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정세가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유럽 핵심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에 맡겨둔 금 자산을 둘러싸고 이례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자산 재배치를 넘어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 변화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국제 금융권에서 제기된다.
최근 프랑스 중앙은행은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지하 금고에 보관해 온 금 129톤을 모두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 규모가 워낙 컸던 만큼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수개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는 확보한 자금을 다시 유럽 내 금 매입에 투입했고, 해당 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인근 지하 저장시설로 옮겨졌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자산 운용 전략처럼 보이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 사이의 긴장 관계를 감안하면 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 관세 정책 강화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재조정 가능성을 거론하며 유럽 동맹국들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왔다. 특히 중동 지역 군사 충돌 과정에서 일부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 지원 요청과 기지 협조 요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백악관과 유럽 주요국 사이의 갈등은 더욱 노골화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프랑스가 미국 내 보관 자산을 사실상 정리한 배경에는 미국의 금융 제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국제 분쟁 과정에서 특정 국가 자산을 동결한 사례가 반복되면서 유럽 내부에서도 “언제든 자산 통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발 움직임은 곧바로 독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은 현재 미국에 약 1,236톤 규모의 금을 예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프랑스의 약 10배 수준이며 평가 금액만 수백조 원 규모에 달한다. 독일에서는 이미 지난 2010년대 초반 미국 내 금 보관 실태 점검 과정에서 투명성 부족 문제가 제기되며 “독일 금을 독일로 돌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진 바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유럽 압박 기조가 강화되면서 독일 내 불안감도 다시 커지고 있다. 일부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는 미국 내 금 보관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등장했고, 극단적으로는 아시아 지역으로 금 보관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금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 각국이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하면 달러 중심 국제 금융 질서에도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금은 안전자산이며 국가 신뢰와 통화 체제 안정성을 상징하는 핵심 자산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주요 국가들이 미국 대신 자국 또는 제3국 보관을 선택하는 흐름은 글로벌 패권 질서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의 경우 한국은행 보유 금 약 100톤이 영국 영란은행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논란에서 직접적인 영향권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국제 금융 환경 변화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의 자산 운용 전략에도 변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흐름은 글로벌 자산 안전성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의 금 이동은 미국 중심 금융 질서에 대한 유럽의 경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독일까지 금 귀환 논의에 가세할 경우 국제 금융 시장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다. 중동 전쟁과 미·유럽 갈등이 맞물린 현재 상황에서 ‘금의 귀환’은 글로벌 패권 변화의 전조로 읽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