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칼럼] 아르고스의 눈 - 중동을 감시하는 서구의 시선

백 개의 눈이 지켜보고 있다 - 서구가 중동에 심어놓은 아르고스의 저주

잠들지 않는 거인 - 드론, 위성, AI가 완성한 중동 감시 제국의 민낯

보호인가, 지배인가 - 서구 외교 정책이 숨겨온 100년의 아르고스 프로젝트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눈을 감지 않는 거인

 

그리스 신화에는 온몸에 눈이 가득한 거인이 등장한다. 이름은 아르고스 파놉테스(Argos Panoptes), '모든 것을 보는 자'라는 뜻이다. 백 개의 눈을 가진 이 거인은 잠들 때도 절반의 눈을 뜨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헤라 여신의 명령으로 이오를 감시하던 아르고스는 결코 대상을 놓치지 않았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시라는 본질을 수행한 존재였다.

 

오늘날 중동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은 이 신화 속 아르고스를 닮았다. 위성은 사막 위를 맴돌고, 드론은 산악 협곡을 누비며, 정보기관의 전파는 도시 골목 구석까지 파고든다. '안보'와 '민주주의'라는 명분 아래, 수십 년째 꺼지지 않는 눈들이 중동의 하늘을 점령하고 있다. 아르고스는 죽지 않았다. 그는 국가의 이름으로 부활했다.

 

백 개의 눈이 탄생한 역사

 

서구의 중동 감시 체계가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의 붕괴와 함께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년)을 통해 중동의 지도를 자의적으로 분할했다. 이 분할은 단순한 영토 획정이 아니었다. 석유, 수에즈 운하, 지중해로 이어지는 전략적 통로를 향한 장기적 감시와 통제의 청사진이었다.

 

냉전이 시작되자 아르고스의 눈은 더욱 정교해졌다. 미국 CIA는 1953년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시키는 '아작스 작전(Operation Ajax)'을 수행했다. 석유 국유화를 선언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를 제거하고, 팔레비 왕조를 복권시킨 이 작전은 서구의 중동 개입이 얼마나 치밀하게 기획된 감시와 통제의 산물인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보호의 언어 뒤에는 언제나 통제의 의지가 숨어 있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미국은 걸프 지역에 군사 기지망을 확장했다.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 바레인의 제5함대 사령부,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에 산재한 전진 기지들은 단순한 군사 시설이 아니다. 이것들은 아르고스의 눈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물리적 감시 거점들이다. 중동의 어떤 하늘도, 어떤 해협도, 서구의 시야 밖에 있지 않다는 선언이다.

 

디지털 시대의 아르고스

 

21세기에 들어 아르고스의 눈은 디지털 망원경을 장착했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NSA의 '프리즘(PRISM)' 프로그램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감시 프로그램은 전화 통화, 이메일, 소셜미디어를 광범위하게 수집했으며, 중동 지역 지도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통신까지 그 대상에 포함됐다. 아르고스는 이제 잠을 잘 필요조차 없어졌다. 알고리즘이 눈 대신 깨어 있기 때문이다.

 

드론 전쟁은 이 감시 체계의 가장 노골적인 표현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지대,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수천 차례의 드론 공습을 감행했다. 영국 싱크탱크 에어워즈(Airwars)의 집계에 따르면, 드론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공식 발표를 크게 상회한다. 아르고스는 단지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보는 순간 심판하고, 심판하는 순간 처형한다.

 

이스라엘의 사이버 정보업체 NSO 그룹이 개발한 '페가수스(Pegasus)' 스파이웨어는 아르고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또 다른 실례다. 페가수스는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 권위주의 정권들이 구매하여 반정부 인사, 언론인, 인권 활동가들의 스마트폰을 원격으로 감시하는 데 활용됐다.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경에도 이 디지털 아르고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 다수 언론과 연구기관의 분석이다.

