그대로다
중국 명나라 빙몽룡(馮夢龍)의 성세항언(醒世恒言)에는 '강산이개, 품성난이(江山易改, 稟性難移)'라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눈에 보이는 강산의 모습은 세월에 따라 변할지언정, 사람의 타고난 기질과 본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개탄 섞인 진리입니다. 서양에서도 '표범은 제 반점을 지울 수 없다(A leopard cannot change its spots)'고 말하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내면적 행동 패턴과 사고방식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경고해 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환경이 바뀌고 지위가 달라지면 사람도 변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행적을 지우고 새로운 신분을 덧씌우는 행위, 즉 '신분 세탁'은 성찰을 통한 변화가 아니라 단순히 '도백악(塗白堊)'—분칠을 고쳐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한번 변절한 자가 두 번, 세 번 변절하는 것은 그 본성의 뿌리가 결코 흔들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변신의 기술: 친일에서 친미로
이러한 신분 세탁의 가장 뼈아픈 역사는 해방 이후의 혼란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민족을 배반했던 친일 세력들은 척결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발 빠르게 '친미(親美)'라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악행을 가리고, 남한 정부의 관료가 되어 기득권을 유지한 이들의 행태는 우리 근현대사의 커다란 오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 대중이 과거를 잊으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망각의 시대가 아닙니다. 모든 증거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저장소에 켜켜이 쌓여 있는 투명한 시대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지위와 환경은 변했을지 모르나, 그들이 취했던 기회주의적 사고방식과 본성은 역사라는 거울 앞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개과천선의 길: 욕심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만약 과거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고자 한다면, 그 행보는 달라야 합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화려한 조명을 받는 '선출직'에 나서서 권력을 탐하는 것은 또 다른 탐욕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진정한 반성이 전제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 써야 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임명직'이나 행정의 실무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하며 지난날의 과오를 씻어내는 것이 순리입니다. 화려한 분칠로 자신을 가리기보다는, 내면의 '법과 술'을 바로 세워 실질적인 선을 행하는 것이 신분 세탁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겉모습을 바꾸는 것은 쉽지만, 영혼을 씻어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적습난개(積習難改)'라는 말처럼 오랜 습관과 본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겉면의 화려한 분칠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칠해온 '백악(白堊)' 아래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쌓여 있는 기록과 변하지 않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