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린학습자들의 부모들의 자살상담이 늘어나고 있다.
"느린 학생은 아무 지원이 없는 걸까요?“
부모의 잘못일까요? 학교가 아이를 놀리고 등교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경계선 지능(IQ 71~84)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지적장애 기준인 IQ 70에 단 한 발짝 걸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아이들은 어떤 공적 지원 체계에도 온전히 들어가지 못한 채 교실 한켠에서 표정 없이 앉아 있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집단따돌림이나 등교거부가 일어나는 현실이다. 그나마 가정형편이 좋은 학생들은 대안학교나 가정 사교육 개인교사로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인식생명교육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숫자로 본 현실 — 78만 명, 보이지 않는 아이들
느린학습자란 IQ 71~84 범위의 경계선 지능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국회입법조사처(2023년 7월)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약 13.6%가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초중고 학생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78만 명이다. 교실 30명 기준으로 한 반에 평균 4명꼴이다. 내 아이 옆자리, 혹은 내 아이가 바로 그 아이일 수 있다.
이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한 학습 부진이 아니다. 추상적 개념 이해의 어려움, 또래 관계에서의 소외, 반복적인 실패로 인한 자존감 붕괴가 학령기 내내 이어진다. 그러나 지적장애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특수교육 대상에서 제외되고, 일반 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인지 발달 능력이 떨어져 학습이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지적장애로는 분류되지 않아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엄청난수의 학생들이 이런문제를 격고 있다.
■대안을 찾아 나선 부모들 —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청구서
공교육이 외면한 자리를 메우는 것은 결국 민간 대안학교다. 그런데 그 문앞에 서면 부모들은 또 다른 현실에 직면한다. 이미지에서 확인되는 한 대안학교의 비용 구조는 이렇다.
• 출자금 300만~500만원— 입학 시 1회 납부
• 입학금 80만~100만원 — 입학 시 1회 납부
• 발전기부금 500만 원— 입학 시 1회 납부
입학 첫날 최소 880만 원이상이 들어가야 그나마 입학이 가능하다. 여기에 매달 납부하는 수업료는 별도다. 출자금은 분할 납부가 가능하다고 안내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배려'로 들리겠는가. 자녀가 느린학습자임을 뒤늦게 알게 된 가정,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에게 이 금액은 그야말로 이중의 고통이다. 아이의 느린 속도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을 해결하는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사립 대안학교의 연간 학비가 1,000만 원을 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사립 대안학교 중 비인가된 학교의 경우 학비나 기숙사비 등이 상당히 비싸다. 이것이 현실이다. 공교육이 할 수 없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니 비용이 든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는 타당하다. 문제는, 왜 그 비용을 온전히 가정이 떠안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공교육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경기도교육청은 2024년 「경기도교육청 경계선지능 학생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경계선지능 학생 지도 워킹그룹 운영 및 연수를 1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읽기 곤란 학생 673명에게 진단 및 학습 바우처를 지원하는 등 변화의 싹을 보이고 있다. 경계선 지능 선별 체크리스트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조례 하나와 연수 108명으로 78만 명의 아이들을 품기에는 턱없이 좁다. 경기도 한 지역의 조례로 끝날 일이 아니라, 전국 단위의 공교육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한 의원의 '경계선지능 지원법' 발의를 통해 조기진단·직업훈련·취업·자립생활 등을 지원할 근거를 마련했으며, 느린학습자들을 위한 공교육 체계를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법 제정은 첫 단추이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학교 설립과 운영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공립 느린학습자 대안학교 — 왜 지금 당장 필요한가
첫째,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교육권의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느린 속도로 배우는 아이도, 그 아이의 속도에 맞는 교육을 받을 헌법적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실현하는 데 880만 원의 입학 비용이 든다면, 그것은 교육권의 침해다.
둘째, 지금 방치하면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크다.
경계선 지능 아이가 학령기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 학업 포기, 사회 부적응, 범죄 피해, 빈곤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조기 개입할수록 삶의 질이 현저히 나아진다는 것은 연구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미래에 치르게 된다.
셋째, 공립 대안학교의 모델은 이미 있다.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일부 시도교육청은 공립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모델을 느린학습자 전용으로 확장하는 것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의지의 문제다.
■이런 학교가 필요하다
공립 느린학습자 대안학교는 다음을 갖추어야 한다.
·무상 교육— 출자금, 입학금, 발전기금 없이 공교육 비용 체계로 운영한다. 경제적 형편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지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
·소규모 학급— 학급당 8~10명 이하로 구성하여 개별 맞춤 지도가 가능하게 한다. 30명이 넘는 일반 교실에서 느린학습자는 보이지 않는다.
·전문 교원 배치—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을 연결하는 전문 교원을 양성하고 배치한다. 현재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 아이들을 지도할 체계적인 교원 전문성이 없다.
·지역 접근성 보장— 서울·수도권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각 시에 1군데 정도는 공립 대안학교설치를 의무화 해야한다.아이도, 농촌 어느 지역의 아이도 차로 30분 이내에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어야 한다.
·심리·정서 지원 병행— 학습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복된 실패로 깊어진 자존감의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정서 지원이 교육 과정의 일부여야 한다.
■느린 것은 잘못이 아니다
모든 아이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란다. 문제는 속도가 다른 아이에게 같은 속도를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면 돈을 내야 하는 구조다.
78만 명의 아이들이 오늘도 교실에서 조용히 뒤처지고 있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오늘도 대안학교 홈페이지의 학비 안내 페이지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공교육 안에 느린학습자의 자리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78만 명의 아이들에게 빚진 의무다.
필자: 김보미 (대한인식생명교육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