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리아트센터체험미술학원] 판화작가 김규리의 ‘새겨진 마음, 향기로 흐르다’

-달빛과 별빛을 담은 판화, 현대인의 욕망을 어루만지다

-전통 판화와 디지털의 만남, 아이들의 감성을 깨우는 예술 공간



▲욕망의 단면1-100x100cm/2026 (Stencil on Digital print & mixed media) 앞에 선 김규리 작가 

◆현대 판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판화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고전적 매체이지만, 현대 미술의 급변하는 흐름 속에서 끊임없는 기술적 변신과 개념적 확장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최전선에서 전통적인 판화 기법에 현대적인 디지털 메커니즘을 결합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주인공이 바로 판화작가 김규리다. 김 작가는 ‘멀티 에디션 페인팅(Multi-edition Painting)’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화단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평면의 한계를 넘어선 그녀의 작업은 판화가 지닌 복제성을 예술적 고유성과 결합하며 현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해내고 있다.


▲욕망의 불씨 89x130cm 2026(stencil on Digital print) 

◆아날로그적 수행과 디지털적 자유의 만남

김규리 작가의 예술적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석사 전공 수업 중 접하게 된 ‘디지털 프린트’와의 만남이었다. 전통 판화 기술을 전수받으며 다져진 탄탄한 기본기 위에 디지털이라는 현대적 도구가 더해지자, 그녀의 작업은 실기적 측면에서 완벽한 재정립을 이루며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김 작가는 “디지털 프린트는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의 한계를 탈피하게 해주었으며, 작가로서 표현의 자유를 무한히 확장해준 대변혁의 계기였다”고 소회했다. 이러한 기술적 수용은 그녀가 판화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덧입히는 결정적 토대가 되었다.


▲욕망의 탐닉 97x117cm 2026(stencil on Digltal print & mixed media) 

◆대표작 ‘향수병’ 시리즈, 인간의 욕망을 담아낸 인문학적 그릇

김규리 작가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작은 단연 ‘향수병’ 시리즈다. 대학원 시절,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기본 욕구를 어떻게 시각적 언어로 치환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탄생한 이 시리즈는 현대인의 미적 갈망을 판화의 기초 원리로 풀어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화려하고 예쁜 향수병들은 우리 내면에 감춰진 뜨겁고도 복잡한 욕망의 형상화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소유욕과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예리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치로 화폭에 담아냈다.


김 작가는 향수병이라는 무생물의 구조에서 인간의 형상을 발견해내는 독특한 인문학적 시선을 지녔다. 김 작가는 “향수병의 스포이드는 누군가를 탐색하거나 교감을 시도하는 눈빛 같고, 그 안의 액체는 제각각 다른 사람들의 심성과 따뜻한 인간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세속적인 욕망의 상징일 수 있는 향수병을 가장 인간적인 소통의 매개체로 재해석하는 그녀만의 철학적 접근으로 이러한 해석 덕분에 그녀의 향수병은 차가운 유리 용기가 아닌, 각자의 사연을 담은 인격체처럼 관객에게 다가간다.


▲소통의 시선1, 2 - 68x88cm / 2026(stencil on Digital Print) 

◆‘멀티 에디션 페인팅’의 세계

김규리 작가는 자신의 독자적인 작업 방식을 ‘멀티 에디션 페인팅(Multi-edition Painting)’이라 명명하며 예술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물고 있다. 이는 디지털 프린트라는 현대적 토대 위에 스텐실 기법을 활용해 안료를 층층이 밀어 넣는 정교한 융합의 과정이다. 작가는 이 공정을 통해 단순한 평면 출력을 넘어, 물리적인 질감과 감정의 두께를 화면에 직접 아로새긴다.


이 방식이 혁신적인 이유는 판화의 본질인 ‘에디션(복제 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작가의 밀도 높은 수작업을 통해 매 작품에 유일무이한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동일한 데이터에서 출발했어도 매체의 농도와 스텐실의 압력에 따라, 각 작품은 저마다 미묘하게 다른 질감과 생동감을 지니게 된다. 결국 관람객은 정형화된 복제물로서의 판화를 넘어, 원화가 가진 깊이와 디지털이 선사하는 정교한 조형미를 동시에 경험한다. 디지털 프린트가 제공하는 완벽한 조형적 설계도 위에 작가가 직접 안료를 배합하고 색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행위는, 기계적 차가움을 인간적 온기로 치환하는 일종의 수행과도 같다.


