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 라떼라는 이름의 폭력

"우리 땐 말이야"의 비겁한 향수

낡은 경험을 무기로 휘두르는 자들

존중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

사진=AI생성

 

새벽 4시, 지구대 자판기 앞. 퀭한 눈의 신임 순경이 믹스커피를 뽑는다. 최고참 팀장이 슬쩍 다가와 어깨를 툭 친다. “피곤하냐? 쯧, 요즘 애들은 몸이 너무 약해. 우리 땐 파출소 바닥에서 신문지 깔고 자면서도 불평 한마디 안 했어. 인권? 그런 거 따질 시간 있으면 범인 한 놈 더 잡았지.”

 

이 말은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다. 신입의 피로를 '나약함'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고생을 '절대적 기준'으로 강요하는 서늘한 폭력이다. 35년 전의 열악했던 환경을 2026년의 후배에게 들이미는 순간, 대화는 단절되고 훈수는 '갑질'이 된다.

 

과거의 고생은 훈장이 아니라 '상처'일 뿐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실에서 "내가 대리 때는 밤새는 게 당연했어"라고 말하는 상사는 사실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을 '정당한 관례'로 둔갑시킨다.

 

현장에서 본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과거에 당했던 인권 침해를 보상받으려 한다는 점이다.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야 공평하다"는 보상 심리가 '라떼'라는 필터를 거쳐 훈계로 포장된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과거의 고생은 당신의 훈장일지 모르나,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당신은 인권의 수혜자가 아닌 침해자가 된다.

 

"요즘 애들"이 아니라 "요즘 시대"다

 

"요즘 애들은 자기 권리만 찾아." 이 비아냥 속에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조급함이 숨어 있다. 예전에는 참는 것이 미덕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말하는 것이 용기인 시대다. 35년 전의 경찰관이 범인을 잡기 위해 법 절차를 조금 어겼던 것이 '열정'으로 통했다면, 지금은 '인권 침해'이자 '독직폭행'이다.

 

시대가 변하면 인권의 기준도 변한다. 낡은 잣대로 새로운 세대를 재단하려 드는 것은, 마치 구형 아날로그 무전기로 디지털 신호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들리지 않는다고 화를 낼 게 아니라, 자신의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

 

라떼를 버리고 '지금'을 물어라

 

진정한 베테랑은 자신의 과거를 팔아 권위를 세우지 않는다. 대신 후배의 현재를 궁금해한다. "우리 땐 이랬는데, 요즘은 어떤 점이 힘드니?" 이 한마디가 35년의 내공을 빛나게 하는 진짜 인권 리더십이다.

 

'라떼'라는 흉기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후배의 사원증과 제복 뒤에 숨겨진 '인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존중은 과거의 고생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대방이 서 있는 자리를 인정해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라떼'는 향기로운 추억인가, 아니면 타인을 찌르는 가시인가?

 

 

칼럼니스트 소개


 

사진=전준석 칼럼니스트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그대는 늘 선물입니다'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작성 2026.04.17 11:56 수정 2026.04.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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