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계약이 해제되면 수분양자는 당연히 납입한 분양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소송을 진행해 보면 뜻밖의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신탁사를 상대로 분양대금 반환청구를 하면 "당신은 이미 중도금대출 때 그 채권을 은행에 넘겼으니 우리에게 청구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고, 반대로 은행에서는 "계약이 해제됐더라도 대출원리금은 여전히 갚아야 한다"고 청구합니다.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양쪽에서 동시에 벽에 부딪히는 격입니다. 이 칼럼에서는 이 두 가지 주장이 법리적으로 어떻게 성립하는지, 그리고 수분양자가 현실적으로 어떤 대응 전략을 가져가야 하는지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사진: 법무법인 휘명 박휘영 대표변호사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가 — 중도금대출의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생활형숙박시설 등의 분양 사업에서 수분양자는 통상 중도금을 자력으로 납부하지 않습니다. 시행사 또는 신탁사가 지정하는 금융기관(대출기관)으로부터 중도금대출을 일괄 취급하고, 수분양자는 그 대출금으로 중도금을 납부하는 구조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분양자는 대출기관에 다음의 담보를 제공하게 됩니다. 바로 "장래 분양계약이 해제될 경우 발생하는 분양대금(계약금·중도금) 반환채권"을 은행에 양도(양도담보)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반환채권의 채권양도입니다. 민법 제450조는 지명채권을 양도하려면 채무자(여기서는 신탁사 또는 시행사)에게 통지하거나 채무자의 승낙을 받아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분양계약 체결과 동시에 확정일자 있는 증서로 양도 통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대항요건이 갖추어진 이상, 반환채권은 외부적으로 은행에 귀속되어 수분양자가 신탁사에 직접 반환청구를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가단72028, 2024가합88318 판결 등에서 이 같은 취지의 판단이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대출채무도 함께 소멸하는가 — 핵심은 '담보 제공'과 '채무 소멸'의 구별입니다
많은 수분양자들이 이 지점에서 오해를 합니다. "내 반환채권을 은행이 가져갔으니, 그 채권으로 대출금은 당연히 갚힌 것 아닌가?"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다릅니다. 채권양도(양도담보)는 "담보를 제공"하는 것이지, "변제에 갈음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수분양자가 반환채권을 은행에 양도했다고 해서 대출원리금 채무가 즉시 소멸하는 것은 아니며, 은행이 그 담보권을 실제로 행사하여 신탁사로부터 돈을 회수했을 때 비로소 그 범위에서 대출채무가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대전지방법원 2024가단223021, 서울고등법원 2015나2046827 등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법리입니다. 결론적으로, "A: 반환청구는 할 수 없다"와 "B: 대출금은 상환해야 한다"는 외관상 모순처럼 보이지만, 현행 법리 구조에서는 동시에 성립 가능한 조합입니다. 수분양자가 느끼는 '이중의 벽'은 법 감정으로는 부당해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설명 가능한 구조입니다.
특약(우선상환 조항)이 있으면 달라지는가 — 조항의 법적 성질에 주목해야 합니다
일부 분양계약서에는 "계약 해제 시 신탁사가 대출기관에 분양대금을 우선 반환한다"는 특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분양자 측 대리인 입장에서는 이 조항을 근거로 "신탁사가 은행에 직접 갚으면 우리 대출도 소멸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같은 우선상환 특약을 "수분양자에 대한 면책적 채무인수"로 해석하는 데 상당히 소극적입니다. 대신 "반환금이 발생하면 그 돈으로 우선 정산하자"는 처리 규칙, 즉 정산의 편의와 사실상의 우선변제권 확보 취지로 해석하는 경향이 확인됩니다(서울고등법원 2015나2046827, 대전지방법원 2024가단223021 등). 따라서 특약만을 전면에 세우는 전략보다는, 다음 두 가지 방향으로 공략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첫째, 해당 특약이 은행의 직접청구권을 발생시키는 구조, 즉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서의 성격을 갖는지를 구체적인 증거로 설득하는 방향입니다. 둘째, 은행이 양도받은 담보권을 행사하지 않아 수분양자의 연체이자가 불필요하게 확대되었다면, 이를 권리남용 또는 신의칙 위반으로 다투는 방향입니다. 다만 유사 사건에서 신의칙·권리남용 주장이 비교적 엄격하게 판단되는 경향도 있다는 점은 솔직히 말씀드려야 합니다.
항소심에서 현실적으로 다툴 수 있는 쟁점은 무엇인가
1심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은 경우, 항소심의 목표를 "채무 전부 부존재"로 설정하기보다는 다음 사항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쟁점을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정산 여부와 이중회수 방지: 은행이 신탁사로부터 담보권을 행사하여 반환금을 실제로 회수했다면, 그 범위에서는 수분양자의 대출채무가 감액되어야 합니다. 은행이 신탁사에서 이미 회수하고도 수분양자에게 전액을 청구하는 것은 이중회수에 해당하여 허용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연체이자 산정의 적정성: 기한의 이익 상실 시점과 연체이자율 산정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이 부분에서 감액 여지를 집중적으로 찾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채권양도 대항요건의 흠결 여부: 확정일자 있는 증서에 의한 통지가 적법하게 이루어졌는지, 승낙의 내용과 범위가 무엇인지를 꼼꼼히 검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자료는, 은행이 신탁사 측에 대해 양도받은 반환채권을 실제로 행사했는지 여부 및 그 회수액·회수 시점, 채권양도 통지(확정일자) 및 승낙 관련 문서, 분양계약 특약 조항과 업무협약서·확약서 원문입니다.
수분양자에게 드리는 현실적 조언
분양계약 해제 이후 분양대금 반환청구와 대출금 상환 문제는, 단순히 "계약이 해제됐으니 모든 것이 원상회복된다"는 직관적 논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반환채권의 귀속 주체는 채권양도를 통해 은행으로 이동할 수 있고, 그렇다고 대출채무가 자동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행이 담보권을 실제로 행사하여 회수한 금액의 범위 안에서만 대출채무가 감소하는 것이 현재 재판 실무의 기본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은행의 담보권 행사 여부와 회수 실적을 중심으로 정산 논리를 구성하는 것이 소송 전략의 출발점이 됩니다. 단순한 계약 해제 효과를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증거에 기반한 정교한 주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분양계약 해제 소송은 한 가지 쟁점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탁사·시행사·대출기관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 속에서 수분양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서는, 각 법률관계의 성격과 판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한 전문 법률가의 조력이 필수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