이러한 수작업의 결합은 평면적인 인쇄물에 물리적인 근육과 입체적인 질감을 부여하며, 빛의 흐름에 따라 생동감 있게 일렁이는 예술적 아우라를 형성한다. 이는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기계적 메커니즘을 예술적 도구로 완벽히 제어한 김규리 작가 특유의 ‘조형적 조율’이 이뤄낸 값진 성과다. 단순히 찍어내는 과정을 넘어 디지털의 정교함과 수작업의 생동감을 하나의 호흡으로 묶은 그녀의 시도는 현대 판화의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소통의 향기1,2 - 68x80cm / 2026(Digital print & mixed media) 

◆공간을 압도하는 조형적 변주와 몰입의 경험

김규리 작가가 제시하는 판화의 비전은 단순한 이미지 출력을 넘어, 데이터가 지닌 무한한 가변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하나의 원형(Prototype)이라 할지라도 작품의 규모를 과감하게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동일한 모티프를 무한히 병치(倂置)하는 과정을 통해 데이터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한다. 특히 색채의 미묘한 그라데이션(Gradation)과 농담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작업은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의 물결을 만들어낸다.


김 작가는 “설치 방식과 조명의 각도에 따라 부조적인 양감은 물론, 입체적인 공간감까지 구현할 수 있어 종이 위 평면 예술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조형적 실험은 판화를 고정된 틀 안에 갇힌 결과물이 아니라, 공간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역동적인 예술로 탈바꿈시킨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스케일의 설치나, 빛의 흐름에 따라 그림자가 겹쳐지는 입체적 배치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의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몰입형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정적인 감상을 넘어 예술과 관객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현대 판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감각적인 색채가 집약된 김규리 개인전이 경기도 남양주시 원보갤러리에서 오는 5월 29일까지 열린다.

◆아이들의 마음에 예술의 향기를 새기다

김규리 작가는 최근 남양주 미술협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며 지역 예술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지역 동료 작가들과 소통하며 판화라는 장르의 대중적 저변을 넓히는 것은 물론, 한국 현대 판화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다.


특히 그녀가 공을 들이는 분야는 아동 미술이다. 판화를 매개로 아이들과 정서적·심리적으로 교류하며,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 김 작가의 진심이다. 그녀는 “아이들이 판화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새기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을 얻길 바란다”며, 단순한 기법 전수를 넘어선 깊은 유대감을 강조했다. 


이러한 교육적 철학은 점차 힘을 잃어가는 판화 장르의 새로운 도약을 도모하려는 그녀의 의지와 맞닿아 있다. 김 작가는 복제 예술이라는 틀에 갇혀 저평가되거나 소외되어온 판화의 위상을 다시금 정립하고, 현대적 변용을 통해 판화만이 가진 독보적인 매력을 예술계 주류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한 명의 작가로서가 아닌, 판화의 생명력을 지속시키려는 '예술적 사명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새겨진 마음, 향기로 흐르다

김규리 작가의 작업은 날카로운 욕망의 파편을 정제하여 따스한 위로의 향기로 승화해내는 숭고한 과정이다. 작가는 판을 새기는 치열한 수행을 통해 현대인의 각박한 삶을 어루만지는 예술적 처방전을 건네며, 판화의 대중화와 조형적 혁신이라는 가능성을 동시에 증명하고 있다. 특히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판화 장르에 현대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다시금 주류 예술의 반열로 도약시키려는 그녀의 집념은, 예술의 본질이 '전통의 보존'을 넘어 '시대와의 호흡'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판화는 단순히 이미지를 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억눌린 마음을 정성껏 새겨 타인에게 따뜻한 향기로 전하는 가장 정직한 소통의 기록”이라고 말하는 김 작가.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마음의 문양들은 이제 캔버스의 틀을 넘어 지역사회와 아이들의 꿈, 그리고 한국 현대 판화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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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5.04 15:53 수정 2026.05.0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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