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차정 의사 생가 입구 -약산 소식지
1910년 5월 7일은 박차정 의사가 태어난 날이다. 박차정 의사는 1924년 14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조선소녀동맹 동래지부에서 독립 활동을 했고, 근우회 활동 등으로 투옥과 고문을 거치며 더 단단해진 인물이다. 그리고 1931년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과 결혼했고,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일제와 무장투쟁 중 1939년 강서성 곤륜산 전투 중 맞은 총알로 인한 부상이 원인이 되어 1944년 사망했다. 그녀의 고향 부산에는 그녀의 생가가 있고, 몇 년 전부터 개방 중이다. 지도에는 표시되었지만, 거주하는 분의 사정으로 개방되지 못하다가 지역 구청과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개방이 되었고, 입구에 기리는 공원과 안내판 등 역사 유적지다운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입구에 안내판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박차정 의사만 독립운동한 것이 아니라 집안의 거의 모든 사람이 독립운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차정 의사의 오빠인 박문희와 박문호도 독립운동했다. 둘째 오빠는 의열단 단원으로 용정의 3 · 13 항일시위운동을 하다가 무차별 진압 중 총격으로 사망했다. 동생 박문하도 동래일신여자학교 재학 중이던 박차정 의사가 학생들의 집을 순방하며 비밀 연락을 다닐 때 누나 손을 잡고 같이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해방 후 민중병원을 개원하여 인술을 펼친 의사로 알려졌다고 한다.
방계 혈통으로 국어학자 김두봉과 교토 제국대학 출신 독립운동가 박영출이 있다. 김두봉은 주시경이 인정했던 제자 중 하나로 조선어 강습원, 배제학교, 신한청년당, 민족혁명당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박영출은 기장 출신 독립운동가로 일제 강점기 말에도 국내에서 독립운동했다. 1936년 이재유·이관술 등의 동지를 밀고하도록 일제 경찰은 모진 고문을 했고 결국 옥사하셨다.
박차정 의사 태어난 날을 맞아 방문했을 때 문화해설사분이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인자한 할머니 같은 분으로 역사 교육을 전공했고, 잠깐이지만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셨다고 했다. 이이화 역사학자를 존경하는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가진 분으로 역사에 관해 이론적으로도 잘 알고 계셨다. 게다가 6.25 전쟁 중 태어난 분이라 살아 있는 역사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경험도 많으셨다. 본인이 겪은 일도 있지만, 본인의 아버지와 가까운 친척들이 겪었던 일도 어릴 때 들어서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분을 만날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역사는 책으로 배울 수 있지만, 직접 겪은 사람에게 듣는 것만큼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어떤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살아온 분들이 있다. 그냥 자기 삶에만 관심 있고 내 주변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지만, 주변 사람과 상황에 날카롭게 촉을 세우고 겪어내며 살아 온 분들이 있다. 그렇게 살아온 분들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다.
그냥 어릴 때 뭐 먹었고, 뭐가 있었고 정도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맥락까지 다 이야기해 줄 수 있다. 그때는 상황이 이래서 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체 그런 분들이 삶의 지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살면서 힘든 것 중 하나가 자기 객관화이다. 인간 대부분은 시대에 휩쓸려 가면서 살고, 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 잘 모르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렇게 휩쓸려 가도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 시대에 맞추어 어쩔 수 없이 살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러하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성숙하고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오늘 만난 문화관광해설사는 진짜 보수였다. 가짜 보수가 진짜 보수 행세를 한국에서 보기 드문 분이었다. 이분이 한 말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이 젊은 세대가 구사하는 단어를 잘 이해할 수 없는데 물어본다고 하셨다. 모른다고 부끄러워하고 윽박지르는 나이만 먹은 노인이 아니라, 배워가는 어른이셨다.
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국어사전에 없는데 내가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한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한 보수이다. 한국어를 외래어로 오염시키는 이들은 한국 보수가 아니다. 영어를 남발하는 사람은 미국 보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 찬양하는 사람도 일본 보수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국어사전은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말을 정리해서 모아놓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 주시경 선생님을 비롯한 조선어학회 많은 회원이 ‘조선말 큰사전’이라는 한국어 사전을 만들다가 고초를 당하셨다. 말은 얼이라는 생각에서 그 고초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버티셨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렵게 지켜낸 우리말을 쉽게 파괴하는 지식인층에 대해서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분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또 문화해설 분은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보수로써 가진 올바른 생각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인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유튜브에 좋은 정보도 있지만, 판단력이 약하면 휘둘릴 수 있는 왜곡된 정보가 많다. 보수이고 제대로 배우신 분이라 이런 점을 잘 파악하고 계셨다. 자기 판단이 분명한 사람은 유튜브 등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의 질을 알아내는 통찰력이 있다.
그분이 보수라 생각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유연성이다. 사람은 하나의 생각이 자리를 잡으면 그 생각만을 고집하기 쉽고 잘 바뀌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더 그러한데, 내 생각이 늘 옳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다. 제대로 된 보수들은 잘 알기에 유연할 수 있다. 핵심과 기본 생각을 알기에 시대에 따라 그 생각을 변화된 시대에 맞출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가짜 보수라고 생각한다.
오늘 만난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성함은 김경미님이다. 모두 28분이 자원봉사활동 해서 꼭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회가 되어서 만난다면 운이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인자한 할머니가 손녀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 주듯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줄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날 좋은 5월 볕 좋은 박차정 의사 생가에 방문한 기회를 한 번 방문해주길 바라면서 마무리한다.
성남문화재단에서 만든 박차정 의사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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