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한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기업들의 '유연근무' 도입을 독려하고 나섰다.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거나 재택근무를 활용함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하고 도심 교통 혼잡을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이하 대광위)는 지난 24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유연근무 활성화를 위한 기업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고유가라는 경제적 위기를 유연근무라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돌파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 중소기업 '문턱' 낮춘다... 육아기 10시 출근제 요건 완화
정부는 특히 인력 운용과 비용 문제로 유연근무 도입을 망설이는 중소기업을 위해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유연근무 도입 기업에는 장려금과 함께 근태 관리를 위한 시스템 설치비 및 사용료를 지원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육아기 10시 출근제'의 요건 완화다. 기존에 6개월 이상 근속해야 했던 요건을 폐지하고, 취업규칙 제출 등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여 더 많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 "교통과 노동의 결합"... 모두의카드 등 인센티브 제공
김용석 대광위 위원장은 유연근무와 연계된 교통 인센티브인 ‘모두의카드’ 활용을 당부하며, 조만간 범부처 TF를 통해 ‘대중교통 출퇴근 혼잡완화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전환의 시대에 삶과 일하는 방식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실질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고유가라는 시의적절한 명분을 일·생활 균형과 결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과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장려금 몇십만 원보다 당장 자리를 비우는 인력을 대체할 방법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중소기업에서는 시차출퇴근이나 재택근무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크다.
제도적으로 요건을 완화해도 '눈치 보기' 문화가 팽배한 중소기업 현장에서 육아기 10시 출근제가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노동계에서는 재택근무나 유연근무가 확산될 경우, 퇴근 후에도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가 이어지는 등 유연근무가 오히려 노동 강도를 높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사무직 위주의 유연근무 확산은 현장직·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으며, 이는 노동시장 내 또 다른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강조했듯, 기술과 기후 변화가 맞물린 지금 일하는 방식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고유가라는 외부적 충격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경직된 노동 문화를 유연하게 바꿀 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결국 이번 정책의 성패는 정부의 지원 규모가 아니라, 기업 경영진들이 유연근무를 '비용'이나 '통제 상실'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단순한 관리 감독자가 아닌, 기업의 변화를 돕는 페이스메이커로서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