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책임인가, 권력 책임인가” 4.19를 다시 묻다
1960년 4월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4.19혁명은 피로 기록됐다.
공식 집계만 보더라도 사망 약 186명, 부상 6천여 명, 이 숫자 앞에서 필자는 묻는다.
이 희생은 국가의 책임인가, 아니면 당시 권력의 범죄인가
“국가 책임”이라는 프레임
국가는 연속성을 가진다. 정권은 바뀌어도 국가는 남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경찰. 군)총격, 시민 보호 실패, 사후 진상 규명 지연으로
국가 시스템의 실패로 귀결되었다.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국가 전체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시각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이 시각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국가는
- 희생자 보상
- 명예 회복
- 역사 교육
을 통해 지속적 책임을 지는 주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시 권력 책임“ 이라는 프레임 당시 권력은 이승만 정권이었다.
- - 3.15 부정선거
- -시위대에 대한 발포 명령
- -언론 통제와 정보 왜곡
이 모든 것은 정권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국가가 아니라, 권력이 국민에게 총을 겨눈 사건이다.”

1960년의 민주주의 함성을 기리는 4·19 혁명 66주년 기념식이 2026년 4월 19일, 서울 수유리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수유리 국립 4·19 민주묘지 현장
헌화는 이어졌고, 묵념은 길었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더 크게 남은 것은 추모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었다.
이번 기념식은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열렸으며,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정부 주요 인사, 유공자 및 유가족,
시민들이 참석해 민주 영령들의 희생을 기렸다.
4·19 혁명의 의미
그 날은 총성이었고, 오늘은 침묵이다.
4.19 민주묘지는 1960년 4월 불의와 독재에 항쟁하다가 희생된 186명의 젊은 혼들을 모신 곳이다.
어제 기자가 탐방에 앞서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사망 약 186명/ 부상 6,000명 /연행 2만 6천명으로 대한민국의 출발점은 “대규모 시민 희생”위에 세워졌다고 평가된다.
희생의 성격은
거리에서 발포된 실탄에 쓰러진 학생, 시위에 합류한 시민, 우연히 현장에 있다가 희생된 사람의 부류로 분류되었다.
기자가 생각하는 4.19민주 혁명은 단순히 ‘학생혁명’으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들 못지않게, 어쩌면 그들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도시 하층민들이다. 이는 4.19 희생자들의 분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86명의 희생자 중 학생은 22명에
불과하고 하층 노동자 61명, 무직자 33명 등 도시 하층이 절반에 달한다. 따라서 4.19 혁명의 희생자는
특정 계급 운동이 아니라, 학생이 촉발하고 시민 전체가 함께 희생된 ‘국민적 항쟁’의 결과이다.
부정선거에 항거한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며 시작된 대한민국 최초의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었다.
이 혁명은 결국 이승만 정부의 하야를 이끌어 냈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었다.
올해 66주년 기념식에서는
- 민주주의 수호의 가치 재확인
- 청년 세대와의 역사적 연결 강조
-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적 책임과 예우 강화

■ “국가 책임” 뒤에 숨은 “권력의 면책”
국가는 말한다.
“우리는 보상했고, 예우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중요한 것을 가린다.
책임의 초점이
‘당시 권력’에서 ‘추상적 국가’로 옮겨지는 순간,
구체적인 책임은 흐려진다.
당시 발포는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권력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하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 물었는가.”
■ 기념은 반복되지만, 구조는 남는다.
더 위험한 것은 따로 있다.
과거를 완료된 사건‘으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 그 구조는 다시 살아난다.
- 권력은 언제든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고 국가는 언제든 책임을 분산시키며
- 시민은 언제든 잊도록 유도된다. 수유리의 기념탑은 그 사실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날씨가 28도로 급속도로 올라가는 한 낮의 여름을 연상시키는 오늘
물 한 모금을 먹을 수 없는 각박한 현실이 66년 그 때로 넘어간다.
■ 현장에서 남은 한 문장
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머릿속에 한 문장이 맴돌았다.
“민주주의는 기념하는 순간 약해지고, 질문하는 순간 살아난다..“
4·19는 끝난 게 아니라, 덮인 것이다
4·19는 이미 역사책 속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제 수유리에서 확인한 것은 달랐다.
끝난 것이 아니라, 덮여 있었을 뿐이다.
기념식은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건 불편한 질문이다.
- 권력은 지금도 안전한가
- 국가는 언제든 국민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4·19는 과거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