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보의 일히일비(5) - 사랑의 징표, '의도한 건망증'

“죽이든 살리든 주께 맡깁니다”... 어머니의 눈물 젖은 기도가 일궈낸 ‘내려놓음’

분노와 후회를 덮는 ‘의도한 건망증’, 사랑을 지속하게 하는 관계의 핵심 기술

조건 없는 순종과 신뢰의 정수, 아브라함과 이삭이 보여준 본질적인 사랑의 형태

 

 

אָהַב (아하브) - 사랑하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자식만큼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뢰를 떠나서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을까? 물론 이삭이 자라면서 부모를 전혀 괴롭히지 않았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부모 속을 전혀, 단 한 번도 안 썩힌 자식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목사로 거룩한 척 살아가는 나부터가 얼마나 부모 속을 많이 썩인 자식인 줄 알게 되면 다들 입에 거품을 물거다. 얼만큼을 상상하건 그 이상일 테니까.

 

오죽하면 내 어머니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런 기도를 해 오셨다고 한다. "주님, 동보는 제가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오니 하나님께서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해주시옵소서."라고 말이다. 기도라 그렇지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기'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포기’란 아예 내던지듯 버리는 '유기'와는 다르다. 포기하지 않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그 초토화의 상황 앞에서 어머니는 눈물의 심정으로 '내려놓음'을 기도하셨다. 그리고 나로 인해 가슴 아팠던 그 수많은 일들을 의도적으로 잊으신 듯하다.

 

이삭이 나만큼 문제아였을리는 없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식이라는 존재는 기쁨과 후회와 분노와 눈물 속에서 사랑이라는 싹을 틔우는 존재라 본다. 나 역시 자식이 있다. 그것도 셋이나 있다. 때론 화가 나고, 때론 후회되기도 하고, 때론 눈물 나기도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기쁨과 환희를 주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기쁨과 환희 때문에 후회와 분노와 눈물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아니,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려 한다.

 

부모 자식의 관계이든 연인의 관계이든 혹은 부부의 관계이든 사랑하는 관계에는 이 같은 '의도한 건망증'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의도한 건망증'이 없다면, 자꾸 지난 일들을 들춰내며 서로가 고통 속에서 시간을 허비한다면 그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만약 사랑한다면, 종종 그 징표로 '의도한 건망증'을 확인하길 바란다. 물론 '아무때나'는 절대 아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5.08 20:50 수정 2026.05.0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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