 

감시의 언어, 보호의 탈

 

아르고스 신화에서 가장 음울한 대목은 따로 있다. 그는 스스로 감시자임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헤라의 명령, 즉 신성한 권위의 이름으로 자신의 역할을 정당화했다. 서구의 중동 정책도 이와 다르지 않다. '테러와의 전쟁', '대량살상무기 제거', '민주주의 수호'—이 언어들은 언제나 감시와 개입을 정당화하는 서사의 핵심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돌이켜보자. 미국과 영국은 대량살상무기(WMD) 보유를 개전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전쟁 후 그 어떤 WMD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수십만 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은 돌이킬 수 없이 변형됐다. 아르고스의 눈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위협을 '보았다'고 선언했고, 그 선언은 역사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 구조는 반복된다. 시리아 내전에서 서구는 반군 세력을 지원하면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의 확산을 우려했다. 예멘 내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에 무기와 정보를 제공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를 심화시켰다. 감시하면서도 개입하고, 개입하면서도 통제하며, 통제하면서도 책임은 회피하는—이 세 겹의 모순이 서구의 중동 외교 정책이 지닌 아르고스적 본질이다.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

 

왜 서구는 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가. 그 답은 신화 속에도 있다. 아르고스가 결코 눈을 완전히 감지 못했던 이유는 이오가 단순한 감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오는 제우스가 탐낸 존재였고, 헤라에게는 질투의 표적이었다. 중동은 서구에게 석유와 가스, 해운 항로, 지정학적 완충 지대라는 실질적 이해관계의 대상이다.

 

BP(영국석유회사), 셰브런, 엑손모빌—이 에너지 공룡들의 수익 구조는 중동의 안정과 직결된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연간 수천 척의 선박은 세계 무역의 동맥이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공약은 중동 전체 외교 방정식을 규정하는 변수다. 아르고스의 눈이 닫히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눈을 감는 순간, 거대한 이익 구조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헤르메스의 피리 소리

 

그러나 신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는 피리 소리로 아르고스를 잠재웠고, 결국 그 백 개의 눈을 영원히 감겼다. 신화는 결국 감시와 통제가 무너지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중동에서도 그 피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의 중재 아래 이란과 외교 관계를 전격 정상화했다.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걸프 국가들은 BRICS 협력 구도로 조금씩 눈을 돌리고 있으며, 이란은 핵 협상의 주도권을 자국 손에 쥐려는 전략적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아르고스의 눈은 여전히 뜨여 있지만, 감시 대상들이 더 이상 그 눈앞에 가만히 서 있지 않는다.

 

한 인간의 고백

 

나는 오랫동안 이 지역의 이야기를 써왔다. 그리고 글을 쓸 때마다 어떤 피로감이 가슴 한켠에 쌓였다. 강대국의 논리는 언제나 정교하고, 그 피해는 언제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고스의 신화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울림은 사실 그 거인의 죽음 뒤에 있다. 헤라는 죽은 아르고스의 눈들을 거두어 공작새의 꼬리에 붙였다고 한다. 감시의 눈은 결국 장식이 되었다.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우리가 '국제 질서'라 부르는 화려한 깃털 속에 박혀 있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저 백 개의 눈앞에 선 사람들—팔레스타인의 올리브 나무 아래 앉은 노인, 예멘의 폐허 속에서 아이를 안고 서 있는 어머니, 바그다드의 먼지 속에서 내일을 꿈꾸는 청년—그들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감시하는 자는 항상 높은 곳에 있고, 감시받는 자는 항상 낮은 곳에 있다. 그 고도의 차이가 이 시대의 가장 근원적인 불평등이 아닐까.

 

우리가 아르고스의 신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단순히 과거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 개의 눈은 지금도 뜨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눈들이 진정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라고 나는 믿는다.

작성 2026.04.29 03:31 수정 2026.04.29 03:37

RSS피드 기사제공처 : 중동 디스커버리 / 등록기자: 김종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