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동 분쟁이 격화됨에 따라 세계 에너지 운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량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급감했다. 보도에 따르면 과거 매월 약 3,000척에 달하던 통행량이 전쟁 여파로 인해 평상시의 5% 수준인 200척 미만으로 떨어지며 해상 물류가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기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공급망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중동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수급에 막대한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물류 업체들은 위험을 피하고자 운송 경로를 변경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사태 장기화 시 대체 불가능한 경제적 타격과 운임 상승이 불가피할 거로 경고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서 중동 전쟁이 10주째 접어들면서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으며 전 세계 에너지 안보의 가장 위험한 발화점이 되었다.
39킬로미터의 침묵: 세계 경제의 목줄이 흔들리다
마라톤 전 구간보다 짧은 거리가 있다. 고작 39킬로미터. 서울 도심에서 수원까지의 직선거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 초라한 너비의 바닷길 하나가, 2026년 봄, 전 세계 70억 인구의 내일을 쥐고 흔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이야기다.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세로 불이 붙은 이 사태는 처음엔 '중동의 또 다른 전쟁'쯤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10주가 지난 지금, 이것이 단순한 지역 분쟁의 범주를 훌쩍 넘어섰음은 차가운 숫자 하나가 웅변한다. 평시엔 매달 3,000척의 유조선이 오가며 하루 1,5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어 나르던 이 항로를, 지난 4월 한 달 동안 통과한 선박은 고작 191척에 불과했다. 95%의 물류가 공중 분해된 것이다. 그것도 단 몇 주 만에.
지리가 무기가 된 시대
지정학에서 지리는 운명이다. 호르무즈의 비극은 그 진실을 잔인할 만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란은 드넓은 바다를 제압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력을 소진할 필요가 없다. 마라톤 코스 하나의 폭밖에 안 되는 이 해협만 장악하면, 전 세계 석유 거래량의 20%가 즉각 인질이 된다. 이른바 '지정학의 마스터키'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기존 국제해사기구(IMO)가 설정한 안전 항로를 '위험 구역'으로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자국 영해인 라크 섬 인근을 경유하는 새로운 루트를 통과 선박들에 강요하고 있다. 국제법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포함(砲艦)의 논리가 항로를 다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포함의 논리'라는 의미는 대포를 장착한 군함이라는 뜻이다. 이는 19세기 서구 열강이 즐겨 쓰던 외교 방식인 '포함 외교(Gunboat Diplomacy)'에서 온 말이다. 당시 영국·미국 등 강대국들은 약소국과의 협상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면, 항구 앞에 군함을 들이대며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포격한다"라는 식으로 상대를 굴복시켰다. 즉, 외교가 아니라 무력으로 상대의 의사결정을 강제하는 방식이었다.
반대편에선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가 맞불을 놓고 있다. 4월 13일 이후 이란 항구와 연계된 선박 38척 이상이 미군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해협을 지나는 극소수의 선박들이 미국의 경고가 아닌, 이란이 지정한 새 항로를 조용히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국제사회는 이란의 해상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다.
동북아시아가 받아 든 청구서
이 사태의 칼끝이 가장 예리하게 향한 곳은 페르시아만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북아시아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중동 원유의 최대 구매자였으며, 두 나라의 정유 인프라는 특정 성상의 중동산 원유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다. "다른 데서 사면 되지 않느냐"라는 단순 논리가 통하지 않는 이유다.
영국의 에너지 화물 데이터 분석 전문 기업인 보르텍사(Vortexa)의 수석 분석가, 이오아니스 파파디미트리우는 이 상황을 명확히 짚는다. 만약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그 어떤 대체 공급지도 메울 수 없는 원유 공백이 발생하며, 이는 운임 폭등과 글로벌 해운시장의 연쇄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다. 해운 분석 기관 클플러(Kpler)의 드미트리스 암팟지디스 역시 현재의 해상 교통 마비가 얼마나 전례 없는 속도로 전개되었는지를 강조하며, 역사적으로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물류의 한계도 분명하다. 전 세계의 유조선과 파이프라인 총용량을 동원하더라도, 하루 1,500만 배럴이라는 공백을 대체 항로만으로 메우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신뢰의 사망 선고
숫자보다 더 무거운 것이 있다. 해협으로 들어오는 선박보다 떠나는 선박이 현저히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순한 물류의 감소가 아니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이 항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시장이 내린 '신뢰의 사망 선고'다. 경제학에서 신뢰의 붕괴는 수치보다 오래 지속되고, 회복은 파괴보다 몇 배의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이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인류가 당연하게 누려온 '자유롭고 안전한 항해'라는 국제 질서가, 39킬로미터의 해협 앞에서 조용히 퇴장하고 있다.
이 숫자들 앞에서 생각해 보면, 3,000척에서 191척으로. 그 숫자의 낙차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들어 있는가를 생각했다. 겨울을 버티려 연료를 비축해 둔 노인의 창고,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새벽, 물가 상승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이 가벼워지는 어느 가정의 저녁. 지정학의 언어는 냉정하지만, 그 언어가 빚어내는 결과는 언제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가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었는지를,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39킬로미터. 달리면 4시간도 안 되는 그 거리가, 지금 세계의 시계를 멈추고 있다. 우리는 이 정적이 깨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날이 오더라도 한 번 무너진 신뢰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우리는 과연 '안전한 바다'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준비는 군함이 아니라, 지혜와 외교와 연대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